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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늘, 어둡고 강한 노스텔지어
공중그늘 <연가>
밝고 강한 에너지가 아닌 조금은 어둡고 강한 이들의 노스텔지어. 서정적인 '연가'가 찬 바람 부는 가을날 더없이 좋은 음악적 환유를 불러온다. (2020.09.29)
잔잔한 물결이 조용히 밀려오듯 낮고 깊은 파고를 지녔다. 엄격히 수록곡들의 면면을 살피자면 자연스레 많은 음악가가 연상된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그들의 명반 <Dreamtalk>(2012) 등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의 음악화. 즉, 가사를 통한 이야기 전달이 아닌 어떤 순간을 곡으로 포착해냈던 공감각적 심상이 여기에 있다. 지난해 <김일성이 죽던 해>를 통해 자전적 스토리를 녹여낸 천용성, 파라솔과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들려줬던 위트와 상상을 겸비한 노랫말. 사운드적으로는 신해경, 실리카겔이 선보인 몽환적 분위기가 음반의 전반을 감싼다.
기타 다양한 음악 동료들과의 교차점을 교류하지만 이 작품은 그 에센스를 끌어모아 지극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연가'는 '이 바람 속에 파란 싹은 뭘까 / 맞대진 사랑 속에 포근한 덩굴인가'라는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글로 문을 연다. 이어 레게리듬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보컬을 뿌리로 삼아 빳빳한 신시사이저를 밀어붙인다. 그룹의 작법은 이 세 개의 튼튼한 꼭짓점을 바탕으로 한다. 은유와 비유에 푹 젖은 말들, 곡에 슬며시 빠져들게 하는 불순물 없는 보컬, 이 모든 요소의 색감을 한층 살리는 건반. 굳이 하나의 특징을 더 꼽자면 공중그늘의 합은 아주 훌륭하다. 각 악기가 힘을 겨루지 않고 어우러지는 덕에 안개 같은 부유함이 부담스럽지 않다. 노래가 쉽고 그래서 잘 와 닿는다.
'공중그늘'은 그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의 이름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공중캠프', '나무그늘 카페' 등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2016년 밴드를 결성, 2년 후인 2018년 첫 싱글 '파수꾼'을 발매했다. 이 세월과 같이 꾸린 추억은 그대로 그룹의 정수가 된다. 리드미컬한 신시사이저가 돋보이는 '타임머신', '소꿉장난 같은 세상 속에서 / 내겐 돌아갈 곳이 없어' 노래하는 '모래', 장난스런 선율 사이 씁쓸함을 녹여낸 '비옷' 등 대다수의 곡은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노래 안으로 소환한다. 향수 어린 회고는 일면 지독한 독백이 되기 십상. 허나 이들은 그 개인성을 보편적 익숙함으로 돌려내며 보다듬을 전한다. 호소력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경력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분명 밴드에게는 허술한 겉멋이나 허세가 없다.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음반. 선명한 인상을 남길 튼튼한 곡들이 가득 차 있다.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보이스 장필순이 보컬로 참여한 '연가 2'가 결코 앨범에서 튀지 않을 만큼 이 5명의 루키들은 완숙된 역량을 펼쳐낸다. 아스라이 묻어 나오는 그리움, 쓸쓸한 사랑, 텁텁한 순간들을 옅은 회색빛 어조로 노래하지만 그 편린이 싫지만은 않다. 밝고 강한 에너지가 아닌 조금은 어둡고 강한 이들의 노스텔지어. 서정적인 '연가'가 찬 바람 부는 가을날 더없이 좋은 음악적 환유를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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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