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박연준의 특별한 평범함
밤이 하도 깊어
겨울밤은 야박하지 않다
길고 길다. 먼 데서 오는 손님처럼 아침은 아직 소식이 없을 것 같으니, 느릿느릿 딴 생각을 불러오기에 알맞다. (2018. 03. 08)
언스플래쉬
여름밤은 익어가기 좋고, 겨울밤은 깊어지기 좋다. 봄밤은 취하기 좋고 가을밤은 오롯해지기 좋다. 당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이’ 익어가고 깊어지는지, 취하고 오롯해지는지 묻는다면? ‘무엇이든’이라 대답하겠다. 사랑, 미움, 한숨, 그리움, 희망, 불행. 진부하게 거론되지만 원래 그 의미가 무거운 말들은 밤에 한층 더 무거워진다. 겨울밤은 그 중 더 무겁다. 겨울밤에는 특별한 게 있다.
겨울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한다. 무릎을 담요로 감싸고, 책상 위에 놓인 종이봉투에 낙서를 하는 게 전부인 시간. 쌓아놓은 책의 책등을 쓰다듬거나, 스탠드만 켜놓고 벽에 드리운 내 그림자의 흔들림이나 구경하기도 한다. 음악도 틀지 않는다. 밤이 하도 깊어, 밤 이외의 것은 필요 없는 순간이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거나, 얼려놓은 곶감을 종지에 담아놓고 녹을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곶감은 깊게, 말라있다.
겨울밤. 김치로 치면 살얼음 낀 묵은지를 닮은 밤. 식구들은 모두 잠들어 있고 나 혼자 깨어 밤과 곶감 앞에 놓여있는 밤. 사치스러운 밤이다.
고요가 깊어 시끄러워질 정도가 되면 생각이 곤두서기도 한다. 꼭꼭 닫아두었던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밤이 유령처럼 서있다. 겨울나무들을 거느리고.
한낮엔 회초리처럼 뾰족하게 서있는 나무 곁을 지나며, 당신에게 물었다.
“겨울에 나무들은 왜 잎을 다 떨구지?”
“나무들로선 저게 최선일 거야. 겨울을 지나기 위해서는.”
‘최선’이라는 말이 조그만 돌멩이처럼 몸속으로 가라앉는다. 이파리를 죄다 떨어뜨리고 죽음을 흉내 내는 모습을 보며 섣불리, ‘나무의 태만’을 생각한 적 있다. 그런데 ‘최선’이라니. 어쩌면 저건 나무의 ‘웅크림’일지 모른다. 어느 동물들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겨울잠을 잘 수 없으니 가진 것을 다 떨어뜨리고 최대한 고요해지는 게 나무의 웅크림일지 모른다. 어떤 ‘최선’은 버림일 수도 있구나.
커튼을 닫기 전 한 번 더 바라본다. ‘고요’라는 투명한 망토를 두르고 병사처럼 서있는 나무들과 밤.
겨울밤은 야박하지 않다. 길고 길다. 먼 데서 오는 손님처럼 아침은 아직 소식이 없을 것 같으니, 느릿느릿 딴 생각을 불러오기에 알맞다. 곶감이 녹으려면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감을 말릴 생각을 했을까? 말린 감은 웅크린 감처럼 보인다. 누구에게나 웅크릴 시간이 필요하다. 병든 자의 병도 잠든 자의 잠도 자라는 자의 성장도 비밀이 많은 자의 비밀도 겨울밤을 빌어 웅크리다가, 더 깊어질 것이다.
관련태그: 밤이 하도 깊어, 박연준 시인, 겨울밤, 묵은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