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의 옹기종기]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려면 (G. 강원국 작가)
『강원국의 글쓰기』 호감형으로 거듭나는 글을 쓰려면?
“’누구처럼’, ‘누구같이’ 아니고, 오직, ‘강원국답게’ 살아가는” 강원국 작가님이 나와 계십니다. (2018. 08. 30)
나는 일단 뭐라도 쓴다. 주제건, 첫 문장이건, 전하고 싶은 한 줄이건 상관없다. 생각나는 것을 쓴다. 물론 쓰다 보면 생각이 바뀌고, 처음 쓴 글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인가 써놓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글을 써야 한다면 제목이라도 써놓자.
뇌를 작동시키지도 않고 계속 미루면 끝내 못 쓴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일단 쓴다.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단순하고 명쾌한 말을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 글쓰기의 어려운 점이죠. 정말이지, 글쓰기가 뭐길래(웃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살면서 꼭 한 번은 찾아오는 것 같은데요. 오늘은 『대통령의 글쓰기』 , 『회장님의 글쓰기』 에 이은 세 번째 책 『강원국의 글쓰기』 를 출간하신 강원국 작가님을 모시고 우리 모두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와 글을 잘 쓰기 위한 비법을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인터뷰 - 강원국 작가 편>
오은 : 인터뷰를 시작에 앞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쓰는 사람. 말하는 사람. 어떻게 더 잘 쓸지 늘 궁리하는 사람. 기업에서, 청와대에서, 고스트라이터로 17년을 살았다. 특히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독하게 독서하는 두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곁에서 8년을 지내며 지독하게 글쓰기를 배웠다. 덤으로 과민성 대장증후군까지 얻은 것은 공공연한 비밀.
청와대를 나와서는 인생 후반전을 편집으로 먹고 살겠다는 다짐으로 출판사에 들어갔다. 그러다 1년 반쯤 지난 어느 날 강원국은 출판사에 2개월 휴직계를 낸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에게 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라고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오는 길에 커피를 사왔다. 씻고, 책상에 앉기를 계속했다. 그렇지만 처음 20일을 한 꼭지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놀랍게도 그 시간을 견디자 글이 봇물 터지듯 써졌다. 그래서 강원국은 습관의 힘을 믿는다. 지금도 매일 한 가지씩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기록한다.
2014년, 드디어 완성한 책 『대통령의 글쓰기』 가 출간된 지 2년이나 지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강원국은 1,000번 넘게 강연을 하며 쓰는 사람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벤치마킹 모델은 유시민. ‘글쓰기’ 하면 유시민 보다 강원국을 떠올리게 되기를 꿈꾸고 있다.” 저희가 준비한 소개, 어떻게 들으셨어요?
강원국 : 앞으로 소개글로 쓰면 좋겠는데요.(웃음) 2014년에 『대통령의 글쓰기』 를 냈는데 2016년에 최순실 사태가 터졌고, 그때가 ‘되어서야’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했잖아요. ‘되어서야’가 아니고요. 이미 2014년에 ‘올해의 책’이었고요. 2015년에도 베스트셀러였어요.(웃음)
오은 : 늘 사랑 받는 스테디셀러!로 바꿔야겠네요.(웃음)
강원국 : 오은 시인이 많이 당황하시네요.(웃음)
오은 : (웃음) 오늘 강원국 작가님께 드리는 ‘deep & slow’는 이것입니다. “호감형으로 거듭나는 글을 쓰려면?”
강원국 : 내 자체가 호감인데…(웃음)
오은 : 그건 아는데요. 마지막에 그 말을 풀어서 친절하게 다시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 출간 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4년 만에 낸 책이고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한도 끝도 없이 든다.”고 하셨어요. 이유가 뭘까요?
강원국 : 제가 당사자니까요. 책을 보면 볼 때마다 아쉬움이 있고, ‘이렇게 쓰는 게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하고 여러 생각이 계속 나서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책을 평생 못 낼 것 같아요. 작고하신 최인훈 선생 같은 경우는 중쇄를 할 때마다 고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대통령의 글쓰기』 를 190쇄 넘게 찍었지만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습니다. 초지일관.(웃음)
오은 : 『대통령의 글쓰기』 책을 내고 천 번 이상 강연을 하셨다고 했잖아요. 오늘도 녹음 끝나고 강연이 있다고 들었어요. 작가님께 강연은 새로운 힘을 가져다 주는 매개 같아요.
강원국 : 저는 강연에서 에너지를 얻는 스타일이에요. 제게 강연은 사는 이유인데요. 산다는 것은 내가 하루하루 성장하는 거거든요. 그래야 사는 거죠. 강연은 저를 살아 있게 해요. 강연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씩 추가하려고 하는데요. 그렇지 않으면 어제의 강연과 오늘의 강연이 같고, 그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똑같은 거니까요. 내일도 그렇죠. 새롭게 추가되는 게 없으면 내일이 기대가 안 돼요. 그건 죽어 있는 거죠. 저는 정말 강연을 통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요.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해요. 강연이 없었다면 저는 저도 모르게 죽어 있고,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계속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강연이 행복해요.
오은 : 글쓰기도 강연의 매력과 비슷한가요? 강연과 글쓰기를 비교하면 어떠세요?
강원국 : 글쓰기는 괴로워요. 글을 쓰면 말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 때문에 고통을 참는 것 같아요. 글 쓰는 게 재미있는 분들은 타고난 분들이 아닐까 하고요. 저는 그 경지는 아직 이해가 좀 안 되는데요. 나를 말하기 위한, 나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글쓰기인 것 같아요. 책을 쓴 데서 그치지 않고 책 내용으로 강의도 하고, 반응을 확인하고, 이런 것을 더 즐기는 편이에요.
오은 : 그렇다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강원국 : 확실히 그렇죠.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읽고 듣는 사람은 많은데 쓰고 말하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잖아요. 자기가 말할 자격,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러면 글도 안 늘고 말도 늘지 않아요. 의도적으로라도 말을 많이 하시고요. 그 내용을 정리해서 글로 쓰세요. 또 글로 정리된 것을 말로 실험해보고요. 이걸 안 해서 사는 게 재미 없는 것 같거든요.
오은 :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글을 못 쓰고, 눌변인 사람은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 얘기는 왜 나온 걸까요?
강원국 : 저 같은 사람이 드물죠.(웃음)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오은 : 드문 사람들끼리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웃음)
강원국 : 드문 경우죠. 그런 드문 경우가 되는 방법은 말과 글의 상호작용을 계속 해나가는 거예요. 말한 걸 쓰고, 쓴 걸 말하고, 이 안에서 계속 노는 거죠. 그때 외부에서는 읽기, 듣기가 들어와야 하고요. 그것 없이는 에너지를 못 얻으니까요. 그런데 대부분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안 쓰는 경우가 많고요. 잘 쓰는 분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처럼 한쪽이 특출 나지 않은 경우는 다 해야죠.
오은 : 매일 원고지 5매를 쓰는 습관을 가지라는 글쓰기 팁이 있었어요. 저는 그것을, 패턴을 만들고 가끔 패턴에 균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으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습관을 가지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강원국 : 두 가지만 있으면 돼요. 매일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시도하는 것 하나. 또 그 시도 전에 자기만의 의식을 치르는 것 하나. 하나 더 추가한다면 쓰고 나서 보상해주는 것인데요. 중요한 것은 일정 기간을 지속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20일만에 습관이 됐는데요. 가로 주차를 해놓은 차가 처음엔 안 밀리잖아요. 하지만 계속 밀면 어느 순간 밀려요. 한 번 밀리면 계속 가고요. 그때까지 시도를 해야 해요. 밀릴 때부터는 에너지가 필요 없어요. 손만 대면 가잖아요.
오은 : 글을 쓰기 전에 하시는 것은 뭔가요?
강원국 : 글을 쓰기 전에 술을 한 잔 해요. 캔맥주 하나, 또는 캔막걸리 하나, 또는 정종 한 컵. 가는 카페는 두 군데가 정해져 있는데요. 오전에는 S카페, 오후에는 H카페를 가죠. 그리고 카페에 가서 하는 중요한 의식이 있어요. 안경을 쓰는 거죠. 평소에 안경을 안 쓰거든요. 그래서 안경을 쓰면 몸이 글 쓰는 줄 알아요. 특히 안경을 융으로 닦을 때,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해요. 글쓰기 모드로 쫙 들어가요. 누구나 그런 의식을 치르면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은 : 글쓰기 팁으로 말씀하신 ‘일단 쓴다’와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막막해요. 저는 백지를 볼 때마다 어떤 것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무엇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거든요.
강원국 :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쓰기 전보다 상태가 좋아진다는 믿음이에요. 쓰기 시작하면 훨씬 마음도 편해지고요. 쓰기 전보다 쓸 수 있는 상태로 훨씬 잘 빠져들 수 있어요. 그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남과 비교하지 않겠다고 생각해야 해요. 쓰면서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죠. 내가 남보다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하지만 나는 내 길을 가겠다,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쓸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믿어요.
오은 : 특히 저는 이게 제일 좋았어요. ‘한 병 더’ 인데요.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다음에 어떤 것이 있는 거죠. 그래서 다시 쓰게 되고요. 그런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강원국 : 이게 벽 같은데 반드시 벽 너머가 있어요. 그 너머가 있다고 믿어야 해요. 술자리에서 그런 경험을 했어요. 저는 술이 턱까지 차서 더 이상 못 먹는데 꼭 어떤 사람이 “여기 소주 한 병 더요!”라고 해요. 그때 저는 절망을 하죠.(웃음) 나는 못 먹는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요. 다 먹었어요. 남겨본 적이 없어요.(웃음) 그런 것 같아요.
오은 : 재미있었던 게, 목차 이야기였어요. 강원국 작가님은 서점에 가면 책의 목차를 보신다면서요?
강원국 : 저는 주로 예스24만 보죠.(웃음) 목차를 보면서 우선 글의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얻어요. 또 목차를 보면 그야말로 상상력, 영감을 얻거든요. 목차가 되게 함축적이잖아요. 저는 목차를 보면서 글감을 찾아요. 목차의 한 줄이 내 글의 주제가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목차를 보는 것이 숲을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오은 : “공감 수준이 글이 수준을 결정한다”(120쪽)고 하셨잖아요. “글을 잘 쓰려면 잘 살아야 한다”(317쪽)도 그런데요. 공감 능력이 글쓰기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강원국 : 기본적으로 독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봐요. 독자를 자기 머릿속이든지 눈앞에 앉혀놓고 독자와 대화하듯이 쓰는 글이 쓰기도 쉽고요. 잘 쓸 수 있어요. 안 그러면 벽에다 대고 말하는 거잖아요. 좋은 글을 쓰려면 독자의 마음, 심정, 입장, 처지, 이런 것을 잘 알아야 해요. 그래야 독자가 공감을 해요.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은: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세예요. 어떤 대상이 되어보는 거죠. 못 되어볼 대상이 없다고 생각해요. 여성도 될 수 있고, 추상명사가 될 수도 있고, 0.5 같은 숫자가 될 수도 있어요. 이런 것들이 영감을 불러 일으키더라고요.
강원국 : 역시 시인이시네요. 감정이입, 역지사지가 되어야 해요.
오은 : 요즘은 독립출판도 많이 나오고요. ‘만인저작의 시대’라고도 하셨는데요. 책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한 마디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강원국 : 책을 쓸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경험이고요. 그것이 자기만의 이야기,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지성, 지식, 이런 것으로 책을 써야 한다는 편견, 고정관념이 있어요. 공부를 많이 한 사람, 독서를 많이 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이 책을 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책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요. 머리로 쓴 것보다는 가슴으로, 가슴으로 쓴 것보다는 손발로 쓴 글이 더 좋다고 신영복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자기 경험을 글로 써야죠.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공부 많이 한 분들은 경험이 일천해요. 공부만 하느라고 말이에요. 또 승승장구 해서 맵고, 짜고, 쓴 경험이 없어요. 역경, 고난, 시련을 겪지 않았어요. 그런 분들이 머리로 쓴 것보다 고생의 경험으로부터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 노하우를 쌓은 분들이 자기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쓴 게 좋아요.
오은 : 강원국 작가님은 강연도 많이 하시고, 글도 쓰시는 분이니까 제가 롱런하는 팟캐스트를 하려면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가야 할지 조언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원국 : 오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임계점까지 참고 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죠. 아직은 임계점이 안 됐어요. 오래 하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발휘하게 될 거예요. 저는 오은 시인의 역량을 알거든요.
오은 : 초반에 드렸던 ‘deep & slow’, “호감형으로 거듭나는 글을 쓰려면?”에 대한 답을 들어보겠습니다.
강원국 : 저는 찌질한 스타일이에요. 막 자랑을 해도 사람들이 저를 짠하게 봐요.(웃음) 그게 중요해요. 그러면 호감을 가져요. 왠지 도와주고 싶고요. 저는 항상 아내한테 혼난 얘기 같은 것을 써요. 거기에 알게 모르게 빠져드는 거죠.
오은 : 남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연을 말하면 호감을 얻을 수 있겠군요. 마지막으로 저희 <오은의 옹기종기>에 출연하신 소감과 함께 강원국 작가님의 팬 분들과 청취자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강원국: 오늘 오은 시인 만나서 즐거웠어요. <옹기종기> 더 잘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은: 고맙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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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너랑 나랑 노랑』 『유에서 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을 썼으며,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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