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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언니를 찾아서 : ‘서울체크인’ 이효리
TVING <서울체크인>
‘시대를 대표한다’라는 말로 교체형 취급을 받았던 일체형 언니들이 쌓인다. 그들만의 발자취로 케이팝과 가요계의 새 역사가 쓰인다. (2022.02.09)
시작은 흔한 관찰 예능 같았다. <서울체크인>은 이제 ‘거꾸로 해도 이효리’만큼 유명해진 이름, ‘소길댁’ 이효리가 연말 음악 시상식 ‘MAMA’에 출연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사흘간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유명인의 일상을 따라가는 익숙한 포맷이고, 일정 동안 이효리의 순간을 담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유튜브의 각종 자극적인 편집과 연출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싱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공연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이효리, 오랜만에 리허설 무대에 서는 이효리, 서울에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친한 언니 엄정화의 집에 신세를 지는 이효리, 무사히 무대를 마치고 다시 제주로 돌아가는 이효리. 75분에 담긴 사흘은 차분히 실시간으로 흘러간다.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는 알탕이 문 앞까지 배달 오고, 늦은 밤에도 창 너머 들리는 차 소리가 멈추지 않는 서울이 신기하다는 그의 며칠을 가만히 담는 이야기는 그러나, 그 가만한 날들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방점들을 남긴다. 무려 13년 만에 ‘MAMA’ 무대에 오르기 전날, 이효리는 엄정화에게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라고 묻는다. 반짝 아이디어로 20대에서 50대까지, 한 번쯤 ‘댄싱퀸’이라 불렸던 이들을 모은 브런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완선과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 갑작스레 모인 라인업치고는 특별한 계보처럼 느껴지는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말을 하면 더 잘 통한다. 극심한 무대공포증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떠날 수 없는, 오랜만에 무대에서 힘들다기보다 살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는, 이제는 자신을 둘러싼 갖은 시선에서 벗어나 서서히 자기만족을 찾아가는 다섯 명의 아티스트.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눈물을 흘리는 엄정화나, 그 눈물을 보며 ‘왜 우냐’는 김완선 무덤덤한 반응은, 그들을 둘러싼 모든 희로애락이 이제는 그저 그들의 삶 자체로 덤덤하고 자연스럽다는 상황의 묘처럼 느껴진다.
새삼스러우면서도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본 적은 없었다는 이 생경한 감각은, 그 느낌 그대로 존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 스타들의 진짜 삶을 떠올리게 한다. 냉혹한 쇼 비즈니스계에서 누구보다 주목받고 누구보다 화려하게 빛나는 댄싱퀸. 무엇이든 괴물처럼 소모하는 시장이라지만, 그 기준은 언제나 젊은 여성에게 유독 가혹했다. 매해 모델만 바뀌며 비슷한 이미지로 연출되는 소주 광고 포스터를 무심히 바라보며, 사람들은 다음 그리고 또 다음 댄싱퀸을 찾았다. ‘디스코’를 발표한 2008년 당시 서른아홉이었던 자신의 나이가 너무나 많게 느껴졌다는 엄정화의 고백은, 안타깝게도 14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무게로 여성 아티스트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들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할수록, 데뷔 시기가 이를수록 더욱더 그렇다.
언니의 진짜 힘은 그때 발휘된다. 13년 전과 모든 것이 달라졌는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은 기분에 쓸쓸함을 토로하는 후배에게 ‘십 년 뒤에 보면 지금이 정말 어려 보인다’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위로를 건네는 언니, 일이 아니라 취미처럼 하는 음악이 너무 즐겁다는 언니, 함께 무대를 꾸민 댄서 친구들에게 손수 쓴 편지와 꽃을 건네며 ‘전화번호 적어 뒀으니 제주도에 올 때 연락하면 잠자리와 술을 책임지겠다’라고 약속하는 언니. 이 언니는 모두 다른 언니이며, 누군가의 동생은 또 누군가의 언니가 된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한자리에 모인 다섯 명의 ‘댄싱퀸’이 버스 한 대를 타고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이효리의 제안은, 즐거운 합동 공연에 대한 희망인 동시에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진 잃어버린 언니를 찾아가는 여정의 작지만 큰 첫걸음처럼 느껴진다. ‘시대를 대표한다’라는 말로 교체형 취급을 받았던 일체형 언니들이 쌓인다. 그들만의 발자취로 케이팝과 가요계의 새 역사가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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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