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변명
일을 맡았는데 알고 보니 재미 없는 글일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얼마전 카페에 앉아 있는데 출판계 사람과 디자이너로 추정되는 사람의 대화가 들렸거든. 재미 없는 책을 디자인에 혹해 샀으니 물어내라는 농담이었어. (2018. 02. 02)
2017년의 마지막 작업은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였다. 8명의 작가가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매일 한 권씩 읽거나 만진 기록. 커플이 함께 쓴 책이 세 권, 단독으로 쓴 책이 두 권이다. 택배 박스를 열어 실물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예쁠 줄이야. 반투명한 껍질 안에서 각자의 색채가 부드럽게 스며나오는 듯한 외관. 뿌듯한 마음으로 며칠째 들추는데 난다킴 대표의 문자가 왔다.
“같은 문의가 계속 들어와서요. 디자이너가 입장을 밝혀주시면 어때요? 첫째, 표지가 너무 얇아서 책을 펼치기가 조심스럽고 둘째, 컬러가 과도하게 쓰여 눈이 피로하대요.”
표지가 얇지 않냐는 말은 다른 책 작업할 때도 자주 들어왔다. 판형이 사륙배판 언저리일 경우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두께는 200그램 정도다. 책이 느긋하게 곡선을 그리며 손바닥 위에 편안하게 누워 손의 움직임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찰랑찰랑 경쾌하게 넘어가는 기분 좋은 두께. 더 두꺼우면 표지가 꼿꼿이 버티는 힘이 생겨 오히려 불편하다. 양손을 이용하거나 엄지와 계지로 거치대 흉내를 내야 한다. 하지만 책이 상할까 두려워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사람 역시 많은 모양이다.
책이 독자와 관계를 맺을 때는 읽을 때다. 그 외의 경우엔 책장에 꽂히거나 책상에 놓이거나 가방에 들어앉을 터. 책장이나 책상은 비교적 안전한 장소 아닌가? 자신의 실수로 커피를 쏟거나 모서리가 접힌 채 욱여넣지 않는다면야. 가방에 휴대할 경우 가벼운 무게는 미덕이다. 그래서 역시 200그램.
“야, 네 독서 습관만으로 결정하면 어떡하냐? 혼자 책 다 살 것도 아니면서.”
“다들 독자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데 대체 어떤 독자를 상정하고 하는 말인지 통 모르겠더라고. 내가 거론할 수 있는 독자는 나 자신밖에 없어서 그래.”
“내가 거론할 수 있는 유일한 독자인 내 관점으로 보기에도 좀 얇긴 해.”
“당연히 너 또한 독자로서 의견이 있겠지.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인 양 모호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하지만 넌 대중에게 팔 책을 네 의견을 앞세워 만들잖아.”
“나한테 들어온 일이니 당연히 내 의견이 우선이지. 그게 그 책의 운명이야. 다른 디자이너가 맡는다면 다른 책이 되겠지. 그 또한 그 책의 운명.”
책은 디자이너 혼자 만드는 물건이 아니다. 저자, 편집자, 출판사 대표, 교정교열자, 팩트 체커, 디자이너, 제작 담당자, 마케터 등의 여러 입장을 한데 끓여 우린 육수처럼 복합적이다. 재료가 바뀌면 맛도 달라진다. 누가 관여하든 거기서 거기라면 굳이 인간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영역일 터. 그런데 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처리되는 요소가 제법 많다. 심지어 자신의 의견을 법칙인 양 가르치려 드는 저자도 있었다(“소제목을 왼쪽에 맞춰야지 가운데다 배치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 책을 모르는구만!”). 그 과정에서 편집자가 균형을 잡아주리라 믿고 종종 낯선 제안을 하는 편이다. 책이 있는 풍경이 더 다채로워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책도 한 권쯤 있으면 어때서?”
‘읽어본다’ 시리즈는 커플이 함께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이 출발이었으므로 각자에게 색을 부여해 책의 외관부터 차이 나게 하고 싶었다. 드레스코드는 지키되 차림새는 저마다 다르게. 이를테면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에서 대원 모두 연한 푸른빛 옷에 붉은 모자를 쓰지만 각자의 스타일을 살려 오버롤, 반바지, 터틀넥, 터번, 비니 등의 아이템을 활용하는 신공을 발휘하듯이. 앞뒤 표지, 책등, 단면 등 모든 면에서 색이 흘렀으면 했다. 판면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그라데이션을 넣어 책을 오른쪽으로 휠 때, 왼쪽으로 휠 때 주조색이 바뀌게 해, 함께이면서 따로인 책의 구성 방식을 드러냈다.
색채가 독서에 방해된다고 느끼지 않았다. 당연하다. 방해된다고 느꼈다면 다른 방식을 구상했을 테니까. 여기서도 드러나듯 인간의 지각은 제각각이라 누가 무슨 시도를 하든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없앨 수 없는 개인 차이를 없애보려 애쓰느니 그 차이를 인정하고 살리는 편이 재미있지 않을까? 뭔가 결정해야 할 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대신 ‘이러면 어때?’, ‘저러면 어때?’ 하면 선택지가 훨씬 넓어진다.
“하지만 수백 쪽을 읽어내려면 편안히 읽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아?”
나의 균형추, 노바.
“편안한 독서도 중요하지만 책 읽기는 또한 탐험 아닐까?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으면 읽고 싶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겠지. 내용뿐 아니라 책의 모양과 읽는 방식도 독서 체험의 일부야. 당장 익숙하지 않다고 배제하면 세상을 그런 방식으로 대하게 되지 않을까? 새로운 생각 대신 익숙한 틀에 안주하는 건 경화의 초기 단계 아닐까?”
“새로운 내용을 접하는 데 과한 색상이 방해되니까 하는 소리지. 내용을 잘 흡수하게끔 돕는 게 디자인 아냐?”
“디자인의 여러 역할 중 하나지. 우선 전제부터 검토하자. 흔히들 내용이 곧 책이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아. 내용은 내용일 뿐이야. 원고를 가공해 책으로 만들기 전엔 책이 아니라고. 재미있지 않냐? 내용 없이는 책이 존재할 수 없지만 내용 자체는 책이 아니라는 거.”
원고에 편집이라는 가공술이 더해져 책이 만들어진다.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설정하는 수많은 관점이 있을 텐데, 그게 책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종종 속상한 경험을 한다. 내용은 아주 재미있는데 책으로서 실망스러울 때, 혹은 책은 멋진데 내용이 별로일 때.
“푸하하하.”
“뭐냐? 뜬금없는 웃음은.”
“얼마전 카페에 앉아 있는데 출판계 사람과 디자이너로 추정되는 사람의 대화가 들렸거든. 재미 없는 책을 디자인에 혹해 샀으니 물어내라는 농담이었어.”
“나도 한때 심각하게 고민했었지.”
“뭘?”
“일을 맡았는데 알고 보니 재미 없는 글일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하고. 내용을 실체보다 좋아 보이도록 포장하는 게 좋은 디자인일까?”
“산 사람은 사기 당한 기분이 들겠지.”
“그럼 내용에 걸맞게 재미 없어 보이도록 작업해야 맞나?”
“그건 클라이언트를 기만하는 거지. 그런 고민을 할 정도면 안하겠다고 해야지.”
“당시에 난 회사 직원이었어. 내가 안하면 다른 직원이 했을 테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프흐흐흐.”
이런 프로젝트를 상상해봤다. 같은 책 작업을 여러 팀의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동시에 의뢰하는 거다. 원고는 동일하지만 각 팀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책이 나올 테다. 같은 곡이라도 누구의 연주로 들을지 고를 때와 비슷한 재미도 덤으로 생기겠지?
에세이 『저, 죄송한데요』를 썼다. 북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