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재 “<방구석 미술관>, 이번에는 한국의 미술가들”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제가 하듯 다른 분들도 작품에 깊이 들어가서 작품을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인생이 아주 다채로워질 거예요. (2020.12.11)
대학생 때부터 미술을 즐기고, 작품이 건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희열을 느꼈다는 조원재. 10년 이상 미술을 즐겨오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까지 달라졌다는 그는 미술을 즐기면서 갖게 된 통찰력과 직관력으로 작가들과 자신 사이에 작품을 두고 ‘대화’를 나눈다. 하나의 작품에서 작가의 감정을 느끼고, 작가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한다. 미술의 희열이라면 이런 것.
2018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방구석 미술관』을 쓴 조원재 저자는 두 번째 책을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미술가들을 떠올렸다. 한국 미술에 내재되어 있는 연결성과 예술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중섭, 나혜석, 장욱진, 김환기 등 20세기 초에 활동한 작가부터 생존해 있는 작가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10인을 소개하는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은 작가들의 삶과 그들이 살았던 사회의 풍경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즐기도록 돕는다. 조원재 저자는 “이 책을 미술에 관한 지식을 알려준다는 생각으로만 접근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미술이 주는 희열을 더 많은 사람이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물질로 토해내는 게 미술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는 이성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 감각적인 것, 감성적인 것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요. 특히 이성적인 논리가 주를 이뤘던 서구 미술과는 달리 한국의 작가들은 내면의 보이지 않는 창작열, 감각할 수밖에 없고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든 자신의 시각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했어요.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라고 봤고요. 독자 분들이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이들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국의 현대미술가 10명을 소개하고 있어요. 10명을 고르는 데 고민은 없었나요?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제 나름의 우선순위 같은 것도 있었고요. 20세기에서 21세기까지 나열했을 때 가장 한국 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당연히 더 많은, 좋은 작가들이 있고, 그분들의 우열을 가릴 수도 없어요. 그래도 일반적으로 많이 다뤄져 왔고, 많이 알려져 온 작가들을 소개하려고 했어요. 그런 작가들이 다른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부분도 많이 있으니까요.
책의 들어가는 글에서 독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인만이 가진 고유의 예술혼을 체감하길”(7쪽) 바란다는 말씀을 하는데요.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삶의 궤적을 갖고 있으나 동시에 이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면이 있을 거예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작가님께 직접 듣고 싶었어요.
한국의 20세기 역사를 보면, 서구 주도로 인한 근대화가 이루어졌어요. 우리 스스로 사회적 문화나 경제, 정치 체제를 만들어가지 못한 면이 있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 퇴색된 것들이 많고요. 우리의 역사를 잊은 면이 있는데요. 많은 미술가가 그랬어요. 서구에서 들어온 ‘근대주의’ 자체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탈피해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정신이기도 해서 우리 유산을 전위적인 마인드로 ‘지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미술가들이 많았죠. 그런데 이 책에 소개한 한국 현대미술가들은 우리 고유의 것을 잊지 않고 끌어 오면서도 서구에서 들어온 것을 조화롭게 섞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은 모두 ‘우리’를 고민했고요. 우리가 갖고 있던 무한한 역량과 정신적 유산을 길어오려고 했어요. 그것이 정말 특이한 점이에요.
이번 책에서 서구 문물의 유입,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커다란 단절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술에 분명한 계보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군요.
그걸 꼭 담고 싶었어요. 『이기적 유전자』의 마지막에 ‘문화적 유전자’라는 개념이 나오는데요. 굳이 그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느끼고 있죠. 분명히 민족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정신적, 문화적 유산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배우지 않아도 갖고 있는, 각인 되어 있는 문화적 유전자가 있을 텐데요. 이 책에 소개한 예술가들은 그것을 예민하게 감각했고, 내 안에 담긴 문화적 유전자를 계속해서 고민한 사람들이에요. 서양에서 들어온 붓, 유화 물감, 캔버스, 사조를 따라가고 공부할 뿐 아니라 내 과거, 내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계속 추측해왔던 게 무엇인가를 숙고했어요. 그것이 작품에 발현이 된 거죠.
그래서 장욱진과 김홍도의 공통점을 발견한다든지 이중섭과 고려 상감기법을 연결해서 관찰했는데요. 그런 부분들이 흥미로웠어요.
그랬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 김홍도나 겸재 정선을 함께 담은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 책을 쓰면서 최대한 담고 싶었던 것은 한국인들이 만들어온 문화적, 예술적 역량이었죠. 왜냐하면 보통 20세기 한국 미술가들을 얘기할 때 서양의 표현주의나,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하곤 하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당연히 그런 면도 있지만 다른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과거부터 존재한 미술이에요. 심지어 무속까지도요. 많이 잊혀졌지만 무교는 고조선부터 계속 있어왔던 우리 핵심적 토속신앙이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흥이 다 거기서 나온 거고요. 제가 보기에는 BTS가 하는 것, 그 안에 자연스럽게 담긴 것도 흥이라고 생각해요. 다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예술가들이 그것들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을 최대한 이번 책에 녹이려고 했어요.
반 고흐는 알지만 김환기는 모르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에 더해 한국 미술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연결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겠네요.
자연스럽게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첫 책을 내고, 당연히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노트에 ‘목표는 10만부’라고 적고 그랬어요.(웃음) 기쁘게도 실현이 됐고요. 지금까지는 그 이상이 판매가 되고, 읽혔죠. 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느낀 건 책임감이었어요. 저의 글이 많은 분들한테 읽혔고, 그만큼 이 텍스트가 영향력이 생긴 것인데 그렇다면 그만큼의 책임감을 갖고 글을 써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책을 고민할 때 자연스럽게 한국의 미술을 선택해 쓰게 된 거죠. 이번 책에서는 조금 더 저의 주관적인 생각과 예술관을 써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20세기라는 시대 상황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이 작가들의 젊은 시절 작품들이 굉장히 많이 유실되었다는 점이 무척 안타까워요.
작품이 유실된 경우도 많고, 전쟁으로 인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한 작가들도 많죠. 대표적인 작가가 이중섭이고요. 그는 살아 있었다면 정말 혁신적인 작품을 낼 수 있던 작가거든요. 이번 책에 다루지 않은 임용련과 백남순의 경우도 그래요. 이들은 나혜석과 함께 1세대 서양화가로 기록되긴 하는데 당시 작품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분들에게 어떤 화업이 있었는지 추적이 전혀 안 됐어요. 앞서 얘기한 것이 정신적인 단절에 관한 것이라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물리적인 단절, 물리적인 소실이 될 거예요. 한국 미술 연구하시는 분들도 아마 그게 가장 어려운 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해나갈 노력도 필요할 거고요.
특히 작가님이 유독 안타깝게 느끼는 장면은 뭔가요?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하고 생각하는 미술가는 누구일지 궁금해요.
이중섭을 꼽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요. 스스로 예술적 연구를 할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너무나 부족한 상황에 놓였던 사람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소>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어요. 이것은 존재하지 않던 소의 형상을 창조해낸 거거든요.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서예의 기법과 원리를 가져와서 그것을 유화로 표현해냈다는 것이 놀랍죠. 그것만 봐도 이중섭은 자신의 메시지와 자신의 느낌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은 거예요. 그 정도의 역량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안타깝죠. 한국전쟁 이후에 그가 맞닥뜨린 시련만 이겨냈다면, 생존했다면 엄청난 화업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나혜석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껴졌어요.
나혜석이 프랑스 파리로 갈까 고민을 했잖아요. 결국 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스스로가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추측해보면요. 한국에 자신의 아이들이 있는데 파리에 가면 그들을 영영 보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있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아이들을 만나지 못해 나혜석이 평생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잖아요. 결국 나혜석은 파리행을 선택하지 못했는데요. 그때 만약 파리로 갔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그랬다면 그곳에서 다시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아주 다르게 살아낼 수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의 불굴의 의지를 생각하면 분명 파리에서 기회를 찾을 수도 있었을 거고요. 가령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이성자 화백 같은 경우 한국을 떠나 파리로 갔거든요.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었는데 파리에서부터 유화를 시작했어요. 작품도 정말 좋고요. 그런 생각을 하면 나혜석이 오버랩 되면서 만약, 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거죠. 나혜석의 당시 선택이 그로서는 최선이었겠지만요.
작가들이 살았던 상황과 삶을 자세히 보여주었잖아요. 그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도움을 주는 걸까요?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는 미술에 본질적인 부분이 있다는 저의 통찰을 반복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미술가의 삶 안에서 예술이 탄생한다는 건데요. 저는 미술에 처음 접근하거나 미술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단 한 가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면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안타까웠어요. 미술을 미술로 보지 못하고 외면에 있는 지식적인 측면만을 보는 것 말이에요. 저는 그것이 미술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양 미술사, 미학, 철학 같은 것으로 미술에 접근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미술사나 미학이 미술이라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관습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안타깝죠. 모네의 작품이 가진 색채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거나 어떤 붓질을 여기서 왜 했는지에 집중하지 않고 “인상주의네, 나 알아.” 하고 사진 찍고 끝나잖아요. 그건 작품을 안 본 거죠.
내가 가진 지식과 작품을 맞춰보는 것에 불과하겠죠.
맞아요. 기존의 지식으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작품을 접하는 건 작품을 제대로 만나고 즐겼다고 볼 수 없죠. 내 인생에 반영되는 것이 거의 없는 거예요. 미술은 내가 작품을 만나서 내 감각으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 자체에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게 미술은 가지고 노는 장난감, 나의 지적 장난감이에요. 제가 하듯 다른 분들도 작품에 깊이 들어가서 작품을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고요. 그렇게 되면 인생이 아주 다채로워질 거예요. 다시 말해 지적 호기심으로 작품을 만나고, 그러다가 작가에 관심이 생겨서 그의 삶을 알아보고, 그렇게 작품이 다시 보이는 과정이 중요해요. 반드시 예술가의 삶으로 접근해서 작품을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어느 관점에만 치우쳐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오롯이 그 작품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렇게 되면 세상을 한 가지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시각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예요.
앞서 장난감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작품을 가지고 논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미술은 다른 얘기를 해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게 대개 정해져 있죠,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다르게 느끼려면 내 삶을 회의해보고, 비판해볼 수 있어야 해요. 비판하는 사람들이 곧 철학자고요. 사람들 스스로가 철학자가 되어 볼 필요가 있어요. 미술은 그냥 ‘다른 생각’을 하고, 벗어난 얘기를 하거든요. 미술관에 가서 작품들을 만나면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 다른 느낌과 다른 감각을 얘기해줘요. 그렇게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저는 현대미술관과 비엔날레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여행을 가지 못하고, 언어가 달라 대화하지 못해도 비엔날레에 가면 전 세계에 있는, 그것도 전혀 다른 생각과 전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막 떠드는 걸 들을 수 있어요. 그들의 언어를 몰라도 그들과 얘기를 할 수가 있죠. 지적 세계가 엄청나게 넓어지는 거예요.
책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와요. 작가님은 작품과 “대화한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미술을 즐기면서 통찰력과 직관력이 굉장히 발달했다고 느껴요. 미술가는 자기만의 세계관을 갖고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물체로 토해낸 거잖아요. 때문에 처음에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죠. 더구나 작가의 말을 다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는 거죠. 저는 작품을 보면 저에게 작가의 감정까지 툭툭 들어오는 걸 느껴요. 물체를 보는데 그 작가의 인간성까지 느껴지죠. 이것은 미술을 수없이 즐기면서 제게 생긴 통찰력 같아요. 10년을 넘게 봤으니까요.
미술 작품을 보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때도 역시 그런 때겠죠? 진짜 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네, 그래서 저는 난해한 사물을 보는 게 되게 좋아요. 와인을 마시다 보면 더 좋은 와인을 찾게 되잖아요. 감각이 발달하는 건데요. 어떤 미술을 볼 때도 마찬가지 같아요. 나의 사고력, 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감정들로 알맹이를 추출해내는 능력이 발달하게 되면 난이도 높은 작품을 보고 싶어지죠. 한편 좋은 작가일수록 작품에서 그런 것을 숨기잖아요. 숨기는지도 모르게 숨긴 것들을 발견해내는 게 저는 정말 좋아요. 지적인 쾌감이 대단하죠.
특별히 그런 쾌감을 주었던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김환기요. 그분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기가 쭉쭉 빨려요. 에너지가 너무 순수해서요. 작품마다 나오는 에너지가 다르고, 하는 말이 다르고, 부르는 노래가 다르고, 추는 춤이 다른데요. 김환기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에요. 깊은 산 속, 누구도 가보지 않은 옹달샘에 갔더니 물이 쫄쫄 흐르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옹달샘 물을 한 모금 마셨을 때, 그럴 때 느낄 법한 기분이 확 와요. 볼 때마다 그래요. 그게 정말 좋아요. 몸이 붕붕 뜨는 느낌이죠. 저는 이 책을 보시는 독자 분들도 이런 쾌감을 느껴보시길 바라요. 눈으로, 머리로 보는 그림이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하며 예술을 온몸으로 만끽하시기를요.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계셔서 많이 답답하실 텐데 방구석에서 이 책과 함께 소소한 예술적 즐거움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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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재> 저16,6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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