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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라지길 꿈꾸어 보는 <공동경비구역 JSA>

적이 아니라 친구였던 공동경비구역의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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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서 이루어진 회담들은 때로는 성과는 거두고 때로는 무산되고 때로는 서로를 적대시하며 끝나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한 의지 하나로 남북이 결국 오늘날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18. 05.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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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 영화 속 이 장면은 실제 공동경비구역이 아니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서울종합촬영소의 8000여 평에 9억 원을 들여 완성한 오픈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은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를 향한 거대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두 정상이 보여준 인간적이고 허심탄회한 모습에 통일된 한반도의 평화로운 봄이 잠시 그려지기도 하였다. 통일로 가는 길에는 복잡한 절차와 단계가 남아 있을 테다. 그럼에도 힘든 고비를 넘기고 끝내 한반도가 하나가 되기를 진정 수많은 사람이 고대하고 있다.


4월 27일에 두 정상이 만난 장소는 판문점이다. 흔히 판문점이라고 부르지만 이곳은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의 군사분계선상에 설치한 동서 800미터, 남북 400미터 장방형의 공동경비구역(JSA)을 말한다.


공동경비구역의 한가운데에서 남북 두 정상은 손을 맞잡았고 군사분계선의 남측과 북측을 오고가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하였다. 공동경비구역의 군사분계선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과도 같다. 이 분계선은 그야말로 한번 넘어서면 그만인 낮은 턱에 불과하지만 이 턱을 두고 오랜 세월 남과 북의 병사들은 마주 보며 대치했다.


그 분단과 대치의 뼈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서로 말과 글이 통하고 그래서 감정이 쉽게 통하는 남북 젊은이들의 가슴 아픈 우정을 그린 영화가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 2000년 작)이다.

 

 

남북이 대치한 공동경비구역에서 꽃핀 우정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남북 병사의 총격사건을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책임수사관 소피(이영애 분)가 수사를 해가는 추리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 대개 대치나 갈등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 진실을 알면 알수록 잔혹한 상황에 부딪치게 되는데 이 영화는 오히려 그 반대다. 서로가 총을 겨누었던 그 순간 이전에 빛나는 우정을 나누었던 남북 젊은이들의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간들이 차츰 밝혀지면서 소피는 한반도 분단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아프게 알아간다. 


사건은 인간의 과오가 아니라 같은 민족이 서로 분단되어 대치하는 상황 때문에 벌어졌다. 비무장지대를 수색하다 지뢰밭에 낙오한 남측 병사 이수혁(이병헌 분)은 북한군 오경필(송강호 분)과 정우진(신하균 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공동경비구역의 짧은 거리를 두고 오랫동안 마주 보며 보초를 섰던 이들은 피차간에 얼굴이 익은 상태였다.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수혁이 용기를 내서 군사분계선을 몰래 넘어 북쪽 초소에 찾아들면서 이들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말이 통하고 글이 통하고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우정은 분단이라는 장애물과 상관없이 아름답게 깊어간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정치적 현실은 엄혹했다. 분단은 남과 북,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젊은이들의 비밀스러운 우정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끝내 궁지로 내몬다.


영화에서 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보초를 서던 공동경비구역이 바로 지난 4월 27일 남과 북 두 정상이 만난 곳이다. 공동경비구역은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고 난 뒤 만들어졌다.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구역으로, 우리 측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이고 북한 측 행정구역으로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리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곳을 통칭해서 판문점이라고 부르게 된다. 공동경비구역의 영어식 표기는 Joint Security Area of Panmunjeom, 줄여 JSA이다. 영화 제목 <공동경비구역 JSA>는 우리식 명칭과 영어식 명칭을 같이 쓴 것이다. 원래 비무장지대에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경비를 한다는 뜻인 이 지역이 어쩌다가 첨예한 대치 상황에서 분단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을까?
 


분단의 상징 판문점

 

판문점은 서울에서 북으로 약 50킬로미터, 개성에서 동쪽으로 10킬로미터 정도 지점에 있다. 위도상으로는 북위 37도 57' 20″인데, 말하자면 최초 한반도를 분단했던 위도 38선에 가깝다. 판문점은 한국전쟁 전에는 4가구 정도가 사는 지역이었다. 이곳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1여 년 뒤인 1951년 10월 25일 휴전회담이 이곳에서 열리면서부터였다.


1950년 6월 북한군이 한 차례 남쪽을 휩쓸고 내려왔다가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과 한국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북쪽으로 올라갔지만 이듬해인 1951년 1월 중공군의 참여로 연합군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온다. 이때부터 38선을 가운데 두고 2년여 간 지루한 소규모 전쟁이 거듭되었다. 전쟁의 규모는 이전에 비해 작았지만 고지 하나를 두고 서로 옥신각신하며 싸우는 소모전이었기에 전쟁의 피해는 대규모 전쟁 때보다 더 컸다. 실제로 한국전에서 대부분의 병사가 이 2년간의 국지전으로 희생되었다. 


결론이 나지 않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 회담은 판문점에서 1951년 10월부터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하지만 서로 간의 팽팽한 의견대립과 이해관계 등으로 휴전은 쉽사리 결정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각지의 전쟁터에서는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아까운 젊은이들이 희생되어갔다.


처음 판문점 지역의 휴전협정은 널문〔板門, 판문〕이라는 지역의 도로변에 천막을 치고 이루어졌다. 판문점이라는 이름은 널문이라는 고장 이름에서 비롯했는데 널빤지의 한문 표기인 판을 써서 판문점이 된다. 휴전협정은 2년여 간 본회의 159회를 비롯하여 총 765회에 이르는 각종 회의를 거쳐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결정되었다. 1953년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포로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휴전회담이 끝나자 휴전협정 조인을 위하여 약 200평의 목조건물을 판문점 마을 부근에 세웠다가 지금의 위치로 공동경비구역이 변경되었다. 이곳은 휴전협정 체결 후인 1953년 10월부터 연합군 측과 북한 측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결정되었다. 이 지역의 면적은 가로 세로 1킬로미터 남짓한 타원형으로 한복판에 지난 4월 27에 남북 정상이 넘나든 군사분계선, 즉 휴전선이 있다. 최초의 회담 장소인 널문마을과 휴전협정 조인 장소는 현재의 위치보다 약 800미터 더 북쪽으로 북한 측 비무장지대에 있다.


1953년의 7월에 맺은 협정은 어디까지나 종전이 아니라 휴전협정이었기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를 가장 첨예하게 대비해야 하는 지역이었던 판문점은 애초에는 간이건물 형태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휴전이 장기화되자 점차 남과 북은 각종 군 행정 사무 등에 필요한 건물들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과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자유의 집’(1965)과 ‘판문각’(1968) 등 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졌고, 1980년대에 이르러 남북대화의 빈도가 잦아지자 ‘평화의 집’(남쪽)과 ‘통일각’(북쪽) 등 남북대화용 건물도 자리를 잡는다.


처음 판문점에 공동경비구역이 만들어질 때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지는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남과 북이 관리하는 지역이 나뉘어 있었지만, 공동경비구역이라는 말처럼 남측과 북측이 공동으로 경비를 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또 영화에서처럼 군사분계선을 긋고 보란 듯이 보초를 서면서 대치하지는 않았다. 공동경비구역 내에 군사분계선이 그려진 것은 1976년에 일어난 ‘미루나무 도끼만행사건’ 때문이었다.

 

 

공동경비구역 대치의 계기, 미루나무 도끼만행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공동경비구역의 연합군은 한국인 노무자들의 미루나무 가지치기 절단 작업을 호위하고 있었다. 연합군 측에서 북한군 초소를 감시할 때 미루나무가 시야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 미루나무가 연합군 측 지역에 있었기에 가지치기에 대해서 북한 측에서 왈가왈부할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는 자신들을 감시하기 위해 가지를 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이를 저지시키려고 하였다. 연합군 측이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 진행하자 자동차로 증원된 북한군 30여 명은 미리 준비한 도끼와 쇠망치를 휘둘러 2명의 미군 장교를 죽였다.


이 때문에 한반도는 극한 긴장상태에 놓인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실제로 군사 대비를 하였다. 사건은 북한의 김일성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연합군 측에 전달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인 9월부터 공동경비구역 내에 남과 북을 나누는 낮은 군사분계선이 설치되고 남측과 북측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대치하게 되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 사건 이후 공동경비구역 내의 대치 상황이 엄중할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대사 중 오경필이 1990년도에 세상을 떠난 김현식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영화는 199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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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경비구역의 남측에서 찍은 사진.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북측의 판문각이고 가운데 턱이 군사분계선, 즉 휴전선이다.

 

 

판문점, 분단을 넘어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판문점은 남북 분단의 상징이지만 언제나 분단과 대치만 이루어진 곳은 아니었다. 극복해야 할 분단의 상징이었기에 이곳에 남북대화의 창구가 마련되기도 한 것이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함께 발표한 ‘판문점 선언’이 있기까지 판문점에서는 남북 화해를 위한 많은 시도와 선언이 이루어졌다. 판문점에서 남북 간 소통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휴전 후 20년이 채 안 되는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과 1972년 7월 7?4공동성명 때였다. 그러나 이 성명은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와 대치 상황 속에서 좌초하였다. 대화의 시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남북 간의 화해와 소통의 시도는 거의 대부분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회담들은 때로는 성과는 거두고 때로는 무산되고 때로는 서로를 적대시하며 끝나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한 의지 하나로 남북이 결국 오늘날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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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는 장면. 출처 일요시사.

 

 

지난 세월 판문점에서 있었던 회담들의 실패를 극복하고 휴전이 아니라 종전의 시대,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차원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비무장지대의 넓은 공간을 사이에 두지 않고 지척에서 서로를 바라보았기에 영화에서 이수혁과 오경필은 금세 친해졌고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알아갔다. 남북관계도 그럴 것이다. 심리적인 거리감을 좁히는 일은 자주 만나 얼굴을 맞대면서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알아가고 서로의 취향과 삶을 존중해주면서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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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미(영화 시나리오 작가)

이화여자대학교 국사학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박사 과정 수료. 현재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 『한 번에 읽는 역사인물사전』, 『한 번에 보는 세계인물사전』, 『천추태후』, 『세계사, 여자를 만나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 『한국사 영화관』 등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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