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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진일보한 작곡 능력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IGOR』
<IGOR>는 과거의 강렬하고 변칙적인 모습을 재현하면서도 현재의 감각적인 작법을 활용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는 작품이다. (2019. 06. 12)
<IGOR>는 일반적인 힙합 앨범은 아니다. 굳이 칭하자면 네오 소울(Neo-Soul)에 가깝겠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조악한 디지털 에너지나 은은한 인간미같은 사운드적 인상에 주목하며, 랩을 부수적인 요소로 사용한다. 유일하게 드럼 비트만이 힙합의 향기를 미세하게 풍길 뿐이다. 타일러는 장르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데, 이는 스펙트럼을 넓히겠다는 선언이자 창작의 호기로운 도전이다.
과거 타일러는 무작정 예술을 쫓았다. 데뷔작 <Bastard>부터 <Cherry Bomb>까지 이어온, 다소 기괴하고 폭력적인 엽기 행각은 화제성과 파급력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채택한 수단이었다. 그런 그가 전작 <Flower Boy>로 전환점을 밟으며 이전과는 다른 국면을 보였다. 저음의 톤으로 살벌한 가사를 내뱉던 소년은 어느새 짙은 원숙미를 풍기고 있었고, 성숙해진 작법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자극 없이도 충분히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다만 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한번 매운맛을 첨가한다. 전작이 담백한 사랑의 서사라면 <IGOR>는 서투른 사랑과 아픔, 상처와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신 야누스(Janus)와 같이 부드럽게 사랑을 탐구하다가도, 구원을 갈망하며 절규하기도 한다. 「Igor’s Theme」이 이 양면성을 대표한다. 초창기의 모습에서나 볼 법한 날 선 노이즈가 비장하게 깔리더니 이내 드럼이 터져 나오고, 피치를 잔뜩 올린 가성 몇 방울이 원액에 투하된다. 이후 곡은 차례대로 중화의 과정을 거치며 피아노를 마무리로 「Earfquake」로 넘어간다. 분위기는 단 3분 만에 완전히 반전된다.
흔들리는 감정선의 파동은 이후에도 반복된다. 그루비한 드럼과 기우뚱거리는 멜로디의 「I think」, 몽롱하게 가사를 되뇌는 「Running out of time」이 따뜻한 온기를 가볍게 품나 싶더니, 격정적인 전자음을 끈적하게 터트리는 「New magic wand」와 빠른 박자감으로 몰아붙이는 「What’s good」이 차갑게 불안을 조성한다. 뻔뻔하고, 신선하다. 불안한 주제 의식을 충실히 이행하는 곡 간의 급격한 온도 차가 타성에 젖을 틈을 주지 않는다.
화려한 피처링진을 익명 하에 활용하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시켜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기도 하며 앨범을 연습장 삼아 발상의 욕구를 마음껏 해소한다. 다량의 보컬 샘플을 충돌 없이 겹겹이 쌓아 중량감을 만든 「A boy is a gun」, <Wolf>에서 선보였던 「Partyisntover/Campfire/Bimmer」의 플롯을 가져와 잘 다듬어 테마를 절묘하게 이어 붙인 「Gone, gone / Thank you」에서 실험적인 창의성과 이를 유연하게 대처하는 노련한 작법의 공존이 드러난다.
세계관의 연장선보다는 유기적인 단독 실험체에 가깝다. 거침과 부드러움을 오가는 질감, 그럼에도 가벼움을 무게감을 바탕으로 펼치는 다양한 템포. 이처럼 <IGOR>는 과거의 강렬하고 변칙적인 모습을 재현하면서도 현재의 감각적인 작법을 활용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는 작품이다. 진일보한 작곡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중간 점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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