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승한의 얼굴을 보라
김소영의 입 : 당연한 일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제 우리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경청하고 연대할 차례다
김소영의 말이 반가운 건 그 때문이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이 감당할 문제로 남겨둔 한국사회의 오랜 침묵을 깨는 목소리니까. (2019. 03. 25)
KBS <거리의 만찬>의 한 장면
KBS <거리의 만찬>에는 유독 엄마들이 많이 나온다. 장애아동들이 원활한 교육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엄마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육아의 고단함을 맘카페에서 달랬던 엄마들, 희귀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투병과정을 버티는 엄마들,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면서 가계를 책임지는 엄마들… 한국사회는 여전히 복지의 많은 부분을 가정의 몫으로 떠맡긴다. 돌봄노동은 각 가정에서 알아서 수행해야 할 의무이며, 사회에 연대를 요청하는 건 “공짜 점심”을 바라는 게으름이란 식의 으름장은 아직 그 기세가 세다. 그리고 가정의 몫으로 떨어진 돌봄노동의 대부분은 엄마의 몫이 된다. <거리의 만찬>이 엄마들에게 자주 마이크를 제공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엄마’라는 이유로 한국사회가 떠넘긴 돌봄노동을 수행하면서도 그 부당함을 호소하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지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듣기 위해서.
“결혼과 임신, 출산은 행복이라는 확신에 가득 찬 말들에 비해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느껴야 할 부담에 대해서는, 모두가 적당히 모른 척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래도 애는 있어야지, 출산율이 이렇게 낮은데, 어차피 남자가 임신할 순 없는데. 여러가지 말들로 결국 여성의 짐은 모두가 모르쇠하는 느낌. 그런데 석 달 동안 아이를 품어보니, 알면서 모르는 척했던 게 아니라, 여전히 잘 알지 못했던 거구나 싶다.”
방송인 김소영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으로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그가 올해 초까지 <거리의 만찬> 3MC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지켰던 걸 떠올렸다. 그 수많은 엄마들의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을 나누었던 김소영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조차 잘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일 하는 속도'를 재고 있는 것에 대한 한심함. 그럼 어쩌란 말인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회사는? 직원들은? 모든 상황을 생각하면 나만 조용해지면 되는데. 나와 같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까? 임신을 축복으로 여기지 못하는, 일하는 여성. 임신을 대비해 다가온 기회를 애써 포기하는 여성.”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전쟁이다. 그러나 사회는 이 모든 것을 “위대한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여길 것을 요구하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막는다. 남성 노동인구가 심리적 좌절을 경험할 때에는 그걸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부각시키면서, 여성 노동인구가 이처럼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변화와 사회적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 것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부차적인 문제인양 남겨둔다.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냈다는 환희보다, 온전히 제 몫으로 남겨진 짐의 무게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 이가 어디 한 둘일까.
“내가 이를 악물고 지내면, 나중에 나도 모르게 우리 직원에게도 그러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사회에서 어른이 되면 '나도 다 참아냈는데, 너는 왜'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숨기지 말고 공개해야겠다. 남편과 힘을 합쳐 방법을 찾아야겠다. (중략) 예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꼴사납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제는 숨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배려 받는 여성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김소영의 말이 반가운 건 그 때문이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이 감당할 문제로 남겨둔 한국사회의 오랜 침묵을 깨는 목소리니까. 임신 중인 여성이 배려를 받는 건, 남편이 착한 사람이라서도 아니고 한국이 저출산 국가여서도 아닌, 그저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일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낸 김소영을 응원한다. KBS <거리의 만찬>에서 공감하는 눈빛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던 그를 기억한다. 이제 우리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경청하고 연대할 차례다.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