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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을 집대성한 한 편의 소설집
자우림 <자우림>
자우림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에너지와 울림이 가득한 신보. 10개의 수록곡은 숙련의 정점에선 밴드 <자우림>을 또다시 조명한다. (2018. 07. 11)
요즘 사람 중에 자우림의 노래를 한 곡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로 일축되는 발칙한 상상력의 「일탈」과 초창기 히트곡 「미안해 널 미워해」부터 자살을 빗댄 「낙화」, 노래방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매직 카펫 라이드」 「샤이닝」을 비롯하여 최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이카루스」까지. 과장된 보컬 표현법에 대한 취향 차가 있었을지언정 밴드가 늘 대중 곁에 서 있었다는 점에 이견을 내기란 어렵다. 5년 만에 돌아온 자그마치 10번째 정규 앨범이자 처음으로 셀프 타이틀을 앨범 명으로 내세운 <자우림>은 그러한 면에서 그간 그들의 담화, 시선, 작법을 집대성한 한 편의 소설집이다.
태평소 소리 같기도 한 비선형적인 소음이 포문을 여는 「狂犬時代」(광견시대)는 ‘한없이 약한 곳에서만 작렬하는 분노와 광기’를 가진 ‘사회’의 이중성에 일갈하고, 리드미컬하고 관능적으로 늘어지는 멜로디가 매력적인 「아는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이에 대한 찬양인 듯, 묘한 반어의 비난을 날린다. 전작의 「Anna」처럼 현악기를 적극 사용해 서사를 극대화한 타이틀 「영원히 영원히」는 “마지막을 눈앞에 둔 사람이 소중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장면을 상상했다”는 한 인터뷰 속 말처럼 사라지지 않고, 흐려지지 않고 영원히 너와 있고 싶다는 염원이며, 거짓말만 남기고 떠난 너에 대한 원망을 그린 「Give me one reason」 역시 자우림식 사랑가다.
개별 곡으로 집중해 살펴보면 이전의 호흡들이 잘 드러난다. 「아는 아이」는 이전의 「하하하쏭」 「애인발견!!! 」에서 느껴지던 한국적인 리듬감, 소위 ‘뽕 필’이 외관을 설계하고 사이키델릭한 기타 톤의 「Sleeping beauty」는 <Goodbye, Grief>의 「전하고 싶은 말」과, 밴드 구성으로 밀어붙이는 「있지」는 「이카루스」, 커다란 정원과 기다란 지붕 하늘 아래 사고파는 꿈이란 지극히 자우림다운 동화 가사의 「Psycho heaven」는 「Carnival amour」 식 화법과 「Dancing star」의 음악적 골격을 닮았다. 그러나 몰입감, 상처 치유, 공감의 반경을 살피면 우위에 서는 건 단연 이번 10집이다.
지난 음반을 기준으로 「스물다섯, 스물 하나」 「무지개」 「Dancing star」 「이카루스」 등 수록곡 대부분 주제가 꿈과 이어졌다면 <자우림>은 보다 넓은 상황을 마주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와 사랑은 물론 「있지」와 같은 트랙은 서사보다는 감정에 치중한 단면적 가사로 청자가 각자 상황에 맞춰 호흡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다. 분노와 절망 등 센 정서를 강하게 들어냈던 초창기였다면 충분히 강하게 휘어잡고 갔을 트랙 「Give me one reason」은 과잉보다 절제를 택해 연륜의 선보이고, 메탈 리프를 사용한 「Other one’s eye」는 의외의 선택이 주는 짜릿함으로, 앞선 보컬과는 달리 힘을 뺀 채 부르는 「Over the rainbow」는 ‘오늘은 어땠니, 얘기해 주겠니, 듣고 싶어’란 따뜻한 노랫말과 합세해 향수를 자극한다.
진한 농도로 응축한 듯한 신보는 밴드가 건네는 21년산 위로주다. 등장부터 강렬한 첫 곡 「狂犬時代」의 도발적인 물어뜯기부터 마음먹고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점층적인 전개의 「영원히 영원히」를 거쳐 「Psycho heaven」의 펑키함, 그리고 록 페스티벌의 끝 곡으로 남겨둬야 할 것만 같은 클랩비트와 건반의 「XOXO」까지. 도입부터 마감까지 세심하게 배치한 곡의 순서와 익숙한 듯 발전한 그룹의 사운드는 한바탕 뛰놀다가 눈물짓게 하고, 노래에 기대어 치유 받게 한다. 자우림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에너지와 울림이 가득한 신보. 10개의 수록곡은 숙련의 정점에선 밴드 <자우림>를 또다시 조명한다.
관련태그: 자우림, 김윤아, 영원히 영원히, Psycho heaven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