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유계영의 빌려온 시
사람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 봐』
시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신비를 지켜준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8. 03. 06)
언스플래쉬
나는 자주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에 기겁한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나에게만 골몰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까. 이유는 몰라도 사람이 몰리는 장소에 가게 된 불가피한 상황이면, 느닷없이 끼쳐 오는 어지럼증과 정신의 아득함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 계단을 내려가는 새카만 뒤통수들. 동물 털을 뒤집어쓴 빵빵한 등짝들. 일과가 떠미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음울한 발들. 그리고 무표정들. 한 공간을 가득 메운 한 덩어리의 혼돈은 한 사람을 절벽으로 몰아세우기에 충분한 것이다. 빽빽한 ‘사람 숲’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 많은 타자의 틈바구니에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겠지. 누구도 나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몸을 작게 웅크리고 ‘사람 숲’을 걷는다. 부딪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고, 되도록이면 누구와도 닿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나는 나에게도 지쳤지만 남에게는 더욱더 지쳤으므로. 더 이상 남이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이를 뿍뿍 갈면서. 문득 이런 마음으로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 걱정스러울 때도 있었으나, 당시에는 도리가 없었다.
어느 오후에 인기 있는 아기 이름의 목록을 무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서윤, 하준, 도윤, 시우, 서연…. 지루했다. 아이들의 이름에도 얼굴이 없고 몸짓이 없었다. 신도림역 환승 계단을 우르르 내려가는 뒷모습처럼 이름은 무표정했다. 그러나 이름의 너머를 떠올려본다면 어떤가. 내게도 이름의 너머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한 살이 된 아이들의 티 없는 눈동자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보려고 아무런 소리를 뱉어보는 작은 입. 그 맑은 눈으로 본 사물과 풍경이, 작고 말랑말랑한 입술 너머로 왈칵 쏟아지는 순간을 떠올려본다. 나의 첫 옹알이처럼, 또한 내가 발음해보지 않은 옹알이처럼. 조그만 존재의 사랑스러움에 매 순간 까무러치다가도, 조그만 존재의 버거움 때문에 숨어서 눈물 흘리는 부모의 새벽도 빼놓을 수 없겠지. 나의 부모가 겪었던 새벽처럼, 나의 부모는 아직도 모를 누군가의 새벽처럼. 이름은 단지 이름이 아닐 것이다. ‘사람 숲’이 단지 ‘사람들’만은 아니듯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객관화와 동일시 사이를 집요하게 오가는 낱낱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것이다. 50명의 시인이 50가지의 다른 목소리로 말을 한다는 것. 미세하게 닮았다가도 철저하게 등 돌리고 멀어지는 각자의 세계가 있다는 것. 시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신비를 지켜준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난간에 선 존재는
자기를 망친 결벽을 떠올린다
아는 손으로부터
알지 못하는 손으로부터
사랑하는 자로부터
사랑하지 않는 자로부터
일상의 머리채를 더듬더듬 건져 올리기까지
사랑도 되고 폭력도 된다는 머리통을 깨부술 때까지
안도 되고 밖도 되는 곳이 있다
낮도 되고 밤도 되는 때가 있다
괜찮아? 춥지 않겠어? 다정한 물음이 있고
어떤 이야기를 계속하기 좋은 순간이 있다
조명이 어둡거나 테이블이 조금 흔들린대도
있잖아 하고 시작된 이야기가 그건 있잖아 하고 이어진다
옆 사람의 옷이 내 어깨에 걸리고
옆 사람의 말이 내 것처럼 들려서
옆 사람의 손에서 기울어진 찻잔같이 내 몸도 옆, 옆, 옆으로
기우뚱거리고
쏟아져도 괜찮아
낙관도 포기도 아닌 말이 마음에 닿기도 한다
난간에 기대어 자라던 식물들이 난간을 벗어나
-남지은, 「테라스」 전문, 74~75쪽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타자에게 닿으려는 손끝과, 타자에게 완전히 옮아 가진 않으려고 버티는 자기중심의 발목이 있다. 이 팽팽한 우주적 힘이 너와 나의 아름다움을 만든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 봐』 에 수록된 남지은 시인의 「테라스」는, 결벽에 가까운 평면적 개인이 객관화와 동일시 사이를 오가며 입체적으로 팽창하는 형상을 그려낸다(시인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다). 매 순간 개별적 존재들과 마주치는 일상 속에서, 타자는 내가 되기도 하지만 내가 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타자를 사랑하기도 하며, 사랑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우리의 일상을, 그 입체적인 순간을 충분히 말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괜찮아? 춥지 않겠어?”의 시간이 있고, “그건 있잖아”로 시작하는 다인용 테이블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을 상상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 사람을, 사람의 아름다움을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에 기겁했던 나의 두려움은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의 개별적인 세계가 신도림역 환승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고. 내가 모르는 신비로운 세계라고.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유용주, 장석주, 황규관, 이용한, 이병률 저 외 45명 | 문학동네
두 감정의 교집합은 필시 기대일 텐데, 이 마음은 또 사랑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터. 그리하여 시를 알고 싶고, 앓고 싶은 목마른 독자들에게 더없이 좋을 한 모금의 시집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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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인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온갖 것들의 낮』이 있다.
<황유원> 등저10,8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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