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6월 우수상 - 떡볶이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비법
거실의 낡은 컴퓨터를 켜고 토플 리스닝을 들으며 사 온 떡볶이를 먹었다. 매운 떡볶이를 후후 불며 먹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웃음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2020.06.01)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6월호 주제는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비법’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위해 토플 공부를 하던 시절, 언덕 위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에는 지금은 닭강정 집으로 바뀐 떡볶이집이 있었다. 이미 토플 공부에 많은 돈을 지원받고 있어서 용돈마저 달라고 할 수 없어 용돈이 거의 없을 때였다. 가끔은 차비가 없어서 강남역에서 한강 다리를 건너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었다. 지하철 역사에서 아저씨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면 그냥 타고 다음 날 돈을 가져다드리면 된다는데 차마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 학원에서 오전 스터디를 마치면 다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다이어트나 공부 핑계로 항상 빠졌다. 대신 집에서 싸 온 고구마와 믹스커피를 먹곤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그날은 대부분 스터디 모임을 하는 친구들이 회식하러 가는 날이었다- 집에 올라가는 언덕이 너무 높아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이면 언덕 아래에 있는 떡볶이집에서 2인분을 포장했다. 먹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서서 먹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검은 봉지에 뜨거운 떡볶이를 들고 중국어와 봉제공장 재봉틀 소리가 들리는 골목을 지나 잘 열리지 않는 초록 대문을 열고 사나운 개가 짖는 1층 1호를 지나 계단을 올라 2층 2호라고 쓰여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남동생, 부모님, 그리고 사촌 동생이 살았다.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있으며 생활비를 얼마간 내는 사촌 동생 1칸, 곧 있으면 군대 가는 남동생 1칸, 부모님 한 칸. 방이 3칸 있는 집이었지만 내 방은 없었다. 식구들 모두 자리에 들면 그제서야 나는 거실에 이불을 펴곤 했다.
거실의 낡은 컴퓨터를 켜고 토플 리스닝을 들으며 사 온 떡볶이를 먹었다. 매운 떡볶이를 후후 불며 먹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웃음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쏟아내고 나서 흐린 눈을 닦고 다시 영어단어를 외웠다. 11월에는 토플시험이 있었다. 하지만 성적과 관계없이 유학을 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지내다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날, 이사간 집 주소가 강남에서 강북으로, 아파트에서 다세대주택으로 바뀐 것을 알았다. 귀금속 사업장이 3개 있었던 부모님이 사업정리하시면서 중요한 일 있을 때 쓰려고 둔 금을 팔아 토플학원비를 주시던 8월, 학원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대학 동기를 만났다.
렌즈를 맞출 돈이 없어 쓴 오래된 뿔테 안경, 각질 제거를 잘하지 못해 거칠어진 얼굴, 엄마가 옷 공장에서 얻어 준 하얀 프릴이 달린 셔츠, 대학 시절부터 매고 다니던 커다란 배낭을 매고 서 있던 나. 반질반질한 얼굴, 베이지색 슬리브리스 원피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의 가방, 하얗고 가벼워 보이는 노트북을 두드리며 커피를 마시던 너.
반가운 마음에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아… 안녕…”
“나 이번에 여기 등록했어. 너도 다녀?”
“아, 나는 이제 끝나서 유학 가, 미국으로”
“그렇구나! 축하해. 언제 시간 되면 커피 마시자. 번호 바꿨지?”
“너도 유학…가려고?”
그녀는 나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고 말을 이어갔다.
“...음…나는 이제 곧 한국 떠나서… 반가웠어. 공부 열심히 해!”
그렇게 그녀는 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채 테이블에 있던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는 다시 노트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은 지하철에서 더덕나물을 파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돌리던 나의 눈빛과 같았다. 집에 가는 길에 언덕 아래 떡볶이집에서 처음으로 떡볶이를 먹었다.
11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토플시험을 치르고 나머지 학원비를 환불하고 그만두었다. 환불받은 돈으로 그날은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사서 집으로 갔다. 그 후 토플 점수와 상관없는 직장을 다녔고 독립을 했고 내 방이 생겼다.
여러 가지 시절을 거쳐 지금은 5살난 딸과 남편과 함께 방이 3개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종종 아이를 위해 간장과 한우를 넣은 궁중 떡볶이를 만들고 나와 남편을 위해 삶은 달걀과 어묵을 듬뿍 넣고 매운 떡볶이를 만든다. 매콤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면 남편은 내게 묻는다.
“떡볶이?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
매운 고춧가루 냄새에 눈물 콧물을 닦고는 남편을 향해 웃는다.
“응, 좋은 일 있었어”
서성지 책을 읽고 아이를 키우며 사소하고 소중한 일상을 글로 남기는 것이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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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아이를 키우며 사소하고 소중한 일상을 글로 남기는 것이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