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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을 견뎌온 소시민들의 우화 <효자동 이발사>

1960~70년대 한국 사회를 풍자적으로 관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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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우리나라는 마치 군대 조직처럼 상명하복을 하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 반역자 혹은 빨갱이가 되었다. 폐쇄적인 군대식 조직은 상류층의 경제적 부정부패를 감싸면서 소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였다. (2018.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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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효자동이발사>의 한 장면.

 

 

4월은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달이다. 무능하고 악랄한 정권하에서 300여 명의 아까운 인명을 잃어버린 세월호 사고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4.3사건이, 그리고 국민의 힘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몰아낸 4.19혁명이 있던 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세 사건은 특성도 시기도 다르지만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한국 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이다. 그중 4.19는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은 뜻깊은 혁명이었지만 1년 후 일어난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짓밟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 지금까지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그간 현대사의 굵직한 일들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4.19혁명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영화화한 예가 없다. 그 가운데 2004년에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감독 임찬상)가 주인공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4.19혁명 속의 주인공을 다소 희화화하여 다룬 것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 독재정권의 황당한 사사오입개헌

 

<효자동 이발사>는 청와대 앞 효자동에서 이발소를 하는 성한모(송강호 분)와 그 가족이 4.19혁명을 거쳐 5.16군사쿠데타를 목격하고 그로테스크한 박정희 독재정권을 견뎌낸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다룬 영화다. 영화에서 4.19혁명일은 성한모의 유일한 아들인 낙안이(이재응 분)가 태어난 날이다. 영화 속에서 낙안이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4.19혁명으로 태어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한모에게 거의 겁탈당하다시피하여 아이를 가진 낙안의 어머니(문소리 분)는 낙안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한모는 당시 이승만 독재정권의 어이없는 ‘사사오입개헌’을 끌어대면서 낙안이를 낳도록 설득한다. 사사오입(四捨五入)은 산수의 반올림을 뜻한다. 사사오입을 하면 4 이하는 버리고 5 이상은 열로 하여 원 자리에 올리는데, 태중에서 5개월이 된 낙안이는 한 사람으로 인정되니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것이 성한모의 주장이었다. 1950년대에는 반올림이란 표현보다 사사오입을 더 많이 썼다. 그래서 1954년의 황당한 개헌도 ‘사사오입개헌’으로 알려져 있다. 사사오입개헌은 이승만 정부의 독재를 연장하려고 한, 당시 자유당 정권의 민주주의 유린 사건이었다. 이 개헌으로 이승만은 사실상 종신집권이 가능해졌다.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면서 간접선거로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은 1952년 한국전쟁 중에 국회의원의 간접선거로는 재선이 어렵다고 판단, 무리하게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였다. 그리고 전쟁 중이라는 혼란 상황과 국민의식의 미성숙 상태에서 이승만은 재선에 성공하였다.  당시 헌법으로 대통령은 2회까지 연임이 가능했기에 1954년 당시 이승만은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었다. 이승만의 영구집권을 꾀하기 위해 자유당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에서 표결에 붙인 결과, 재적인원 203명 중 찬성이 135표, 반대가 60표, 기권이 8표가 나왔다. 개헌에 필요한 찬성수는 재적 인원의 3분의 2였다. 203의 3분의 2는 135.33333이니 135명 이상 즉 136명의 찬성이 있어야 개헌은 가능했다. 1표 차이로 영구집권의 가능성을 놓쳐버린 자유당은 투표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개헌을 성사시켜 이승만 독재정권을 연장시키려고 인하공과대학 학장과 서울대 수학과 교수를 불러들여 135표만으로 개헌 찬성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이에 그들이 내놓은 의견이 ‘사사오입’이었다. 국회의원 재적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인데 0.333…이라는 소수점 이하의 숫자는 한 명의 인간이 될 수 없으므로 사사오입하면 203명의 3분의 2는 135명이 된다는 억지주장을 펴면서 자유당은 부결 선언을 번복, 1954년 11월 29일 개헌안의 가결을 선포했다. 영화에서 태아인 낙안이가 5개월이 되었으므로 0.5 이상이니 한 명의 인간으로 칠 수 있다는 성한모의 주장이 이렇게 나왔다. 


사사오입개헌은 우리 헌정사상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이 개헌 파동으로 손권배?김영삼?김재곤 등 자유당 소장파 의원들이 무더기로 탈당하는 한편, 민국당은 무소속 국회의원들을 규합, <호헌동지회>를 구성함으로써 민주당 창당의 계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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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입 개헌안이 통과되자 민주당 의원 이철승이 단상에 뛰어올라 국회부의장 최순주의 멱살을 잡은 장면.(출처: 위키피디아)

 

 

영화에서는 시기상 몇 년의 시차는 있으나 사사오입을 끌어대어 낙태를 면한 낙안이의 존재를 자유당에 반대하는 민주 세력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한다.  

 


민주주의를 가져온 4.19혁명

 

낙안이가 태어난 날은 4.19혁명일이다. 성한모는 출산을 앞둔 아내를 병원으로 옮기려고 동분서주하다가 시위행렬에 휘말린다. 이발사 복장인 하얀 가운을 입은 탓에 그는 정부가 시위대를 향해 쏜 총에 다친 사람들을 돕는 의로운 의사로 오인되어 영웅시된다. 영화는 당시 혁명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다소 희화적으로 그린다. 당시 상황 그대로 재현하지 않은 것은 영화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역사적 상황의 한가운데 놓인 개인이 역사를 인식하는 범위나 깊이를 풍자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인 듯하다.


4.19혁명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12년간 부정한 방법으로 독재를 해온 이승만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전 국민적 항거였고 우리 헌정사에서 최초로 국민이 승리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마음대로 대통령 선거에 나올 수 있게 된 이승만은 1960년 선거에도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당시 이승만에 대적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는 조병옥이었다. 1960년 1월 말 조병옥은 대통령 후보 등록까지 마치고 갑자기 발병하여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리고 선거를 불과 한 달여 남겨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조병옥의 사망으로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이 단독으로 후보로 나온 상태라 사실상 무의미했고 당시 선거는 부통령을 뽑는 선거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민주당에서는 대통령 후보 조병옥은 사망했으나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이 건재했다. 이승만은 그가 총애하는 자유당의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벌였다.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은 선거 운동망을 조직해 자유당을 위한 선거운동을 했다, 경찰은 경찰대로 자유당의 선거운동을 독려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불안을 느낀 자유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정선거를 저지른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켰다.


더 이상 이승만 독재정권을 참아내기 힘들었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3월 15일 선거 당일 마산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정부는 이를 폭력으로 강제진압하고 주동자를 공산당으로 몰면서 정국을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갔다. 이 와중에 1960년 4월 11일 마산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시신을 본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에 더해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돌아가다 괴청년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1960년 4월 19일에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워 시위를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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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혁명에 참여한 시위대의 모습.(출처: 위키피디아)

 

 

국민들은 정부의 진압이 강해질수록 더욱더 분노했고 시위 규모는 점점 더 커져갔다. 일반 시민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사회지도자급의 인물들도 시위에 동참하였고 4월 19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시위는 일주일이 넘어도 계속되었다. 마침내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2년간에 걸친 독재와 각종 부정부패로 얼룩졌던 이승만 정권을 끌어내리고 국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5.16쿠데타로 시든 민주주의의 꽃

 

<효자동 이발사>는 이승만 독재시기를 거쳐 4.19혁명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 전반의 배경은 5.16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 정권 18년간이다. 청와대와 가까운 효자동에서 이발소를 하던 주인공 성한모가 박정희 대통령의 머리를 깎는 일을 하면서 겪는 아이러니한 일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4.19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국민들은 이듬해인 1961년 군부에서 일으킨 5.16쿠데타로  좌절한다. 영화에서는 비슷한 분위기만 가져올 뿐 쿠데타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도 않고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도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가 제작된 2004년에는 영화에서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밝히고 그 과오를 비판하는 것이 오늘날에 비해 심정적으로 부자유스러웠던 것이 아닌가 한다.


4.19혁명 이후 우리나라는 이승만 독재정권하에서 억눌려 있던 여러 주장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가고 있었다. 정부 수립 12년 만에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서로 갈등하고 조정하면서 합의를 도출해가는 방식을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를 민주주의적 절차로 보지 않고 사회혼란으로 단정한 군부세력은 이를 권력을 잡을 기회로 삼았다. 당시 소장 계급이던 박정희가 군대 내 동기 및 후배들을 모아서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헌법의 효력을 중단시키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구성하여 2년 6개월 동안 군정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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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쿠데타 당시의 박정희.(출처: 위키피디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처음에는 사회가 안정되면 정권은 민간인에게 돌려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그는 군정 이후 스스로 제대하여 민간인이 된 후 민주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 헌법을 불법적으로 개정하고 민주세력을 탄압하면서 장장 18년간 장기집권을 하였다. 그 18년간 우리나라는 마치 군대 조직처럼 상명하복을 하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 반역자 혹은 빨갱이가 되었다. 폐쇄적인 군대식 조직은 상류층의 경제적 부정부패를 감싸면서 소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였다.


영화 속에서 5.16쿠데타 이후 중고생 삭발령 조치가 내려져 성한모의 이발소는 호황을 누린다. 1960~70년대 당시 정부의 과오나 부패, 자유의 억압 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전보다 약간 더 나아진 경제적 여유에 군사정권을 지지하던 당시 소시민들의 초상이 성한모에게 투영된다. 영화에서는 성한모의 이러한 역사의식 부재가 결국 아들을 간첩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여주어 군사정권 치하의 소시민들이 결과적으로는 모두 피해자였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효자동 이발사>는 우리나라 현대사 전반을 이발사를 가장으로 둔 소시민 가족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14년 전 영화이니만큼 요즘과는 다소 다른 역사적 해석이나 관점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 톤을 가볍게 하여 현대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 또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연결하여 보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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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미(영화 시나리오 작가)

이화여자대학교 국사학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박사 과정 수료. 현재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 『한 번에 읽는 역사인물사전』, 『한 번에 보는 세계인물사전』, 『천추태후』, 『세계사, 여자를 만나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 『한국사 영화관』 등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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