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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만난 배우들, 인터뷰 그 못 다한 이야기
윤하정의 공연세상에서 만난 배우들
무대 뒤편의 재미있는 얘기들을 모은 2017년 마지막 기사를 특별히 준비해 보았다. (2017. 12. 27.)
2017년에도 다양한 공연을 취재하면서 수많은 배우들을 만났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채로운 장소와 시간대에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그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사실 인터뷰는 공적으로 만나 다소 사적인 얘기를 하는 꽤 애매한 작업이고, 그 사적인 얘기를 다시 공적으로 써내야 하는 것이 기사라고 할까. 그러다 보니 기사에는 알아서 거르거나, 표현을 바꾸거나, 좀 더 갖춰진 문장으로 표현된 인터뷰 현장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기사로 노출된 적절한 수위의 질문과 답변이 나오기까지는 가벼운 농담부터 온갖 푸념과 불평, 무대 안팎의 이런저런 얘기, 작품에 대한 심오한 분석까지 오가다 보니 무대에서와는 전혀 다른 배우의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고, 무대 뒤편의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을 때도 있고, 이 배우에게서 저 배우의 근황을 들을 때도 있다. 이런 내용은 대부분 전체적인 기사의 맥락을 위해 아쉽게 기록되지 못하는 법. 그래서 올해도 2017년 마지막 기사로 특별히 준비해 봤다. <윤하정의 공연세상>에서 만난 배우들, 인터뷰 그 못 다한 이야기!
순박한 이미지의 이상이, 사실은 세련되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
이상이 씨는 앞서 고은성 씨를 인터뷰할 때 친하다는 얘기를 듣고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초연 때부터 눈여겨봤던 배우다. ‘두 사람의 교집합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그런데 이상이 씨가 <인 더 하이츠>에도 출연한다는 것이 아닌가. 백석과 베니는 달라도 너무 다른데? 인터뷰 때 물었더니, <인 더 하이츠>의 이지나 연출도 ‘너 참 구수하고 촌스럽게 생겼다, 경성시대 사람처럼 촌스럽게 생겼다’는 말을 남기며 초연 때 멋있었던 베니를 재연 때는 순박한 이미지로 바꿨단다. 그럼 <마마 돈 크라이>나 <더 데빌>은 절대 못하겠다고 농담을 건넸더니, 분장하고 옷 갖춰 입으면 세련돼 보인단다. <쓰릴 미>에서도 원래는 ‘그’로 캐스팅된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글쎄, 이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겉모습은 백석, 캐릭터는 베니에 딱 어울리는 느낌? 그리고 고은성 씨와 왜 친한지도 알 것 같았다(웃음).
세련된 이미지의 정욱진, 모두를 속이다!
세련된 이미지와 이지나 연출 얘기가 나왔으니 정욱진 씨 얘기도 하고 넘어가자. 뮤지컬 <아이러브유> 공연에 앞서 정욱진 씨를 인터뷰를 하는데, 2년 전 <형제는 용감했다>로 만났을 때와 달리 여유 있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때는 눈도 못 마주치지 않았느냐며 놀렸더니, 좀 알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멸시(?)하지만(웃음), 자신이 말을 않고 가만히 있으면 ‘서울사람 같다, 강남사람 같다, 굉장히 댄디하다, 아이돌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더 데빌>에서 이지나 연출도 처음에는 배우로서 무척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흡족해 하셨단다. 그런데 런쓰루 때 혼신의 연기를 다했건만 ‘뉴욕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를 연기하라고 했더니, 영천 새마을금고 직원을 연기하고 있다’며 30분을 혼났다고. 그 뒤 이미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 이지나 연출 표현으로는 서울 국민은행 직원으로 승급, 이후 뉴욕 월스트리트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펀드매니저는 아님) 정도 돼서야 무대에 설 수 있었단다. 그래서 알려줬다, ‘서울사람 같다’는 말에 으쓱한 게 이미 촌스러운 거라고(웃음).
조상웅, 정욱진... 다작 배우들의 스위치 전환
요즘 배우들에게는 두 작품을 함께 공연하면서 요일 별로 다른 무대에 오르는 것이 크게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잠시 뒤 시작될 ‘이 공연’을 앞두고 연습 중인 ‘저 공연’에 대해 인터뷰를 할 때도 많다. ‘저 공연’에 대해 한참 얘기한 뒤 1시간 만에 ‘이 공연’ 무대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때그때 다른 인물로 사는 것이 배우의 직업이라지만, 순식간에 그렇게 쉽게 스위치 전환이 되는 것일까. 하지만 배우도 사람이다. 대부분 한 작품을 먼저 무대에 올리고 공연이 좀 익숙해지면 다른 작품의 연습을 겸할 때가 많은데, 이 경우 아무래도 공연 중인 작품, 혹은 최근에 막을 내린 작품에 더 애착을 보인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앞두고 만난 조상웅 씨는 기자에게 <빨래>는 봤느냐며, 작품이 정말 좋은데 요즘 더 제대로 된 <빨래>를 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솔롱고야, 조상웅이야’ 할 정도라며 HJ컬쳐 직원 앞에서 연신 <빨래> 자랑을 했다(웃음). <아이러브유>를 앞두고 만난 정욱진 씨도 <아이러브유>와 관련해서는 질문마다 어렵다고 하더니, <어쩌면 해피엔딩>은 혼자 10분 이상 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정욱진 씨는 그날 자정 넘어 <아이러브유>와 관련해 제대로 인터뷰를 못한 것 같다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정도면 본인이 생각해도 ‘정욱진상’인 것 같다며(웃음).
<록키호러쇼>의 조형균, B급 컬트 문화가 뭐냐고 되묻다!
앞선 기사를 읽으며 왜 공연 전에 인터뷰를 하느냐고 묻는 독자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연습 때보다는 공연 중에 작품에 대해서는 더 농밀한 대화가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인터뷰 기사라는 것이 꼭 공연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닌 데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공연에 앞서 기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작품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에 공연 전 배우와 인터뷰가 잡힐 때도 있다. 그래서 역시나 뮤지컬 <록키호러쇼> 개막을 꽤 앞두고 만난 조형균 씨. 그런데 조형균 씨는 당시 공연 중이던 <더 데빌> 인터뷰인줄 알고 나왔다며, <록키호러쇼> 는 공식 상견례 전이고 대본도 받아보기 전이라고 했다. 아뿔싸! 하지만 어떻게든 기사는 써야 하기에 영화는 봤다는 그에게 B급 컬트 문화에 대해 물었더니,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홍보 직원이 옆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 설명하더라. 잠시 뒤 포스터 촬영 현장을 물었더니, 처음에는 분장하고 거울을 정말 오랫동안 봤다고 했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잘 어울리지 않느냐고 했더니, 자신은 흐린 이목구비라며,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있는 수채화 같은 얼굴이라고 했다. 웃기긴 한데 그날 인터뷰는 유독 힘들었던 기억이...
카리스마 넘치는 한지상, 실상은 순한 양에 사랑꾼
무대 위 한지상 씨를 보면 유독 강한 캐릭터에 한껏 가라앉은 음색, 카랑카랑한 가창력까지 워낙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게 느껴진다. 이럴 때 기자가 써먹는 카드가 있으니 배우들의 데뷔 즈음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 공연을 보았노라고! 10년 전에 <밴디트>를 봤고 인터뷰도 했다는 말에 한지상 씨 역시 폭우가 쏟아지는 날 갑자기 덥다며 에어컨을 켜자고 했다. 이제 최정상의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뿐 아니라 한 계단 한 계단 노력하며 걸어온 배우까지 좀 더 인간적인 한지상 씨도 만날 수 있는 분위기. 실제로 그는 자신이 원하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무섭게 집착하고 고집을 피우지만, 평소에는 낯을 많이 가리고 친한 사람한테는 편하고 만만한 사람이란다. <나폴레옹>을 준비하면서는 강홍석 씨가 동생인데도 말을 잘 들었다고. ‘형 추워, 옷 입어’라고 말하면 군소리 없이 옷을 입었단다. 게다가 한지상 씨는 공연계 사랑꾼으로도 유명한데, 라이선스 작품인데도 무대에 오를 준비가 꽤 부족했던<나폴레옹>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이 작품 사랑하려고 엄청 노력했어요’라고 말했다. 무대 위에 있는 3시간 동안은 조세핀도 정말로 사랑한다고(웃음).
김무열, 무대에서도 스크린에서도 돋보였던 한 해
<쓰릴 미> 초연을 최재웅-김무열 페어로 봤건만, 그리도 오랜 기간 공연을 취재했건만, 김무열 씨를 만나는 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런데 딱 <쓰릴 미> 10주년 공연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공연을 취재하다 보면 저녁도, 주말도 없고, 모든 일정을 배우들의 스케줄에 맞춰야 해서 지칠 때가 많은데, 그 힘겨움을 한꺼번에 보상받은 기분이랄까. 김무열 씨는 10주년 공연 섭외를 받고 자신에게도 무척 의미 있는 작품이라 기쁘면서도 스물두 살 ‘그’와 ‘나’의 이야기라 걸렸다고. 초연 때 류정한 씨도 ‘내가 이걸 어떻게 하느냐’며 무척 걱정했는데, 이번에 최재웅 씨 나이가 초연 때 류정한 씨보다 한 살 어린 시점이었단다. 그래서 ‘쟤네 늙었다,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 부담이 컸는데, 그럼에도 최재웅 씨가 입으로만 다이어트를 해서 더 안타까웠다고(웃음). 결과적으로 <쓰릴 미> 10주년, 그것도 ‘최재웅-김무열’ 페어는 최고였지 않은가! 당시 인터뷰 직전 크랭크 인을 앞둔 영화 미팅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기억의 밤>이었다. 김무열 씨는 인터뷰 때 공연도, 영화도 왠지 발만 담그고 있는 것 같아 그걸 극복하는 게 숙제라고 했는데, 올해는 그 숙제를 멋지게 해결한 것 같다!
임혜영과 이소연이 밝히는 의상의 불편한 진실
보통 고전 작품에서는 여배우들의 의상이 유독 눈에 띈다. 일반인들은 언제 그렇게 예쁜 드레스를 입어보겠나. 그래서 <키다리아저씨>로 오랜만에 대학로를 찾은, 여리한 여주인공의 대명사 임혜영 씨에게 예쁜 드레스를 정말 많이 입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드레스는 정말 불편하다며 <미스 사이공> 킴의 고무줄 바지가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신발도 안 높고 속눈썹도 안 붙여도 된다고. 재밌는 건 드레스가 확실히 불편한데, 너무 많이 입어서... 그 불편함에 익숙해졌단다! 기억에 남는 예쁜 옷은 뮤지컬 <드라큘라> 의상이라고. 반면 <아리랑>, <서편제> 등을 통해 뮤지컬 무대에 선 국립창극단 소속 소리꾼 이소연 씨를 만나는데, 그녀의 예쁜 원피스 차림에 당황했다. 물론 평소에 한복을 입겠냐만 왠지 낯선 느낌이랄까. 기자의 이 같은 반응에 많은 사람들이 소리꾼들에게 ‘생각보다 세련됐다, 이런 옷도 입느냐, 젊다’고 말한다며, 소리꾼도 평소에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힙합을 듣고, 파스타를 먹는다고 웃었다(웃음).
첫사랑 얘기에 푹 빠진 정민에게 건넨 아내의 일침
황순원의 ‘소나기’를 모티브로 만든 뮤지컬 <리틀잭>은 인터뷰 때마다 배우들의 첫사랑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살짝만 물어도 이런저런 얘기를 마치 쭉 알아온 사람에게 건네듯 풀어놓는 정민 씨에게 첫사랑하면 어떤 게 떠오르느냐고 물었더니, 첫사랑의 이미지, 그때 공기 온도와 냄새까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며 역시나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하철 역명, 무슨 노래를 듣고 있었는지까지 얘기할 정도였으니 지어낸 얘기는 아닐 터. 당시 정민 씨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문득 첫사랑과 아내가 동일 인물이냐고 물었더니, ‘어? 깜빡했네요!’라며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웃는 게 아닌가. 그렇잖아 당시 뮤지컬 <리틀잭>을 본 정민 씨 아내도 ‘뭘 자꾸 떠난 옛 연인을 찾느냐’고 일침을 가했단다(웃음).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