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병률,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니
각자의 질환의 ‘배틀 트립’
<월간 채널예스> 2018년 11월호
눈치를 줘도 그 눈치를 못 채고 자기 식으로 눈치만 보는 것도 질환이며, 눈치가 없으면서 눈치 보는 일에만 능한 것도 질환이다. (2018. 12. 03)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랑을 지키겠다고 애를 쓰는 것, 질환이다. 사랑한 지 10년도 넘었으면서 주변의 눈 때문에 혹은 ‘새삼’ 헤어지는 게 거추장스러워서 그 사랑을 유지(하는 척)하려는 것, 질환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애 쓰는 것, 질환이다.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사람들에게 고른 점수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사람들한테 한사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일방의 것, 질환이다.
여행이 자신하고 어울리지 않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세상의 ‘너도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의식적으로 보란 듯이 여행 한번 가보겠다고 낑낑거리는 것도 질환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이해가 아니라 다른 정신적인 무엇인데 ‘너를 다 이해한다’며 들이대는 것도 질환이다.
눈치를 줘도 그 눈치를 못 채고 자기 식으로 눈치만 보는 것도 질환이며, 눈치가 없으면서 눈치 보는 일에만 능한 것도 질환이다.
연락 안 한 지 10년도 지났으면서 결혼한다고 연락하는 것 질환이다. 그래도 마음속으론 늘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노라고 고백도 아니고 변명도 아닌 것을 늘어놓는 이, 중증 질환이다.
“언제 한번 밥 먹자” 라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 그것도 벌써 여러 번 말로만 그럴 뿐 그냥 그러고 마는 사람, 그 사람은 살면서 아무 누구에게나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을 또 얼마나 자주 남발할지 알 것만 같으니, 분명히 질환이겠다.
언제 한번 가을엔 그런 일이 있었다. 도서관 강연 요청이 와서 수락을 하였는데 강연 날짜가 임박하도록 일체 연락이 없어 이틀 전인가, 담당 사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강연이 오래전에 취소되었단다. “근데 왜 저에게는 말을 안 해주죠?” 라고 물었더니 “아… 제가 연락을 안 드렸던가요?” 라고 밖에 말 못하는 사서, 질환이 다 나았는지 모르겠다.
공항에 나가는 일은 피곤을 동반한다. 물론 그렇게나 자주 ‘놀러’ 떠나는 사람이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①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고 ②시간에 맞춰 공항에 나가 ③이런 저런 수속을 밟고 ④마지막으로 챙겨야 할 것(환전이나 전화 로밍 등)들을 해치우고 ⑤탑승하는 일까지의 과정을 누워 떡먹기라고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때 모든 것이 순조로우면 좋겠지만 거의 검색대를 통과하는 구간에서 기분이 하강하고 만다. 표정이 하나 없는 검색대 직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아침부터 얼굴 가득 짜증을 풍기고 있거나 옆의 직원하고 사담을 하거나 내 얼굴에 대고 하품을 하거나 일 처리 방식이 기계적이다 못해 손 끝 하나 스치는 일조차 꺼려지는 검색대의 사람, 있다. 거기다 나에게 중국말로 여권과 티켓을 보여달라고 한다면 더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건 당연하겠지(여권을 건네주면 여권 사이에 끼워 놓은 탑승권이나 짐표를 곧잘 떨어뜨리기도 하지). 그래서 그 아침에 모든 기분이 망가져버리는, 그래서 영원히 이 땅에 돌아오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건 분명 나의 질환이겠지만. 여행 떠나는 사람을 챙겨주러 나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떠나는 사람들의 특별한 기분이 있다는 걸 모르는, 도대체 자신이 어디에 서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질환, 이것이 질환의 바이러스가 감도는 공항의 아침 풍경이다. 힘들게 사람들을 응대하는 직업인에게 한마디만 하겠는데, 잘 서(앉아) 있는 거, 실력 아닙니다. 조금만이라도 섬세하세요. 그것이 실력이에요.
유명한 사람 뒤에 줄 서려는 것, 그러기 위해 오래 만나는 사람과의 인연이나 신뢰 같은 것을 무참히 짓밟는 사람 많이 봐왔다. 그래서 얻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있다면 그 얻은 것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그 줄에 서겠다고 사람 잘 버리는 쏠림 현상도 분명 질환이다. 매스컴에 자기를 드러내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람과 그것이 유명해지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숨기지 않는 자, 멋있게 드러내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내용이 얼마 없어 탈탈 털리고 만다면 그것도 곧 질환임이 밝혀질 것.
떠나는 일에 기갈 들린 나 같은 사람도 분명 질환이다. 매번 사람을 만날 때, 자리가 부드러워지기 위해선 술이 필요하다고 믿는 나 역시 질환이다. 생화 앞에서 조화라고 우기는 사람을, 감 없는 사람이라고 더 이상 안 보고 싶다고 성질 내는 나는 질환자인 것이 맞고, 싫은 것과 좋은 것이 어쩌면 그리도 명백할 수가 있나 싶은 나의 증상 역시, 명백한 질환이다. 그 많은 좋은 감정들을 쌓고 있었음에도 몇 가지 사건을 거치고 버텨보면서 당최 당해낼 자신이 없는 사람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어버리는 나라는 사람도 분명 감정 질환자이다.
바로 이 집 경우는 어떤가. 거기엔 피로감이 괴괴하게 뭉쳐 있다. 남자는 아무런 경제 능력이 없다. 동거 중인 여성이 일을 하면서 벌어들인다. 남자는 게임을 하거나 혼자 술을 마신다. 여자는 자동적으로 짜증내는 일이 잦다. 두 사람은 남들처럼 극장에 가거나 하는 일이 없고 외식도 하지 않는다. 그 생활이 6년 째. 남자는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지지 못한다. 그동안 받은 게 있어서. 여성은 놓아주지 못한다. 그동안 해준 게 많다고 생각해서. 말하나마나 이 둘의 관계는 질환으로 곪아 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분명 전환점이 되어 두 사람의 삶을 바꿀 거라고 조언하지만 두 사람은 질환에서 놓여날 자각 능력이 전무하다.
웬만한 질환을 붙들고 살지 않으면 현대를 사는 사람이 아닌 것인가. 질환은 멀리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만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기댄 채 살벌왕성하게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물론 더 큰 질환은 질환이 깊은 내가 무차별적으로 질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아마 뭐니뭐니해도 내게 있어 질환 관련 배틀 우승감은 이것이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열흘도 안 된 일이니.
한 여성이 모텔 같은 숙박시설을 전전하면서 방 안의 모든 집기를 때려부순다. TV, 냉장고, 테이블, 거울 같은 것들을 보이는 대로. 그리고 내 이름 석자와 전화번호를 방에 붙여 놓고 방을 빠져나간다. 경찰서에는 며칠 동안 몇 번에 걸쳐 나에게 전화가 오고 이 여성을 아느냐고 묻는다. ‘아는 사이냐’는 질문에 정말 1도 모르는 사이라고 대답을 하면서 통화를 시작하지만 통화 말미에 ‘어떤 사이냐’는 의심의 질문은 빼놓지 않는다. 연쇄적으로 그런 짓을 일삼는 사람이라 제보를 해도 경찰관은 그 연쇄의 꼬투리를 잡아 끊을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일말의 의심을 가지고 나를 찾아와 조사를 하지 않는 것도 도대체 이상하다. 경찰관은 ‘시대의 질환’은 세상 어디에나 흔한 거니까라며 사건 접수를 하고, 그 엄청난 양의 접수장들이 쌓인 위에다 또 하나의 접수장을 올려두는 일로 끝내려는 것일까. 아니면 일이고 나발이고 피곤을 저며 넣어 만든 샌드위치는 개나 먹으라지 따위의 시큰둥한 감정으로 연명하려는 걸까.
이런 질환을 치료해 줄 누구도 없는 시대, 이런 만성 질환을 누구라도 피해갈 수도 없는 시대. 이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주인공은 역시도 ‘바이러스 질환’이 맞다.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찬란』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2005) 등이 있으며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