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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칼럼] 문장은 짧을수록 좋을까?
<월간 채널예스> 2020년 6월호
무조건 문장을 짧게 만든 쪽이 오히려 더 답답한 ‘고구마 문장’이 되어버렸다. 카이사르의 문장은 지방질을 뺀 닭 가슴살 문장으로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한 문장이 짧지만, 길어야 할 때 길고 짧아야 할 때 짧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감 있고 분명하게 내딛는다. (2020. 06. 01)
내가 수신료 내는 보람을 크게 느끼는 KBS 프로그램은 ‘동물의 왕국’이다. ‘동물의 왕국’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레이션이다. “입이 큰 쪽이 이깁니다. 패자의 상처는 깊습니다. 때론 치명적입니다.” 하마들의 영역 다툼에 관한 내레이션이다. 간결하고 분명하게, 무엇보다도 짧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문장은 짧은 게 좋다고들 한다. 거의 모든 글쓰기 책들이 그렇게 말한다. 조지 오웰이 말한다.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는 반드시 뺀다.” 마크 트웨인이 말한다. “글에서 ‘매우’, ‘무척’ 등의 단어만 빼도 좋은 글이 완성된다.” 저명한 작가들 대부분이 짧은 문장을 권한다. 글쓰기는 글에 뭔가를 자꾸 더하는 일이 아니다. 글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일이다.
왜 짧은 문장이 좋을까? 첫째, 한 문장이 길면 읽는 사람이 불편해질 수 있다.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예전엔 한 문단이 한 문장인 글이 드물지 않았다. 우리말에는 관계대명사가 없지만, 마치 관계대명사절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은 글이다.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모호해진다.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헷갈리기 쉽다. 한 문장에 여러 사항들이 얽혀있어 읽는 사람이 생각의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읽는 이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없다.
둘째, 글 쓰는 사람 자신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이란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정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어떤 주제에 관해 복잡하게 이 생각 저 생각이 소용돌이칠 때, 글을 통하여 생각의 줄기를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장이 길고 복잡하다면?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그냥 내뱉었을 가능성이 크다. 짧고 고르게 안정적으로 호흡하지 못하고 헐레벌떡 가쁜 숨을 계속 내쉬는 꼴이다.
셋째, 한 문장이 길다는 건 글의 주제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자료를 충분히 조사하여 소화했다면 한 문장이 길어질 필요가 없다. 주제를 깊고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간결하게 쓸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주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을 때 문장이 자꾸 길어지기 쉽다. 한 마디면 될 것을 두 마디, 세 마디 덧붙이게 된다. 주제를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들킬까봐 일종의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럴 때가 제법 있다.
그렇다면 문장은 무조건 짧은 게 좋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무조건 짧게만 쓰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때 반걸음이나 반의 반걸음씩만 나아가는 어색하고 답답한 문장 걸음걸이가 된다. 더구나 문장이 짧다는 것 외에 아무 특징 없는 문장이 될 수 있다. 다음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김한영 옮김, 사이) 일부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3인칭으로 일컫는다.
“카이사르는 10군단을 독려한 후 우익으로 달려갔다. 이곳에서 아군은 크게 고전하고 있었다. 여러 대대의 기들이 한곳에 몰린 탓에 12군단 병사들은 너무 밀집해 있었고 이로 인해 서로의 전투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4대대는 백인대장들이 모두 전사하고 기수가 살해되었으며 대대기마저 사라졌다. 다른 대대의 백인대장들도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더 짧게 만들어보자. “카이사르는 10군단을 독려했다. 우익으로 달려갔다. 이곳에서 아군은 크게 고전하고 있었다. 여러 대대의 기들이 한곳에 몰렸다. 12군단 병사들은 너무 밀집해 있었다. 이로 인해 서로의 전투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4대대는 백인대장들이 모두 전사했다. 기수가 살해되었다. 대대기마저 사라졌다. 다른 대대의 백인대장들도 전사했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문장을 짧게 만든 쪽이 오히려 더 답답한 ‘고구마 문장’이 되어버렸다. 카이사르의 문장은 지방질을 뺀 닭가슴살 문장으로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한 문장이 짧지만, 길어야 할 때 길고 짧아야 할 때 짧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감 있고 분명하게 내딛는다. 한 문장은 짧은 게 좋다. 그렇다고 짧아야만, 짧을수록 좋다는 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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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문장, 고구마 문장, 카이사르의 문장, 자신감
출판 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쓴 책으로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있다.
<카이사르> 저/<김한영> 역13,500원(10% + 5%)
정치인, 그리고 군인으로 잘 알려진 카이사르는 사실 문장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갈리아 전쟁기』는 그가 기원전 58년부터 8년 동안 지금의 서유럽 지역에 해당하는 갈리아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며 기록한 역사서로, 기원전 1세기 서유럽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