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오승원의 반딧불 의원
당신은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나요
날씬함이 강요되는 시대를 산다는 것
“식사 일기는 써 보셨나요?” 일주일만의 두 번째 방문이었다. 지난 주 살 빼는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는 최지연 씨의 요청에 의사는 약과 더불어 일기 쓰기를 처방하며 이렇게 당부했었다. (2017.11.29.)
언스플래쉬
성수역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 안엔 술 냄새가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최지연 씨는 출입문 옆에 기대어 섰다. 연 이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기에 다리가 뻐근했다. 건너편 좌석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그녀가 앉기에 좌석 공간은 좁아 보였고 양쪽엔 모두 남자들이었다. 몸에 배인 습관이었다. 오래전 만원 지하철 좌석에서 옆 자리의 젊은 남자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본 적이 있다. 옆에 앉은 여자 때문에 숨을 못 쉬겠다느니 대중 교통에도 몸무게 제한을 둬야 한다느니 하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남자 옆 빈자리엔 앉지 않았다.
최지연 씨에게 출퇴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는 30분 가량은 힘겨운 시간이었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승객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고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 중 일부는 채팅 창에 그녀를 흉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이어폰을 꽂고 시선을 책에 고정하는 것으로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도피하곤 했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출입문 창에 비친 커플의 모습이 보였다.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그녀를 쳐다보며 속닥이고 있었다. 최지연 씨는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남자가 여자의 팔뚝과 옆구리를 만지며 손가락으로 두툼한 살집 모양을 만들자 여자가 킥킥거리며 남자의 어깨를 밀쳤다. 최지연 씨는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다. 집까지는 두 정거장이 남아 있었지만 출입문이 열리자 그녀는 바로 열차에서 내렸다.
생각해보면 흔한 일이었다.
대학 친구들과 처음 워터파크에 갔을 때 조소를 머금고 그녀의 몸을 곁눈질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뒤로는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목욕탕이나 찜질방도 마찬가지였다. 마트에서 음식을 한꺼번에 사야할 땐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낯선 사람들의 시선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그녀의 체중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어려서 살찌면 귀여운 거지만 나이 들어 살찌면 가여운 거라는 상사의 핀잔 정도는 약과였다. 같은 커피라도 날씬한 사람이 타주는 게 더 맛있더라, 요즘 옷은 사이즈가 작게 나오던데 이런 프리 사이즈는 어디에서 사는 거냐, 순수하게 건강 걱정해서 이야기하는 건데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 마치 뚱뚱한 여자의 체중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언제든 내뱉아도 괜찮다는 프리 쿠폰이라도 가진 것 같았다.
명절에 집에 가면 친척들로부터 살 빼라는 잔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 했다. 적게 먹으면 그 덩치에 그거 먹어서 되겠냐고 했고, 많이 먹으면 그러니까 살찐다고 했다. 지난 설에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차리면서 상과 상의 간격을 좀 떨어뜨려야 가족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겠다고 하자 고모가 한마디 던졌다.
“살 좀 빼면 다들 그냥 앉을 수 있겠네.”
여느 때라면 그냥 듣고 넘겼을 텐데 순간 울컥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눈물이 핑 돌아 숟가락을 밥상 위에 던지고 일어나 방을 나가는 그녀 뒤통수에 대고 고모가 소리를 질렀다.
“저거 봐. 뚱뚱한 게 성격까지 지랄 맞으면 진짜 시집은 어떻게 갈래!”
최지연 씨의 체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 생활을 할 때였다. 집과 학원을 오가는 일 년 간 10킬로그램이 늘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오르락내리락하던 체중은 야근이 잦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늘어 현재는 70킬로그램을 넘은 상태였다.
다이어트를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아니, 해보지 않은 다이어트가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홈쇼핑에서 파는 다이어트 보조제들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하루 한 끼를 먹거나 원 푸드 다이어트를 해보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하긴 어려웠다.
체중을 가장 많이 줄였던 것은 여름 휴가 동안 단식원에 갔을 때였다. 일주일간 효소와 구운 소금만 먹고 6킬로가 빠졌지만 이후 빠진 체중은 금세 제자리를 찾았고, 한 달이 지났을 땐 그곳에 가기 전보다 3킬로가 늘어 있었다. 최지연 씨는 억울했다. 따로 운동을 하진 못했지만 평소 식사량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다이어트 때문에 밥은 반 공기만 먹는데도 왜 체중은 늘어만 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열한 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길이지만 집에서 멀지는 않은 곳이었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지나쳤던 것 같기도 했다. 버스 정류장 광고판이 눈부셨다.
“이제 마음껏 먹으면서 빼자!
30일 간의 마법 같은 변화를 느껴보세요!”
광고판 속 모델은 쭉 뻗은 다리를 벌리고 선 당당한 포즈로 자신을 따라해보라는 듯 이야기했다. 최지연 씨는 고개를 저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난 죽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거야.”
그녀가 눈길을 돌렸을 때 불 꺼진 건물 3층에 환하게 빛나는 창이 보였다. 한참 멍하니 불빛을 쳐다보던 그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건물 쪽으로 발길을 내디뎠다.
*
“식사 일기는 써 보셨나요?”
일주일만의 두 번째 방문이었다. 지난 주 살 빼는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는 최지연 씨의 요청에 의사는 약과 더불어 일기 쓰기를 처방하며 이렇게 당부했었다.
“우선 적기만 하세요. 다른 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물을 포함해 입으로 들어가는 건 모두 기록해야 해요.”
먹는 것을 기록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괜한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기록하지 못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하루 동안 먹었던 것을 생각하다 보면 빠뜨린 걸 발견하곤 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음식을 먹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은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매일 저녁 침대에 누워 그날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며 누락된 음식 목록을 채웠다.
미간을 찌푸린 채 식사 일기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이야기했다.
“아침은 거의 안 드시는 것 같네요.”
“네, 아침엔 입맛도 없고 먹을 시간도 없고… 대신 오전 중에 간단한 간식 위주로 먹는 편이에요.”
“간단해 보이는 간식이라 해도 칼로리가 적지 않아요. 특히 여기 적힌 도넛이나 샌드위치 같은 음식들은. 아, 초콜릿도 자주 보이는군요. 이 정도만 해도 한 끼 열량은 훌쩍 넘습니다. 이외 시간에 먹는 간식들까지 합하면 세 끼 식사를 끊어도 되겠어요. 이런 상태에서 밥을 반 공기 남겼다고 하여 적게 먹었다 생각하는 건 착각입니다.”
순간 최지연 씨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침은 꼭 드세요. 공복 시간이 길어 허기를 느끼면 쉽게 열량을 채울 수 있는 음식을 찾거나 폭식을 하게 됩니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배가 고프기 전에 먹는 게 좋아요. 그리고 하루 세 끼 외에 간식은 끊으세요. 음료는 물과 아메리카노 커피만. 앞으로도 식사 일기는 계속 쓰셔야 합니다.”
단호한 말투에 그녀는 주눅이 들어 보였다. 의사는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약 드시고 불편한 건 없었나요?”
“말씀해주신 대로 입이 마르고 조금 어지러울 때가 있긴 했는데 많이 불편하진 않았어요.”
“잘됐네요. 일단 3개월 정도까지 드시도록 할거에요. 이후엔 반응을 봐서 좀 더 처방할 수도 있구요.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식단 관리가 안되면 약으로 뺀 살은 다시 찐다는 걸 명심하셔야 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주에 처음 오셨을 때 체중이 73킬로그램이었죠. 최지연 씨가 바라는 체중은 어느 정도에요?”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녀는 잘못을 고백하는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말했다.
“50킬로그램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늘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체중계에서 5로 시작하는 숫자는 본 적이 없지만요.”
“키가 162센티미터인데 50킬로는 저체중에 가깝습니다. 일단 60킬로 대로 줄이는 걸 일차 목표로 하지요. 다음 주 목요일 퇴근 길에 들르세요. 다음번엔 운동을 어떻게 해야할지 상의해봅시다. 그리고,”
컴퓨터 화면을 보며 망설이는 듯하던 의사가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최지연 씨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신경 쓰지 말아요.”
예상치 못한 의사의 말에 그녀는 울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일주일 전 여기 왔을 때,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어요. 그날 기분이 최악이었거든요. 그런데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이 병원 창문이 보였죠. 시커먼 하늘 아래 하얗게 빛나는 병원 창문을 보고 달이 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불빛이 제게 구원의 손짓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의사는 다시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좀 우습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그냥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그녀 위로 진료실 천장의 형광등이 파르르 떨렸다.
언스플래쉬
“선생님, 저는 많이 먹진 않아요.”
비만 치료를 할 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다. 체중 감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섭취하는 열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자신이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고 있는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비만 치료에서 식사 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비만 환자들은 자신이 먹는 열량을 과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식사 일기를 쓰는 것이 스스로의 식사 패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인 열 명 중 세 명이 비만 환자이며, 비만을 해결하려는 국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째 비만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비만 합병증으로 인한 직접적인 질병 부담도 큰 문제이지만, 비만 환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편견 역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게으르고 자기관리를 안 해서 살이 찐다는 시각이 그 예다, 비만 환자는 합병증의 위험과 사회적 낙인의 이중고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날씬함이 곧 건강함의 지표인 양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러한 부정적인 낙인을 강화시키며, 날씬함의 기준이 엄격해질수록 낙인으로 인한 부작용은 심해진다.
최근 영국에선 유명 모델을 앞세운 모 다이어트 제품 광고가 “당신은 카다시안을 따라잡을 수 있나요(Can you keep up with a Kardashian)?”란 카피를 사용하여 여성에게 비현실적인 몸매를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국에서도 젊은 여성의 체형에 대한 인식 왜곡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며 전문가들은 마른 체형을 이상화하는 미디어의 영향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국내 연구* 결과 정상 체중 여성의 약 40퍼센트가 자신이 뚱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올바른 체형 인식을 가진 여성에 비해 잘못된 체형 인식을 가진 여성에게 금식이나 폭식 등의 무리한 체중 조절 경험이 많았으며,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위험도 역시 약 1.8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한국 성인 여성 평균 키에 해당하는 162센티미터인 경우, 49~60kg 정도가 의학적인 정상 체중에 해당한다.
* Lee KM, Seo MS, Shim JY, Lee YJ, Body weight status misperception and its association with weight control behaviours, depressive mood and psychological distress in nulliparous normal-weight young women, Ann Hum Biol, 2015; 42(6): 528~532.
관련태그: 다이어트, 체중감량, 표준 몸무게, 식이요법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