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감각적 만족을 느꼈던 때를 떠올려 본다
아름다움, 그것을 만들어내는 시간과 노력과 돈에서 나는 모두 압도당하고 싶다. (2020.12.11)
나는 아름다운 것에 좋아한다. 더 많이 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다. 아쉽게도 생활에서 내가 감탄할 정도의 아름다움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사무실도 집도 원하는 만큼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뛰어난 감각과 경제적 조건, 부지런한 관리를 요하는, 아주 까다롭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작업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나로부터 먼 곳에 있기 십상이다. 미술관, 고궁, 영화관, 자연. 아름다움을 찾아 방문할 수 있었던 곳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멀어졌다.
올 초에는 식물을 많이 샀다. 크고 작은 화분을 창가에 두면 그럴싸한 아름다움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사고 사고 또 사도 여전히 아름다움이 부족했다. 방을 화분으로 가득 채워도 갈망이 해소될 것 같지 않았다. 방향을 바꿔 이번엔 잘 꾸며진 무대를 보기로 했다. 발레와 뮤지컬 등 각종 유튜브 라이브 공연을 챙기기 시작했다. 음악도 몸짓도 의상도 무대도 아름다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너무 작았다. 실제만큼 압도적인 경험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노트북 화면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13인치 화면보다 더 크게 보고 싶은 마음에 중고 시장을 뒤져 빔프로젝터를 마련했다. 과연 큰 화면으로 뮤지컬을 보니 조금 더 아름다움이 가까이 느껴졌다. 잘 샀구만, 잘 샀어.
여기까지 읽었다면 조금 헷갈릴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거야 돈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 둘 다 좋아하고 둘은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글이다. 아름다운 것을 찾다가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을 만족스럽게 보고 있는 이야기이다.
시즌 1을 시작하자마자 이 시리즈를 계속 볼 것을 알았다. 교회 안에서 소년들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비록 나는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숭고미를 느꼈다. 연이어 나오는 모든 의상과 세트가 아름다웠다. 고군분투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고뇌 뒤 벽지는 왜 저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사냥 나가는 남자 무리의 옷은 어쩜 이렇게 비슷한 듯 모두 다른 질감을 내고 있는지! 이야기 진행이 느리다는 평이 많았지만 나는 어쩔 도리가 없이 빠져들었다.
이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아낌없이 사용한 제작비일 것이다. 한 에피소드당 140억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왕실을 재현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자와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의 재정이 모여 아름다운 시리즈가 나왔다. 아름다움은 비싸다. 어째 이야기가 다시 돈 쓰는 것으로 돌아온 것 같이 느껴진다면, 이젠 인정할 때인 것 같다.
미술관, 고궁, 영화관, 자연. 내가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누렸던 아름다움은 내가 지불한 약간의 비용보다 훨씬 비싼 것이었고 평생을 갈아 넣어도 얻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나의 공간에서 그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이 공간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행복은 가능하지만 시시하다. 아름다움, 그것을 만들어내는 시간과 노력과 돈에서 나는 모두 압도당하고 싶다. 절대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에서 오는 압도적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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