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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귀족의 여유로운 일상을 집 안에 들이는 법

어려서부터 나는 나만의 의자를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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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추천하는 제품군은 로버 체어(Rover Chair)라 통칭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야전 의자다. (2018.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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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lingcampee

 

1인 가구에게 가구는 늘 마음의 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경제적인 이유인데, 집은 어쩔 수 없이 좁고, 언제 그곳을 뜰지 모르며, 한번 사면 바꾸기 어렵다. 그렇다고 오픈마켓 최저가를 검색하며 저렴이를 들이자니 공간 심리 차원에서 마뜩치 않고, 이케아에 전적으로 의존하자니 글로벌 자본주의에 포섭되는 것 같아 마음이 내심 불편하다. 값을 차치하더라도 디자이너의 원목 가구가 늘 정답도 아니다. 언제 거처를 옮길지 모를 도시 유목민 입장에서 경량성, 기동성, 그리고 잠시 쓰다가 버려도 아깝지 않을 패스트패션의 가치 또한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구를 살 때 다음과 같은 사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원룸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도 최소한의 시야 공간 확보가 가능한지 여부와 최소한의 예산으로도 최소한의 품위는 지킬 것. 이 기준을 갖고 살다보니 절대로 노지에서 잠을 청하지 않음에도, 하나 둘 집 안에 캠핑 용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나만의 의자를 갖고 싶었다. 컴퓨터 의자나 식탁 의자가 아니라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나만의 안락한 요새. <아파르타멘토> 같은 잡지에 나오는 예술가들이 책으로 뒤덮인 책장 모서리나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한구석에 작은 스탠드를 옆에 두고 앉아 신문과 책을 읽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깊은 동경이 있었다. 합리적 소비와는 무관한 일종의 코스프레 욕구였지만 이런 정서적 사치야 말로 독립 의지를 고취시키는 대표적인 로망이었다.

 

그러다가 라이프 스타일 산업이 유행하면서 휘게니 라곰이니 하며 북유럽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쪽 동네에선 첫 월급을 타면 자기만의 제대로 된 의자부터 사는 풍습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얼핏 봤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지탱에 관해서 의자가 가진 의미를 풀어내는 이야기였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미루고 밀리던 의자를 마련할 이유는 보다 확실해졌다.

 

하나, 우리 모두 임스나 핀율의 의자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을지로에서 저렴한 복제품을 사는 건 역시나 개운치 않다. 1인용 쇼파는 가격과 공간 두 가지 면에서 부담스럽다. 그런 이때 훌륭한 대안이 되어준 것이 캠핑용 릴렉스 체어였다. 너무나 자랑스런 중소기업 헬리녹스가 첨단 경량 제품으로 세계무대에서 선전하곤 있다만, 정작 도움을 준 것은 헬리녹스의 초경량과는 정반대의 매력과 가치를 좇는 일본에서부터 다시 불기 시작한 ‘헤비듀티’ 혹은 ‘감성 캠핑’의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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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nometsa

 

 

고성능의 기능성 경량 원단 대신 플란넬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무겁고 또 무거운 두꺼운 캔버스 텐트와 나무로 된(캠핑에 ‘감성’이란 단어가 붙으면 무조건 나무가 어딘 가라도 붙어 있어야 한다) 용품을 갖고 자연을 즐긴다는 캠핑 사조가 뜨면서 인도어와 아웃도어 가구의 경계는 오히려 모호해졌다. 이쪽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캠핑 용품들은 대부분 나무와 캔버스(혹은 가죽, 린넨)와 같은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까닭에 하이테크 캠핑 장비에 비해 무겁고 내구성은 떨어지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 매력이다. 그런데 실내로 들고 들어오면 느낌은 그대로이면서 무겁다는 단점만 대폭 반감된다. 덕분에 자기만의 쉼터를 적당한 가격에 꾸릴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캠핑 가구는 일단 비교적 값이 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 좁은 공간에서도 답답함을 줄여준다. 그리고 식탁 의자로 쓰지만 않으면 매우 안락하다. 사용하지 않을 땐 접어놓을 수 있어 공간 활용에도 유리하고, 혹시 모를 손님을 대비해 여러 개 구비하기도 적합하다. 아직 생각은 안 해봤지만 요즘 같은 계절엔 유사시 갖고 나갈 수도 있다.

 

물론 캠핑용품을 살림으로 활용하는 건 나만의 반짝이는 생활의 팁이 아니다. 애초에 가구의 분류 자체가 ‘무버블 퍼니쳐(Movable Furniture)’라 하여 유목민의 삶에서 유래한 것과 아닌 것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미 100여 년 전에도 아웃도어 가구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집 안으로 들어온 바 있다. 그 당시 유행한 것이 갖고 다니기 쉽게 만들어진 이동용 가구를 뜻하는 캠페인 가구(일명 캠프Camp 가구)다. 원래는 야전생활을 위한 군용 물품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전 세계로 진군한 대영제국군과 그 뒤를 따른 식민지 거주민들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일반화 되었다. 이후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거치며 더욱 깊게 일상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바로 그 시절 탄생한 전설적인 의자가 바로 마리포사 체어, 일명 버터플라이 의자다mariposa가 스페인어로 나비다). 슬링, B.K.F라고도 불리는 이 의자는 나름의 유서 깊은 여러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아르도이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출신 건축 디자이너들이(‘B.K.’F는 이 셋의 이니셜이다) 탄생시킨 대표적인 모던 디자인 의자다. 원래는 자신들이 만든 건물의 모델하우스에서 쓸려고 만든 캠페인 의자였는데 건물보다 더 인기를 끌게 되고, 그러다 뉴욕 모마의 어느 큐레이터 눈에 들어가면서 ‘빵 터진’ 뭐 그런 전설을 품고 있다. 그런데 인기가 많은 만큼 복제품도 워낙 많은데다 가격도 웬만하지 않아 딱히 추천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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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claim

 

 

가장 추천하는 제품군은 로버 체어(Rover Chair)라 통칭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야전 의자다. 군용 랜드로버의 장비로 사용하면서 유명세를 탔는데, 프레임은 알루미늄을 쓰지만 두툼한 캔버스나 린넨으로 등받이를 만들고 팔걸이에 나무를 얹은 클래식한 조합 덕분에 집 안에 있어도 낯설지가 않다. 서로 다른 색상으로 짝을 지우는 재미도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칠링캠피스나 발리스틱스의 제품들도 훌륭하고, 교토를 베이스로 한 복각 브랜드 ‘YMCL KY’에서 내놓은 로버 체어도 합리적이다. 국내에도 마헨, 휴 아웃도어와 같은 브랜드가 성업 중인데, 가격이 부담이 될 경우 콜맨의 컴팩트 폴딩체어나 컴포트 마스터 시리즈가 훌륭한 대안이다.  

 

사촌지간이라 할 수 있는 다이렉터 체어도 좋은 선택지다. 영국의 테니스장에서 가장 먼저 쓰이기 시작한 까닭에 테니스 체어라고도 불리는데, 영화 촬영장에서 감독용 의자로 많이 쓰이며 더욱 유명해졌다. 로버 체어보다 비교적 안락한 편이라 독서용 의자라는 본질 면에서 더 적합하다. 그 유명한 모겐스 코흐의 폴딩체어(마찬가지로 2차 대전 중 영국군이 사용하면서 사파리 의자라고도 불린다)부터 여러 캠핑용품사의 제품들까지 선택의 폭이 매우 다양하다.

 

공간이 좀 여유가 있다면 아예 감성을 바꿔서 데크 체어(Deck Chair)를 들이는 방법도 추천한다. 긴 나무 작대기에 해먹처럼 천을 단 형태의 의자인데 스트라이프 데크 체어는 영국 휴양 문화의 심볼이라 할 수 있다. 제품의 묵직함만큼이나 캠핑의 바이브보다 휴양의 편안함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빈약해 보이는 겉보기와 달리 온몸을 감싸는 안락함이 일품이며, 공간은 꽤 많이 차지하지만 뼈대가 얇고 몸체가 천이라 그런지 답답함은 의외로 느껴지지 않는다. 접으면 프레임 두께의 직사각형이 되어서, 안 쓸 땐 벽에 세워 둬도 무리가 없다. 데크 체어는 캠핑용품점에서도 간혹 만날 수 있고, 핌리코 쇼핑몰에 가면 정통 영국 데크 체어를 구매할 수 있다. 우리 집의 경우 침실에 데크 체어를 넣어두고, 반상회를 할 때는 거실 공간에 수납해둔 로버체어를 꺼내 쓴다. 모두가 똑같은 의자에 앉는 덕분에 안 그래도 예민한 반상회 자리에서 어떤 의심이나 의혹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원탁의 회의가 가능하다.   

 

이쯤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대부분의 감성 캠핑 의자들이 영국 혹은 영국군의 전성기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집 안에 캠핑용 의자를 들이는 게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기에 충분한 발견이다. 우린 캠핑용품을 놓고 사는 게 아니다. 안락한 독서용 쇼파를 놓고 살던 과거 유럽 귀족의 라이프 스타일 및 감성을 시대에 맞춰 하이브리드하게 소화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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