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권태를 느낄 때 읽으면 좋을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174회) 『베이비 팜』, 『부끄러움』, 『똥두 1, 2』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1.02.10)
불현듯(오은): 오늘 주제는 ‘권태를 느낄 때 읽으면 좋을 책’이에요. 두 분은 언제 권태를 느끼나요?
캘리: 수시로 오는 것 같은데요. 저는 권태라는 신호를 좀 멈추라는 얘기다, 조심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되게 제 눈치를 보면서 조심하려고 해요.
프랑소와 엄: 저는 잘 안 느끼는 편인데요. 요즘에 정말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저는 사람 만나고, 대화하면서 공감하면서 힘을 얻는데 그게 안 되니까요. 아직 이걸 해결하지 못했는데요. 오늘 소개할 책을 최근에 읽고 조금 희망이 생겼습니다.
조앤 라모스 저 / 김희용 역 | 창비
우선 소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권태 신호를 무시하면 무기력, 번아웃, 우울함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럴 때는 딴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구가 “나 요즘 너무 권태를 느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진심으로 “좀 쉬어도 돼.”라고 조언을 하잖아요. 그런데 나 스스로한테는 그런 얘기를 잘 안 하는 것 같거든요. 나한테는 “너 지금 게으름 부리는 거 아니야?” 하는 목소리가 더 먼저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나 자신을 정말 내가 좋아하는 친구 대하듯이 해줬으면 해요. 이럴 때 완전 재미있는 소설 읽으면 좋겠죠.
소설은 ‘골든 오크스’라는 호화 리조트가 배경이에요. 이 리조트가 좀 특이한데요. ‘호스트’라고 불리는 대리모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죠. 호스트의 의뢰인들은 다 어마어마한 부자들이고요. 골든 오크스는 이들의 입맛에 맞게 ‘우리가 최고의 환경에서 당신의 아기를 탄생시키겠습니다’라면서 돈을 벌어요. 여기에는 전담 의사도 있고요. 전담 트레이너, 맞춤 영양사도 있거든요. 대리모들이 완벽하게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농장’인 거죠. 호스트의 외출은 금지되어 있고, 외부와의 연락도 골든 오크스에서 허락된 장치로만 할 수 있어요. 의뢰인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하고 의뢰를 한 거라 리조트의 환경은 낙원이나 다름없어요. 낙원인데, 감옥이죠. 그렇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환경이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최고의 안락함이기도 해요. 그게 참 곤란한 지점이에요.
대리모 문제도 생각하게 하는데요. 인간의 조건이 그냥 물리적인, 외부적인 것만 충족된다고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소설 설정처럼 아무리 대리모들이 충분히 상황을 인지하고, 다 동의한 뒤 리조트에 들어왔다 해도 그 바깥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윤리 문제가 있다고 하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인간을 도구화하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소설이 줄거리도 굵직하고, 벌어지는 사건들도 다양한데 그 안에서도 인물 한 명 한 명이 가진 어떤 디테일한 고민들이나 생각의 변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작은 말들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그런 마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어쩌면 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500쪽 넘는 책을 정말 금방 읽었거든요. 그냥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으로도 읽으셔도 충분히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에르노 저 / 이재룡 역 | 비채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아니 에르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단순한 열정』이잖아요.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죠. 독자도 그렇고, 평단에서도 설왕설래가 굉장히 많았던 작품인데요. 흡입력이 엄청나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 책입니다. 『단순한 열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도 받았는데요. 이 작가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에요. 픽션이지만 다분히 자기 경험을 녹여내는 것이죠. 이후 4년인가 5년 만에 낸 책 『부끄러움』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자신의 배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너무나 중요했지만 섣불리 말할 수 없었던 일이 등장하거든요. 어릴 때 겪은 무수히 많은 일들 가운데 아니 에르노가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경험들이 앞부분에 등장합니다.
그밖에 책에 등장하는 중요한 체험 중 하나가 사립학교 체험이에요. 사립학교는 공립학교보다 더 비싸겠죠. 그런데 아니 에르노가 사립학교에 들어가면서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고, 남들은 다 갖고 있는데 자기는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씩 파악하게 되는 거예요. 이 학교에서는 ‘공동식당’이란 말 대신에 ‘기숙사 식당’이란 말을 사용하고요. ‘동무’나 ‘선생님’ 같은 대신에 ‘동료’, ‘마드모아젤’ 같은 뭔가 고상하다고 여겨지는 표현을 썼거든요. 어떤 수녀님도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고, 5살짜리 아이들이 있는 유아반에서도 존댓말을 했죠. 이게 아니 에르노에게 어떤 갈등을 일으키는 거예요. 자기는 이런 세계에 산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이런 장면을 접하면서 인지부조화가 오는 거죠.
권태라는 것이 익숙함에서 오는 것 같아요. 이걸 깨뜨리기 위해서는 과거에 일어난 결정적인 순간이지만 내가 외면하고 살아온, 그런 부끄러웠던 순간을 직면하거나 스스로에게 새롭고 강렬한 체험을 선사해야 할 텐데요. 후자는 사실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럴 때는 과거에 있었던, 지금의 나를 만든 결정적인 장면을 응시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나에게 부끄러움이 왜 생겨나는지 그 순간을 직면한 후부터는 어떤 말과 행동이 좀 선명해진다는 점에서 『부끄러움』은 나의 과거를 되짚어볼 만한 책인 동시에 권태로울 수밖에 없는 이 시기에 내가 새로운 세계에 발 들이는 기분을 선사하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국무영 저 | 비룡소
요즘 권태를 엄청 느끼고 있었어요. 책도 계속 읽고 있었지만 독서의 권태도 좀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똥두』라는 작품의 표지 그림을 보는 순간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이다’ 직감했어요. 색감도 너무 좋죠. 작가님은 수채화 물감과 연필로 그리신대요. 그 느낌도 정말 좋고요. 작가님 이름도 정말 특이하죠. ‘국무영’이라는 이름을 아마도 스스로 지으신 것 같아요. 작가 소개글에 ‘국내산 무농약 박재영, 줄여서 국무영’이라고 되어 있어요. 이 책에 너무 반해서 유튜브도 찾아보고 인스타그램도 찾아봤거든요. 여성 분이고 젊은 분이신 것 같은데요.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고, 만화 교육도 하시면서 작품 활동을 해오셨고요. 『똥두』는 10년 전부터 작가님이 기획하고 구상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동두희’고요. ‘똥두’는 이 친구의 별명이에요. 두희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굉장히 많은 열다섯 살이고요. 자기 혐오가 아주 심해요. 엄마, 아빠도 마음에 안 들고요.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생겨서 왜 이런 집안에 태어났을까, 오빠는 엄마랑 아빠한테 굉장히 사랑 받는 아들인데 나는 왜 이럴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 친구죠. 그런데 두희에게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총 2권으로 나와 있습니다.
『똥두』는 서정적으로 보이는 그림과 다르게 약간 사나운, 매섭고 단호한 농담이 널려 있는 작품이다. 상처에 붙은 피딱지를 계속해서 뜯어내는 아이의 자학적인 손놀림처럼 국무영 작가는 자신이 지나왔을 십 대를 후벼 판다. - 윤태호 (만화가, 『미생』 작가)
‘변기동’이라는 남자친구를 만나고,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면서 머릿속에 톡 박히는 말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각 장 제목이 정말 좋거든요. 가령 ‘다정하게 대해도 상처 받지 않을 만큼 강한가 보다’라는 제목이 있어요. 남자친구 변기동은 모든 사람한테 다정하게 대해요. 두희는 상처 받을까 봐, 잘못 이해할까 봐 다정하게 못하는데 자신과는 다른 기동이를 보면서 생각하는 거죠. 쟤는 자기가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대해도 상처 받지 않을 만큼 강한가 보다, 하고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작가님의 홈페이지도 들어가고, 블로그도 들어가고, 인스타 팔로우까지 했어요. 보니까 『똥두』를 사랑하는 팬들이 있으신데 팬아트를 꾸준히 보내셨더라고요. 그걸 작가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다 올려두셨어요. 그래서 저의 목표는 2월 중에 『똥두』 팬아트를 그려보는 것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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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