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허남웅의 영화경(景)
<서치> 내가 찾은 건 딸인가, 딸의 사생활인가
예술 매체의 형식 또한 진화하기 마련
오해였다. 윈도 화면은 <서치>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건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였다. 윈도 화면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는 마우스 커서를 따라가면 이 영화의 주인공 가족의 사연이 펼쳐진다. (2018. 08. 16)
영화 <사치>의 한 장면
<서치>의 기자시사회에서 작은 소동(?) 비슷한 게 있었다. <서치>를 제작한 영화사의 로고가 나오고 영화가 시작할 즘 10년도 훨씬 더 된 버전의 윈도 화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 사이에 ‘엇! 영상사고다’ 하는 자그마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디지털화가 된 요즘의 극장이 영화를 상영할 때 필름을 돌리지 않고 컴퓨터로 영상을 전송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었다. 오해였다. 윈도 화면은 <서치>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건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였다. 윈도 화면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는 마우스 커서를 따라가면 이 영화의 주인공 가족의 사연이 펼쳐진다. 폴더 속의 가족사진으로, nortion 프로그램이 알림 하는 이들 가족의 일정으로,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PC의 윈도에서 맥의 OS로, 아이폰의 영상 통화로, 메신저로, 인스타그램으로.
데이빗(존 조)은 고등학생 딸 마고(미셸 라)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왜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았느냐고 가볍게 잔소리 후 어디냐고 묻는다. 생물 공부를 하기 위해 친구 집에 머문다는 딸은 밤늦게 귀가하겠다며 먼저 통화를 끊는다. 녀석도 참, 괘씸하게 생각하다가도 몇 년 전 암에 걸려 세상을 뜬 엄마의 부재에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딸이 자못 대견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컴퓨터 작업 중 잠이 든 데이빗은 맥북 화면에 뜬 전화 알람 소리와 영상 통화 신호 음을 듣지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 딸의 부재중 전화 3통을 확인한 데이빗은 전화를 받지 않는 마고에게 통화를 받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문자를 남긴다. 그런데도 하루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는 데이빗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동생 피터(조셉 리)를 페이스타임으로 연결한 데이빗은 딸의 실종신고를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고 고민하다 결국, 구글을 검색해 경찰에 전화한다. 실종 전담 형사 로즈마리(데브라 메싱)가 배정되고 마고의 행방을 쫓다 혼란해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가출도 생각해봐야 해요.”
이 리뷰를 쓴 첫 문단부터 언급한 ‘PC’, ’윈도’, ‘맥’, ‘OS’, ‘아이폰’, ‘페이스타임’, ‘구글’ 등에 더해 ‘페이스북’, ‘텀블러’, ‘유튜브’, ‘CCTV’ 등을 쭉 따라가다 보면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를 환히 꿰뚫어 보게 한다.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화면과 화면의 면 대 면, 즉 스크린 라이프로 비약적인 (누군가에게는) 발전, 또는 (누군가에게는) 퇴보를 가져왔다. 기술의 동반과 함께 변화한 커뮤니케이션은 상대적으로 스크린 라이프에 약할 수밖에 없는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거대한 소통의 블랙홀을 뚫었다. <서치>의 부녀, 즉 데이빗과 마고의 관계일 텐데 데이빗은 마고의 실종 후 딸의 온라인상에서의 활동을 살피다 충격을 받는다.
데이빗이 그간 보아온 마고는 모범적인 딸이었다. 엄마의 죽음 이후 딸이 빗나가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고 늘 아빠에게 웃음을 띤 모습이 슬픔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던 거다. 정말 그럴까? 페이스북에 태그된 사진 속,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영상 속 마고는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 해 주변을 서성이거나 엄마의 죽음 이후 갖게 된 상실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상태다. <서치>의 원제는 ‘서칭 Searching’이다. 영화는 딸의 실종 후 이를 찾아 나선 아버지의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딸을 그동안 오해하고 있던 아빠가 딸의 노트북을 열어 실체를 알아갈수록 느끼는 충격의 감정 또한 스릴러로 취하고 있다. 왜 이 영화가 온라인상의 영상으로 영화를 구상했는지는 변화한 커뮤니케이션 생활상에 더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성격과 감정을 달리 가져가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목적이다.
이건 어쩌면 또 다른 버전의 영화용 관음증과도 같다. <서치>에 호의적인 평가 중에는 이런 게 있다. ‘히치콕에 견줄만하다’(THE PLAYLIST)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 것만큼 긴장감 넘치고 전율이 충만했다는 의미일 테다. 좀 다르게 접근해 볼까. 히치콕의 영화는 보통 관음증을 중요한 극 중 시선으로 가져가고는 했다.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내를 조사해달라는 친구의 요구에 따라 뒤를 밟는 남자의 사연을 다룬 <현기증>(1950)이 그랬고 모텔에 투숙한 여자를 벽의 구멍으로 몰래 살펴보는 다중 인격의 남자가 등장하는 <싸이코>(1960)가 그랬다. 진짜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이창>(1954)이다. 다리에 깁스한 남자는 바깥에 나가지 못해 무료한 시간을 견디려 카메라로 바로 건너편 아파트의 사람들을 몰래 살펴본다. 여기서 방점을 찍고 싶은 건 ‘아파트’이다. 속된 말로 ‘다닥다닥’ 붙어살게 된 아파트 주거 형태가 기본이 되면서 그런 당시의 생활상이 극 중 이웃의 사생활을 엿보는 관음증의 형태로 드러나며 <이창>이 만들어졌다.
영화 <사치>의 한 장면
<서치>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자 <원티드>(2008)의 감독으로 유명한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다. 스카이프로 영화 업무를 보던 그는 업무가 끝나고도 실시간 공유 기능을 끄지 않은 상대방 덕(?)에 <서치>의 설정을 떠올렸다.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고 SNS로 대화를 하는 등의 생활을 컴퓨터 화면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삶에서 더 나아가 예전 같았으면 건너편 아파트를 몰래 엿봐야 상대의 내면과 걱정까지도 알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모니터 화면으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은 PC와 모바일 기기에 우리의 일상이 담겨 있다는 <서치>의 형식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했다. 그렇다면 감독은 스크린 라이프에 익숙한 인물이어야 했다. <서치>로 장편 연출 데뷔한 1991년생의 아니쉬 차간티는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 출신이다. 구글이 런칭한 스마트 안경 ‘구글 글라스’로 아내의 임신 소식을 인도의 어머니에게 전하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모습을 담아낸 홍보 영상 <구글 글라스: 시드>를 만든 이력의 소유자다.
아니쉬 차간티는 현대의 언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이용한 콘텐츠 제작의 경험을 살려 <서치>로 전혀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완성했다. 이 영화에 형사 로즈마리로 출연한 배우 데브라 메싱은 독특한 영화만큼이나 별난 영화 현장에 관해 이렇게 얘기했다. “존 조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단 한 순간도 존과 같은 공간에 있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있던 방에는 노트북 한 대와 그 위에 달린 고프로(GoPro) 카메라뿐이었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 호흡해야 하는 일반적인 촬영 환경과 다르게 카메라 렌즈를 마주 보고 연기를 해야 했다.” 그게 어디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특별한 경험이었을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화하는 상대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고도 각종 PC와 모바일 기기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와이파이를 켜놓고 옆 좌석 사람의 카톡 소리를 들어가며 아이폰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생활이 바뀌면 이를 담아내는 예술 매체의 형식 또한 진화하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