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나다] 즐거운 소비, 가능한가요? – 박미정 대표
<월간 채널예스> 2월호
돈을 쓰면서 죄책감이 느껴진다면 『적정 소비 노트』로 소비 생활을 점검해보자. (2018. 02. 02)
돈만 많으면 내가 가진 불안이 해결될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식 투자를 하고 가상 화폐를 사나 보다. 그러나 돈이 많아도 적어도 우리는 늘 돈 걱정을 한다. ‘욜로’, ‘탕진잼’을 외쳐도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아끼면서 살아도 과연 노후까지 충분할지 불안하다. 이런 이들에게 경제협동조합 푸른살림 박미정 대표는 ‘적정한 돈 쓰기’, ‘행복한 돈 쓰기’를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해왔다. 전작 『적정 소비 생활』 을 이은 『적정 소비 노트』는 가계부를 써보려 해도 작심삼일, 소비 내역을 보면 마음만 아픈 사람을 위한 특별 처방이다. 다이어리 형태의 가계부이지만, 다이어리라고 해서 1월부터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새해 계획에 실패했다면 굴하지 말고 다시 2월부터 시작해보자.
“『적정 소비 생활』 을 아시는 분이라면 쉽게 다가갈 책이지만, 처음 보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소비 습관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올해 처음부터 시도해보시라는 뜻으로 다이어리 형식으로 책을 냈어요. 3년 정도 준비하면서 여러모로 수정했는데, 앞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나이대와 결혼 여부에 따라서 내용을 나눠 출판할 생각이에요.”
『적정 소비 노트』 에서는 현재 가진 돈과 빌린 돈을 정리해 경제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소비 예산을 만들고 예산안을 토대로 한 달의 씀씀이를 살펴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망해 라이프 플래닝까지 거치면, 기존의 금융 상품 중심의 저축 계획에서 삶 중심의 저축 계획을 생각하게 된다.
“송송책방의 김송은 씨가 전작 『적정 소비 생활』 의 편집자였어요. 제 책이나 적정 소비와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편집자죠. 누가 먼저 제안했다고 할 것 없이 매년 같이 내기로 했어요. 편집자는 고정적으로 필자를 확보하고, 푸른살림에서도 매년 편하게 작업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일이죠.”
기획부터 집필, 디자인, 배급 등 여러 분야를 한꺼번에 한 명이 맡는 독립 출판과 다르게, 『적정 소비 노트』 는 전작에서 만난 인연을 바탕으로 저자와 편집자가 서로 협업해 만들어졌다. 저자는 내용에 조금 더 집중하고, 편집자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다.
“대량으로 인쇄해서 재고 때문에 고민하고 싶지 않았어요. 독자들도 후원으로 시작하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돈 관리 상담을 받으면 자발성이 떨어지거든요. 저만 해도 그럴 것 같아요. 간섭당하는 느낌이 들고, 자기 관리 못해서 야단맞는 느낌도 들 거고요. 그런 기분을 조금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적정 소비 노트』 는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아 자금을 마련했다. 후원 금액에 따라 『적정 소비 노트』 와 함께 저자 직강, 책갈피, 일대일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다.
“왜 돈을 쓰는데도 불행한지 생각해보면 심리 문제가 나오더라고요. 『피로사회』 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에게 너무 혹독한 사회 같아요. 과소비하지 말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라고 말이 많지만, 그렇게까지 과소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살면서 예쁜 구두 한 번쯤 살 수도 있죠. 그런데 남과 미래를 위해 먼저 쓰고 그다음 자기를 위해 써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서 스스로 불편해해요. 남이 소비하는 걸 보면 생각이 없다고 비판하고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니 남을 욕하는 거죠.”
가계부를 쓰다 보면 자신의 삶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계부에 나타난 부모님 용돈은 생각과는 다르다. 옷을 너무 많이 샀다고 느끼면 죄책감에 의류비 대신 생활비로 넣는다. 가계부를 쓰면서도 ‘분식 회계’를 하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사람마다 상황은 전부 다르니까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보게 될까 고민하다가 가계부 양식을 생각했어요. 지출 내역만 쓰면 돈이 없어졌다는 인식만 있어서 죄책감만 들어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얼마만큼 써도 된다는 한도를 정해주는 게 중요해요. 아무리 아껴 써도 생활비로 이 정도는 써야 한다는 기준이 있어야 아끼거나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이 줄어들거든요. 30만 원이 한도라면 10만 원을 3번 써도 되고 1만 원을 30번 써도 된다는 거죠. 특히 청년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박미정 대표에게 소비 만족도는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액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오히려 잘못 썼을 때 오는 불행이 훨씬 크다. 『적정 소비 노트』 를 쓰는 이유는 단순히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산 안에서 자신이 어떤 곳에 돈을 쓸 때 행복한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용을 쓰면서 수입과 지출 간 균형 맞추기에 집중하시는데, 그 안에서 소비의 질과 자신의 성향, 내가 뭘 할 때 좋아하고 뭘 할 때 아까워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에 대한 경제적 관찰 일기를 쓰는 거죠. 잘했다 못했다 하지 말고 일단 있는 그대로 보면서 경제적인 성향을 발견하는 거예요. 누구도 나한테 어떻게 하면 행복하다고 조언할 수 없어요. 푸른살림에서도 재무 상담을 진행하지만, 상담만으로는 재무 상태를 통제하기 어려워요. 『적정 소비 노트』 를 시작으로 적정 소비를 실천해보시면 좋겠어요.”
소비를 무서워만 하면 돈과 잘 지낼 수 없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하지 않는 경제 생활을 하다 보면 ‘소비는 즐거운 행위’라는 마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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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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