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교석의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나 홀로 크리스마스에는 스노글로브를
노력해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때
이 크리스마스 의식은 지난 1월에 넣어둔 크리스마스 장식함을 꺼내는 것부터 시작된다. 상자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지난 크리스마스에서 시간이 멈춰진 친구들과 1년 만에 마주하면서 한 걸음 더 아득해진 지난 세월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2018. 12. 11)
antiquitaeten-erzgebirge.de
꼭 어린 시절 추억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혼자 살다보면 자기만의 새로운 의식이나 문화가 하나둘 생기기 마련이다. 내게는 성인이 되어 다시 챙기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시즌이 그런 경우다. 몇 해 전부터 11월 말이 되면 고이 모셔두었던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꺼내 한구석에 놓고, 그 위에 작은 스탠드 불을 밝혀둔다. 비록 홀로 즐기는 소소한 장식이지만 도심 대형 건물 외벽을 수놓은 시즌그리팅 못지않다. 이 작은 장치 하나로도 집 안에 은은한 촛불을 켜놓은 것처럼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감돈다.
이 크리스마스 의식은 지난 1월에 넣어둔 크리스마스 장식함을 꺼내는 것부터 시작된다. 상자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지난 크리스마스에서 시간이 멈춰진 친구들과 1년 만에 마주하면서 한 걸음 더 아득해진 지난 세월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지난해와 똑같은 자리에 나만의 작은 크리스마스 마을을 만든다. 일주일에 한 번씩 먼지를 털 때나 자기 전이나 지나가면서나 눈에 걸릴 때마다 한 번씩 점점 희미해지는 추억을 더듬고, 새롭게 맞이할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를 덧칠하면서 온 집 안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들인다.
소소한 장식이란 말은 단순한 수사나 겸손이 아니다. 안방 콘솔 위에 둔 작은 스탠드를 아래에 크리스마스트리 모형의 팝업 엽서와 스노우볼로 배경을 만들고, 몇 해 전 도쿄에서 사온 폴란드와 독일의 꼬꼬마 목각 인형들과 <토이스토리>의 버즈와 우디, 성원 씨와 보화 씨 부부가 선물해준 플레이모빌 산타를 옹기종기 모아두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주변에 커클랜드 와이어 전구로 둘러서 파티 분위기를 낸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추억이 쌓이는 만큼 자작나무 카드로 만든 12센티미터 크기의 트리나 스노우볼 같은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난다. 설치가 끝났다면 사진을 찍어서 베트남에 있는 유년 시절 친구와 각자의 올해 크리스마스 풍경을 교환한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옛 이야기도 하고, 근황도 나누는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우리 가족, 특히 동생과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생일보다도 설레고 들뜬 시간이었다. 유년기에는 선물을 받을 기대에 밤잠을 설쳤고, 조금 커서는 TV에서 방영할 영화와 매일 잔치 같은 TV 편성표를 기대하며 무려 조선일보를 고대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연말연시의 꽤나 긴 휴일이 좋았다.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와 장식도 중학생 때까지는 계속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춘기와 입시를 거쳐 학업을 위해 뿔뿔이 흩어지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문화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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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해 전 11월 중순, 도쿄에서 마주한 풍경은 크리스마스를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오늘날의 일상으로 되돌려놓았다.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에 들렀을 때다. 라이프스타일 숍 코너를 휘 한 바퀴 둘러봤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목각 호두까기 인형과 스모커, 각종 트리 장식품, 목각 오너먼트, 촛대 등이 행복과 풍요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백발의 호호 할머니 한 분이 독일 ‘Erzgebirgische Volkskunst’사의 회전진열대 앞에서 굉장히 진지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고르는 장면이었다. 작고 정교하고 예쁘지만 비싼 목각 오너먼트가 걸려 있었는데 할머니에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설레고 기다려지는 일상의 행복처럼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이끌려간 몸은 할머니 옆 진열대에 있었다. 함께 서서 진열대를 천천히 돌려가면서 나만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한 장식을 골랐다. 돈을 주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는 게 처음인지라 슬쩍슬쩍 할머니의 ‘픽’을 참고했다.
그리고 나서 도시를 돌아보니 그전까지 무신경하게 지나쳤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편집숍이든, 카페든, 서점이든, 긴자의 장난감 가게든, 산겐자야 골목길에 숨어 있는 조그만 케이크 가게든 어느 곳에 가도 예외 없이 호두까기 인형이나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포인트가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선곡이 있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감성 어쩌고’ 보다는 일상의 위트에 가까웠다. 11월부터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이할 단장을 끝낸 도시 곳곳에 세련된 무드가 있었다. <뽀빠이>지를 구독하며 한창 도쿄와 사랑에 빠졌던 탓도 있고 내 스스로도 어색할 정도로 들뜨고 행복한 여행이어서 그런지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도쿄의 풍경은 매우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집 안에 작은 장식이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보길 추천한다. 혼자 살다 보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다는 게 처음에는 머쓱할 수 있다. 트리를 갖추기에는 공간의 여유도 그렇고 혼자서 너무 과하게 챙기는 것도 처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장식이 트리라는 고정관념을 깨면 혼자 사는 공간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아이템이 무궁무진하다. 작은 오너먼트를 하나 꺼내두는 것만으로도 한결 따스하고 설레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집 안에 품을 수 있다. 일본이나 유럽에서 특히 사랑받는 목각 호두까기 인형부터 꼬마전구를 이용한 월데코나 가랜드, 탁상용 트리, 포스터, 각종 오너먼트, 레터 보드, 하다못해 플레이모빌 같은 장난감까지 정말 다양하다.
다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커다란 황금색 필기체 문구는 평온한 집 안 공간에 두기에는 다소 직접적이다. 앵두 전구의 불빛이 어느 때보다 영롱해진다고는 하나 카페에서 흔히 접할 법한 장식품들을 굳이 나만의 공간에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혼자 사는 사람의 공간에 가장 적당한 크리스마스 아이템으로 스노글로브(Snowglobe)를 추천한다. 흔히 스노볼이라고도 불리는데, 각각의 제품 하나만으로도 인테리어상 완전무결한데다 크리스마스에 걸맞은 동심과 행복까지 담고 있다. 눈이 내리는 작은 세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따뜻함과 평온함이 올라오고, 흩날리는 눈을 보고 있자면 얼어붙었던 동심이 설렘으로 인해 꿈틀거린다.
좋은 스노글로브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실제로 눈이 내리는 것 같이 보이냐는 점이다. 눈가루 입자들이 물속에서 유영하듯 천천히 떨어져야 가능한 연출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물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투명해야 하고, 눈은 오랫동안 하늘 부분에 머무르면서 천천히 우아하고 사뿐하게 내려야 한다. 그래서인지 좋은 스노글로브는 대체로 생각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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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스노글로브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의료용 수술 기구 발명가인 어윈 퍼지가 발명한 슈니쿠겔(Schneekugel)이 원형이다. 그리고 어윈 퍼지가 설립한 ‘비엔나 스노글로브’의 기술이 여전히 업계 최고라는 사실도 알아두자. 우리나라에서도 루밍, TWL을 비롯한 몇몇 라이프스타일숍에서 이 브랜드의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혼자 살다 보면 자연스런 무드에 녹아 들기보다 노력을 해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일상의 이벤트를 즐겁게 맞이하는 태도는 혼자서 자신의 일상을 영위하는 궁극의 단계다. 혼자 살면 외로움 이외의 감정에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 불완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지금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탓이다. 경계해야 한다. 먼 훗날 오늘 하루를 돌아봤을 때 행복했던 순간을 느끼고, 행복했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충만한 시간을 보내길 고려해보자. 그러다 보면 새로운 추억이 켜켜이 쌓여서 언젠가 잘라보면 바움쿠헨 같은 나이테를 갖게 될 것이다. 내겐 크리스마스 시즌이 그렇다.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조각에서 뜨거웠던 청춘의 한때를, 그리고 지금은 행복한 가족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늘 설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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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