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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시너지의 우세, 블라세와 스프레이의 Snatch
블라세(Blase), 스프레이(Spray) < Snatch >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 명확하다. 정직한 라임과 박자감을 타법으로 삼는 블라세의 랩, 그리고 비교적 직관적이고 뚜렷한 구분점을 선호하는 스프레이의 비트가 지향점을 같이한다. (2021.02.10)
특정 개인이 주체가 되는 음반은 해당 작품을 이끌어갈 아티스트의 순수 역량을 중요시하기 마련이다. 다만 합작은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진다. 이 경우 단일 개성의 발현보다는 협동성이 중점이 되고, 청자 역시 이러한 합일적인 면에서 도취와 희열을 요하기 때문이다. 백앤포스(BacknForth) 소속 디제이 스프레이(Spray)와 에프에이(FA) 크루의 래퍼 블라세(Blase)가 주조한 합의 장 < Snatch >가 신보 중에서도 돋보이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에너지가 약동하고 전자음이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각자에게도 확고한 분기점이 될 시너지의 우세다.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 명확하다. 정직한 라임과 박자감을 타법으로 삼는 블라세의 랩, 그리고 비교적 직관적이고 뚜렷한 구분점을 선호하는 스프레이의 비트가 지향점을 같이한다. 이 덧셈이 가져오는 우호적인 결과는 수민(Sumin)이 참여한 'City'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네오(Neo) 풍의 잔향이 강조된 신시사이저와 정직한 킥 스네어가 단단히 터를 잡고, 훅과 랩이 박자에 맞춰 차례대로 등장하며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90년대 힙합의 사운드 샘플이 빽빽하게 들이찬 'Back!!!'과 동양 풍의 신묘한 감각을 자아낸 'Don't worry' 역시 레시피를 충실히 이행한다.
진부한 부분이 생기더라도 쉽게 기본 틀의 변주를 택하지 않는다. 대신 걸맞은 피처링을 등장시켜 공란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무분별한 변화를 지양하고, 저마다 다른 곡의 속도에도 일관적으로 들리도록 만들어 부담을 줄인다. 그뿐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클럽 신의 디제이 그룹 'VCR02', 브릴리언트(BRLLNT)와 엘라이크(L-Like) 등 신에서 열렬히 활동하는 프로듀서를 초청하여 후반부를 과감하게 리믹스 셋으로 채워 넣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앨범은 끌어올린 고조를 좀체 식지 않도록 유지하고, 완급을 오르내리며 지루한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 Snatch >는 단지 조화로운 면을 제외하고도 두 아티스트의 성장 측면에서도 주요한 위치에 존재한다. 2018년 같은 해, 당시에는 범람하는 멈블 열풍에 탑승한 블라세의 첫 EP < 0 >과 부드러운 성향 아래 유동적인 작법을 취하던 스프레이의 데뷔작 < Mindspray >가 있었다. 물론 아직은 소규모의 실험작 인상이 강하고 과반수의 리믹스로 초점이 다소 흐려지곤 하지만, 본작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 존재감은 성공적인 스타일 정립과 잦아든 공연장의 열기를 다시금 상기시키며 가치를 쟁취한다. 그리고 아티스트가 본인의 대륙을 발견하는 순간의 쾌거를 같이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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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