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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의 인생책]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 『의사의 반란』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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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종종 단순한 원리를 새삼스럽게 깨우치고 놀라는 때가 있다. 『의사의 반란』가 읽을 때가 그랬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2021.06.04)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였다. 감기가 심해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가 “중이염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며 항생제를 처방해주었다. 처방해준 약을 다 먹고 다시 갔더니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같으니 삼 일만 더 먹여 보자”며 재차 항생제를 처방해주었다. 삼 일 동안 착실히 항생제를 먹인 뒤 다시 내원했다. 이제는 아이에게 중이염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이염에 걸렸으니” 이번엔 오 일 정도 항생제를 먹이자 했다. 이번에도 착실히 지시에 따른 뒤 다시 내원했다. 의사는 또 다시 삼 일 치 항생제를 주었고, 다시 병원에 갔을 때는 “거의 나았지만 ‘완전히’ 낫는 걸 볼 때까지 더 먹이자”면서 추가로 삼 일 치 항생제를 처방해주었다. 결국 아이는 삼 주에 가까운 기간 동안 항생제를 복용했다. 그렇게 해서 좀 나아지는가 싶었던 아이는 정확히 일주일 뒤, 다시 감기에 걸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초반부터 중이염을 앓았다.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을 방문한 뒤 처방해준 약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데, 불안감이 엄습했다. 몇 개월 전에도 이런 식으로 한 달 가까이 항생제를 먹였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진저리가 쳐졌다. 이렇게 자주 항생제를 먹여도 될까? 

집에 오는 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에게 항생제를 또 먹이게 생겼다고 우는 소리를 하자 친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소아과에서 받은 약 먹이지 마! 자신은 아이가 감기에 걸려도 병원약을 먹이지 않은지 몇 년이 되었다며, 감기와 중이염은 대부분의 경우 자연치유가 된다고 했다.

“항생제 때문에 자꾸 감기에 걸리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항생제 덕에 낫는 게 아니라 항생제 때문에 아픈 거라고? 집으로 돌아온 뒤, 약봉지를 앞에 놓고 고민했다. 정말로 안 먹여도 될까? 중이염인데? 한동안 고민하다가, 먹이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닷새를 버텼다. 따뜻한 물을 많이 먹이고, 충분히 자게 하면서,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날뛰는 마음을 억눌렀다. 끼니때마다 불룩한 약봉지를 앞에 놓고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괴로워했던, 그러면서도 결국은 항생제를 먹이지 않는 쪽을 택했던, 무거운 닷새였다. 그렇게 기나긴 나날을 보내고 아이와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말했다. 증세가 많이 호전됐다고. 이제 3일 정도 더 약을 먹으면 완전히 나을 것 같다고. 나는 약을 먹이지 않았단 말은 하지 않은 채 감사하다고 말한 뒤, 약국으로 가 약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받아만 놓고 먹이지 않았고, 아이는 약 없이 중이염을 이겨냈다. 삼 일 뒤에 방문한 병원에서 귀가 깨끗해졌단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득달같이 소아과로 데려가는 습관에서 놓여났다. 푹 쉬고 많이 자게 하면 아이가 며칠 뒤 낫는 걸 몇 번 지켜봤더니 자신감이 생기면서, 웬만하면 병원에 데려가지 않을 뚝심이 생겨났다.

그 후로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병원 약을 거의 먹이지 않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타오고, 고심 끝에 먹이지 않는 편을 택하며, 그때마다 두려움으로 영혼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두려움이 극에 달해 어찌할 바를 모를 때면 ‘인체의 면역’에 관해 그동안 습득한 지식을 떠올리며 수없이 되뇌었다. 괜찮아. 푹 쉬면 나을 거야. 그 시기, 당장이라도 약봉지를 열어젖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은 통화를 마칠 때 친구가 권해주었던 책, 『의사의 반란』 덕분이었다. 그 책을 통해 항생제를 먹으면 왜 더 빈번히 감기에 걸리게 되는지 이해하게 되면서, 약을 너무 자주 먹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에 무게를 실을 수 있었다. 


살면서 종종 단순한 원리를 새삼스럽게 깨우치고 놀라는 때가 있다. 『의사의 반란』가 읽을 때가 그랬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 몸이 아픈 것엔 모두 이유가 있다는 것. 사람이 잘못된 식습관을 갖고 살면 어딘가가 아프게 되는데, 그럴 때면 몸이 염증을 통해 그 식습관이 잘못됐음을 알려주고 다른 걸 먹어달라고 호소한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어딘가가 아프면 병원으로 달려가서 약을 타다 먹기보다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먹으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고 잘못된 먹거리를 끊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으며 몸을 돌보지 않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서 타온 약을 며칠 먹는 것으로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저자에 따르면 본래 우리 민족은 껍질과 씨눈을 벗기지 않은 온전한 형태의 쌀인 현미를 먹고 살아왔는데, 일제 강점기에 도정된 백미를 접한 이후로 백미를 주식으로 삼게 되었다. 본디 먹거리는 통째로 먹어야 그 먹거리 안에 있는 생명력과 영양을 온전히 건네받을 수 있는 법인데, 우리는 온전한 상태인 현미에서 ‘생명의 정수’에 해당하는 씨눈을 떼어낸 백미를 먹음으로써 막대한 건강상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또한 어떤 음식을 먹든 여러 번 씹어야만 침을 통해 소화효소가 나오고, 음식물이 소화효소와 함께 넘어가야 장이 무리 없이 넘겨받은 것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데, 최근 식문화의 변화로 사람들이 몇 번 씹지 않고 넘길 수 있는 부드러운 먹거리들(빵, 우유, 죽, 젤리 등의)을 너무 많이 먹다보니 소화기관에 염증이 생기고 탈이 난다. 그러면 사람들은 위에 좋다는, 혹은 장에 좋다는 건강식품과 약을 챙겨먹게 되는데, 이러한 건강식품과 약이 대부분 씹지 않고 엑기스나 알약 상태로 삼키는 형태라, 소화기관에 다시 한 번 무리를 주면서 몸을 점점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약을 달고 살게 되는 건 이런 악순환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현미잡곡밥’과 많이 씹어야만 삼킬 수 있는 ‘거친 채소’를 먹어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나=내가 먹는 것’이며 몸에 탈이 생기면 가장 우선적으로 내가 무얼 먹어왔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 책의 내용이 모두 이를 증명하기 위해 쓰였다고 할 수 있을 이 주장, 이 단순하고 명쾌한 주장은,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논리였다. 사람은 제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논리. 그런데 이 논리가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들릴 정도로, 나는 그동안 아프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을 먹으면 냉큼 나을 것이라 여겼다. 가끔 ‘왜’ 아픈지, 혹은 처방해주는 약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물은 적도 있었지만, 그에 대해 충분히 대답을 들은 적이 없었고, 전문가가 아닌 나는 결국 ‘주제넘게’ 묻는 걸 그만두고 지시에 따랐다.

아이에게 과하게 항생제를 먹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 의사와 현대 의학 체계는 내게 일종의 ‘절대자’였다. 모든 아픈 증상에는 확실한 병명이 있고, 먹으면 즉각 낫게 해주는 맞춤약이 있으며, 의사는 그런 약을 처방해주는 절대적인 권위자라 생각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나으리라는 완전한 신뢰가 있었기에,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병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성실히 약을 먹였다. 그런데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직감적으로 더 이상 항생제를 먹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의사의 반란』이라는 책을 만난 뒤, 비로소 그 신뢰에 의문을 품게 됐다. 몸에 생기는 염증 모두에 정해진 이름이 있다거나, 그 이름 앞으로 처방된 약을 먹기만 하면 깔끔하고 완벽한 상태로 돌아가리라는 단순한 믿음도 버렸다. 한때 현대 의학체계의 일원으로 일했던 저자가 인체의 작동원리를 하나하나 따져 일러주는 말을 따라가면서, 현대의학 체계 자체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끔씩 ‘왜?’라고 물었을 때 인상을 쓰거나, 못들은 척 하거나, 버럭 화를 냈던(내가 환자분에게 그런 것까지 알려드려야 합니까?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해드려요? 알려드리면 알아들을 순 있어요?) 의사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현대의학 자체가 병이 발발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기보다 증상에 대한 ‘처방’에 중점을 두기에, 내가 했던 질문은 그 체계에 속한 구성원들이 답해줄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의사를 신 비슷한 존재로 여기며 병이 왜 생겨난 건지, 약에 든 성분은 어떤 작용을 하는지 물어댔으니, 질문을 받는 이의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내 질문은 ‘현대의학체계’ 자체에 대한 의문, 거대한 체계의 일원인 ‘의사’의 정체성과 관련된 물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여파로 한동안 현대의학 전체를 불신한 적도 있었다. 이 책과 만나기 전까지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는 게 좋다’는 어른들의 말을 시대에 뒤떨어졌다 여기며 병원을 맹신했던 것처럼, 이 책과 만난 뒤엔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며 의사들이 내리는 처방을 절대로 따르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그런 극단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지금은 양쪽의 생각을 고루 취하면서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려 노력한다. 현대의학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되 그 체계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스스로 대비한다고 할까. 이를테면 외상치료와 예방주사는 수용하되 툭하면 약을 먹어 해결하려 드는 무비판적인 습속은 떨치려 노력하는 식이다. 

『의사의 반란』에는 물을 일부러 많이 마시는 게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거나 저염식이 병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는 등, 세간에 알려진 ‘대세’ 건강정보와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주장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객관적인 과학’이라 간주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밑바닥부터 흔들린다.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백팔십도 바뀔 수 있는 ‘사람의 일’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요는 『의사의 반란』이라는 책 또한 유용하게 배울 점을 취하되 맹신하며 전적으로 따르지 않아야겠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런 자세 또한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눈앞의 책을 포함하여, 절대적인 섭리로 받아들이지 말고 늘 의심하고 질문하라는 교훈.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가르침. 특히나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인 나의 ‘몸’과 관련된 경우라면 더더욱.



의사의 반란
의사의 반란
신우섭 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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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아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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