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승한의 얼굴을 보라
전두환의 긴장한 얼굴 : 22년만에 다시 심판대에 오르다
오랜 좌절과 분노의 근원, 다시 한번 피고라 불리다
오늘(2019년 3월 11일) 아침, 그는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연희동 자택을 나서 광주지방법원을 향해 떠났다. (2019.03.11)
출처_ YTN
그의 이름은 아주 오랫동안 좌절의 근원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반란의 주모자이자, 시민을 보호하라고 쥐여준 총칼을 시민을 향해 돌린 내란의 수괴이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집요하게 억압하고 고문한 독재자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가 ‘나라의 큰 어른’ 흉내를 내며 나이 먹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저 모든 죄목들에 대해 이미 사면받았기 때문이다. 199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 심리로 열린 1심 재판은 그에게 사형과 추징금 2259억 5000만원을 선고했지만, 정치권은 그의 형 집행이 확정되기도 전에 사면을 먼저 이야기했다. 97년 대선을 앞둔 상황, 대구경북 지역의 표를 원치 않았던 후보는 아무도 없었고, 국민대통합이라는 핑계 속에서 반성도 한 적 없는 죄인을 자기가 먼저 용서해주겠다는 목소리가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대선이 끝난 직후인 1997년 12월 20일, 그는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의 협의를 거쳐 사면 복권됐다.
반란 및 내란의 수괴를 적법절차에 따라 처벌하고자 하는 욕망은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구성원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욕망이다. ‘시민 모두가 주인 되는 나라’라는 대원칙을 파괴한 자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약속을 지키는 길이고, 처벌의 정도를 법리에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해 집행하는 것이 근대 법치국가의 원칙을 지키는 길이니까. 그 소박한 욕망마저 좌절되는 순간 사람들은 분노한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이미 한 차례 사면받은 죄를 다시 물을 수 있는 길은 없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처단하는 상상을 하며 울분을 삭였고, 강풀은 아예 그를 처단하기 위해 모인 인물군상을 다룬 작품 <26년>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특유의 유들유들한 웃음을 웃으며 제 입장을 변명해 왔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그거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며 계엄군의 살육을 정당화했다(2003년). 자신을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 젊은이들을 향해서는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그런다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뱉었고(2008년), 2017년 출간한 자서전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전면 부정하며, 헬기사격을 증언한 시민수습위원 故 조비오 신부를 향해 ‘가면을 쓴 사탄’이라 비난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수많은 이들이 살의에 시달렸지만, 이미 한번 역사의 심판대에서 내려온 사람을 다시 세울 길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오늘(2019년 3월 11일) 아침, 그는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연희동 자택을 나서 광주지방법원을 향해 떠났다. 알츠하이머 증세를 비롯한 온갖 지병을 이유로 수차례 재판을 피해 다니다가, 광주지법이 구인장을 발부하자 그제서야 출석하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이다. 언론은 자택을 나서 차에 올라타는 그의 표정을 ‘긴장한 얼굴’이라 언급했다. 우리는 저 얼굴을 오래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고도 오랫동안 그 죄값을 치르지 않고 살아남아 민주공화국을 비웃은 저 자의 얼굴을. 대법원 판결(1997년 4월) 이후 22년만에, 비로소 우리는 그의 이름 앞에 다시 한번 ‘피고’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 피고, 전두환.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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