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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스 게임> 몰리는 인생을 판돈으로 걸지 않는다
그렇다면 승자는 누구인가?
<몰리스 게임>은 모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몰리가 어떻게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 올림픽에서 우승까지 거머쥐는지에 관한 영웅 이야기인가? 아니다. (2018. 08. 30)
영화 <몰리스게임>의 한 장면
이 영화의 제목을 번역하면 ‘몰리의 게임’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몰리(제시카 차스테인)다. 영화 시작과 함께 그녀가 자신의 사연을 내레이션으로 늘어놓는다. 스무 살 시절, 그녀는 미국의 모굴 스키 3위의 실력에 해당하는 유망주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랭킹 1, 2위 선수들이 나란히 실수하면서 몰리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기존에 거둔 기록 정도만 유지해도 선발이 유력해지는 상황이다. 출발 좋고, 슬로프 라인도 눈에 잘 들어오고 첫 번째 공중회전도 좋다. 이 기세를 몰아 두 번째 회전으로!
<몰리스 게임>은 모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몰리가 어떻게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 올림픽에서 우승까지 거머쥐는지에 관한 영웅 이야기인가? 아니다. 두 번째 공중회전을 앞두고 눈 속에 얼어붙은 소나무 그루터기에 스키 한쪽이 걸리면서 머리부터 떨어지는 추락 사고를 당한다. 아, 그렇다면 이 영화는 선수 생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이를 이겨내고 다시 모굴 국가대표 선발전에 도전, 기필코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불굴의 인간 승리 드라마인가 보다. 땡, 아니다. <몰리스 게임>은 스포츠 영화 같지만,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몰리의 부상 후 별안간 12년을 건너뛴다. 이 영화의 동명 원작이기도 한 <몰리스 게임>을 출간한 그녀는 침대 위에서 깊은 잠에 빠진 듯 보인다. 스포츠인에서 작가로 변신해 책까지 낸 걸 보니 나름 성공한 인생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적을 깨고 스마트폰 벨 소리가 울린다. FBI가 문 앞에서 불법 도박장 운영 혐의로 체포하겠다며 당장 밖으로 나오란다. 몰리는 별다른 저항 없이 FBI의 체포에 순순히 응한다. 전직 스키 모굴 선수이자 지금은 책을 낸 저자로 보이는 몰리가 웬 불법 도박장 운영? 하버드 출신으로 로스쿨 성적도 우수해 여성 기업가를 최종 목표로 삼은 그녀의 배경과 너무 안 어울리는 듯하다.
<몰리스 게임>의 각색을 맡은 이는 ‘아론 소킨’이다. 아론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2010) <머니볼>(2011) <스티브 잡스>(2016) 등의 뛰어난 영화와 <뉴스룸> 등과 같은 역시! 뛰어난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다. <몰리스 게임>에서는 연출 데뷔까지 했다. 아론 소킨에게 <몰리스 게임>은 작가에 더해 감독으로까지 평가받아야 하는 일종의 야심작이다. 그에 걸맞게 아론 소킨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접점이 멀어 보이는 몰리의 스키 모굴 유망주와 불법 도박 운영자의 정체성 사이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연결 고리로 삼는다.
‘아이러니’는 아론 소킨이 인물을 바라보는 특유의 방법론이다. 온라인에서 수많은 ‘페친’을 거느린 마크 저커버그가 정작 오프라인에서는 친구 하나 갖지 못한 ‘아이러니’를,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기록적인 연승을 이끈 구단주 빌리 빈이 최고의 순간에 올라서도 냉혹한 승부의 세계를 생각하며 느끼는 고독의 ‘아이러니’를 각각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볼>에서 주목하며 인물 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형식으로 인물의 미래를 가늠하는 아론 소킨 특유의 전개 방식은 <몰리스 게임>에서도 여전하다. 다르다면, 전작들이 한창 잘 나가는 이들에게서 찬란한 햇빛보다 어둠의 감정을 끌어냈다면 <몰리스 게임>은 거듭된 실패로 과거와 현재가 어둠으로 점철된 그녀에게서 미래를 비추는 한줄기 등대 불빛을 쏘도록 한다.
영화 <몰리스게임>의 한 장면
스키 모굴 선발전에서의 부상과 불법 도박장 운영 혐의로 체포된 몰리의 전력은 포커 게임에 비유하자면 가능성을 판돈으로 건 삶의 실패다. 앞서 <몰리스 게임>을 두고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고 단언한 것처럼 포커가 주요한 배경이라고 해서 도박 영화 또한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스키 국가대표 선발 실패 이후 우연히 불법 도박장 매니저로 발탁되어 승승장구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며 포커를 노출하는 건 게임과 삶 사이에서 아론 소킨이 상관관계를 끄집어내려는 이유이다.
몰리가 운영하는 불법 도박장에는 유명 배우, 스포츠 스타, 대기업 인사 등이 대거 몰린다. 돈이라면 부족해 보일 것 없는 이들이 밤새 포커를 치고 거액을 벌거나 반대로 거액을 잃는다. 인간의 삶에 비하면 짧은 시간에 성공과 실패가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인간의 삶을 칩이 왔다 갔다 하는 포커판으로 은유했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슬프다, 삶을 성공과 실패로 재단한다면 우리는 인생을 판돈으로 건 한낱 도박꾼이라는 얘기니 말이다.
그렇다면 <몰리스 게임>에서 승자는 누구인가? 몰리는 밝힌 대로 지금 체포되어 구형 선고를 기다리는 중이다. 불법 도박장 운영으로 잡혔다면 여기에 드나들었던 이들 또한 안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돈은 좀 땄을지 몰라도 몰리가 자신의 이름을 불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칠지도 모를 일이다. 도박이란 게 그렇다. 승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돈을 딴 사람도, 잃은 사람도 축적되는 건 패배다. 그 끝은 결국 실패다. 불법 도박장과 관련한 이들은, 몰리를 비롯하여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모두 실패했다.
인생은 다르다. 실패가 축적돼도 그것이 끝을 단언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듭되는 실패가 다가올 성공을 담보할 축적된 가능성일 수 있다. 그게 포커와 같은 도박과 인생이 다른 이유다. 몰리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큰 실패를 두 번이나 겪었다. 도박꾼이었다면 판돈이 전혀 남지 않은 상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삶의 관점에서는 실패의 축적이면서 귀중한 경험 쌓기이다. 몰리에게는 여전히 판돈이 남은 상태다. 여전히 그녀는 똑똑하고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고 무엇보다 실패로 얻은 경험치가 있다.
아론 소킨은 어떤 인물을 다루더라도 시간 속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건져내는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인물을 다루는 데 있어 과거의 축적된 사연 속에 현재의 주인공을 바라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주인공에게 삶의 부채감을 부여하여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시간 위에 존재하는 인간은 시간 속에서 형태를 갖는다. 다시 말해 아론 소킨은 시간으로 인간을 빚는다. 그렇다고 미래까지 바라보거나 예측하지 않는다. 미래는 순전히 삶이라는 시간 위를 걷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각자의 책임감인 까닭이다. 아론 소킨은 확신은 제공하지 않아도 인물이 밑그림 그리는 인상만큼은 뚜렷하게 제시한다. 이건 아론 소킨만이 오른 경지다. 아론 소킨에게 영화란 흥행을 판돈으로 건 게임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또 다른 가치와 감정을 가진 인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삶을 밝히는 인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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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