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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라니, 관능적으로 쌓아 올린 사랑의 언어

켈라니(Kehlani) <It Was Good Until It Was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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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페이지를 과감히 덮고 새로운 장을 펼친 가수는 자신의 목소리와 감각이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는 데에 성공했다.(2020. 06. 10)


눈에 띄게 달라졌다. <You Should Be Here>의 다채로운 신시사이저도, <SweetSexySavage>의 통통 튀는 그루브도 없다. 3개월 전 발렌타인 데이 직후 작년 가을부터 교제하던 래퍼 YG와의 결별을 공개한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켈라니는 불안정한 심리를 두 번째 정규작 <It Was Good Until It Wasn’t>에서 가감 없이 표출한다. 어두컴컴한 음향과 미니멀한 드럼, 베이스가 주축을 맡는 알앤비에 더욱 뿌리를 내린 편곡. 기존의 팝 노선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결이다. 세션의 비중을 줄이니 가수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선명하고, 멜로디의 운율도 랩 음악을 듣는 듯 간소하다.

자연히 시선은 노랫말에 쏠린다. 내용이 다소 들쭉날쭉한 듯 보이지만, 작품의 테마에는 일관성이 있다. 요약하자면 사랑과 이별 이야기인데, 정서적인 교감보다는 섹스를 비롯한 육체적인 쾌락이 더욱 많이 언급된다. 그런 중독적인 사랑을 독에 빗댄 앨범의 첫 트랙 「Toxic」과 알리야(Aaliyah)의 「Come over」를 반복되는 라임으로 재해석한 노골적 성 비유의 「Can I」가 앨범을 상징. 거기에 장거리 연인을 찾아 클럽을 헤매는 「Hate the club」이 특별히 자극적인 가사 없이도 스릴러 영화 같은 스산함을 건네고 나면 이어서 「Serial lover」와 ‘침대 위에서 관계를 회복한다’ 노래하는 「F&MU」에서 극에 달한 퇴폐를 뿜어낸다. 사랑의 밝고 감성적인 면이 아닌 관능적인 그것을 언어로 성실히, 겹겹이 쌓아 올렸다.

이러한 서사가 듣는 이를 자극하는 가운데 촘촘하게 주조한 멜로디 라인으로 음악적인 성취에도 분명한 뜻을 둔다. 작품의 중반, 기류를 환기하는 「Everybody business」는 예상 밖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동원해 느끼함을 덜어내고 진솔함을 보태는 핵심 트랙이다. 더불어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목소리를 잘 활용하여 나지막한 울림을 완성한 「Grieving」, 끝 무렵 두 곡을 이어놓은 구성이 극적인 「Open」도 비범한 창작력을 피력하며 켈라니의 새로운 국면을 성공적으로 장식한다. 고저 굴곡이 크지 않아 시원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리듬 사이사이를 타고 흐르는 보컬 흐름에는 치밀함이 깃들어 있다.

음향이 워낙 응축되어 있다 보니 단번에 듣는 이를 손짓하는 매력은 다소 약하다. 언뜻 느슨하게 들림과 동시에 트랙간의 경계가 흐릿한 인상. 그럼에도 <It Was Good Until It Wasn’t>에서 감행한 아티스트의 변모는 나쁘지 않다. 그간의 페이지를 과감히 덮고 새로운 장을 펼친 가수는 자신의 목소리와 감각이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는 데에 성공했다. 켈라니의 분기점이 될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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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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