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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권과 표현의 자유 (2)

『사회, 법정에 서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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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사적인 사안일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이라면 언론의 자유를 좀 더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17.11. 23)

MBC 〈PD수첩〉은 2008년 4월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방송은 도축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소가 불법 도축되고 있으며, 미국 여성 가운데 한 명이 최근 인간 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고 사망하는 등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수입을 재개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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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리나라 협상 팀이 미국의 도축 시스템을 잘 몰랐거나, 알면서도 위험성을 은폐 또는 축소한 채 협상을 체결했다는 내용을 방영했죠. 이 방송은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2008년 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에 검사는 〈PD수첩〉의 광우병 방송을 제작한 피디들이 우리나라 협상단 대표와 주무 부처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하고, 쇠고기 수입업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기소했습니다.

〈PD수첩〉에서 방송한 부분, 특히 우리 협상단이 미국의 도축 시스템을 잘 몰랐거나, 알면서도 위험성을 은폐하고 축소했다는 부분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만약 우리 아버지가 협상 팀원이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버지는 매일 밤 12시까지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송에서 위와 같은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아마 방송을 본 아버지뿐 아니라, 가족들도 많은 고통을 받았을 거예요. 설사 방송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협상단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내용의 방송은 금지되는 것일까요?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관련해 여러 가지 중요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먼저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 문제되는 경우 그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 보도의 내용에 공공성이 있는지에 따라 그 심사 기준이 달라진다고 판시했습니다. 먼저 그 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여부를 따져야 합니다. 또 그 보도가 공적으로 대중이 관심을 갖는 사안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인지, 나아가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사회성을 갖춘 사안으로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죠.

 

대법원은 사적인 사안일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이라면 언론의 자유를 좀 더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처럼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에 비로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이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언론보도로 인해 정책 결정에 관여한 공직자의 사회적 평가가 다소 낮아지더라도, 악의적인 보도가 아닌 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처럼 판례는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공인인 경우, 매우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명예훼손죄를 인정합니다.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 사이의 조화를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죠. 실제로 명예훼손인지 따질 때 피해자가 어떤 지위에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회의원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국민의 알 권리와 올바른 투표권 행사를 위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에 동사무소 직원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야 할 공익성을 인정하기 어렵죠.

 

원래 공인은 선출직 공무원이나 고위 공무원을 의미했습니다. 그렇다면 연예인, 혹은 유명 운동선수와 재벌 등도 과연 공인일까요? 요즘 들어 많은 사람이 이들을 공인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유명인에 대한 사생활 보도는 어디까지 허용될까요? 연예부 기자가 유명인의 데이트 장면 등을 몰래 찍고 보도하는 것은 모두 허용되어야 하는 행위일까요?

 

최근에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습니다. 피고 회사는 인터넷 신문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로, 주로 연예 기사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피고 회사는 기사를 통해 유명 대기업 대표 이사로 알려진 A와 그 배우자의 상견례, 데이트 장면 등을 상세히 묘사했고, 그들을 무단으로 촬영한 사진을 함께 실어 특종 보도를 했습니다. 이에 A와 배우자는 그 기사를 삭제해줄 것과 손해배상을 요구했죠. 하지만 피고 회사는 A는 재벌 그룹 경영인으로서 그의 결혼이 정당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사진들은 모두 공개된 장소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기사가 A와 배우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기사의 삭제와 손해배상을 판결했죠(다만 기사 가운데 일부 내용, 예를 들어 A와 배우자의 결혼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 A의 배우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등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 보도는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인격권(명예)과 언론의 자유는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우선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그때그때 구체적 사실 관계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있죠. 예컨대 연예인은 스스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 영역으로 나선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중의 관심이 수입으로 이어지는 직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대기업 회장은 연예인과 달리 스스로 대중의 관심 영역으로 나선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그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에 비추어보면, 사생활의 일정 부분을 양보해야 하는 것은 맞죠. 두 사람에 대한 똑같은 보도가 나가서 그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해도, 법원은 조금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의 명예를 어느 정도 보호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법원과 대중은 정치인, 고위 공직자, 유명 연예인의 사생활 일부분이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과연 선출직 공무원, 고위 공무원, 유명 연예인, 유명 운동선수, 유명 범죄인이 어디까지 자신의 인격권 침해를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도 인격권,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생각해보며, 스스로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더 알아봅시다! 명예훼손과 공연성

 

본문에서 살펴봤듯이 명예훼손죄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할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가 ‘공연성’을 갖춘 것일까요? 일단 공연성은 불특정인 또는 다수인이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직장 전산망에 설치된 전자 게시판에 명예훼손적인 글을 적시하면, 설사 전자 게시판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연성이 충족됩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친한 친구 몇 명이서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이는 공연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명예훼손죄로 처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매우 중요한 예외가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 즉 2, 3명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사람들을 통해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이 충족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즉 카카오톡 등을 통해 명예훼손적인 대화를 했다고 해도, 상대방을 통해 그 내용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이 충족된다는 것이죠. 최근 한 야구선수가 여자친구에게 “유명 치어리더가 다수의 남성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하였다”는 문자를 전송했는데, 여자친구가 그 문자를 캡처하여 SNS에 게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야구선수와 여자친구가 명예훼손죄[정확히는 ‘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습니다.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낸 행위에 공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다툼이 있었지만, 법원은 위 사건이 있기 전에 여자친구가 SNS를 통해 두 사람이 침대에 함께 있는 사진을 게시했던 점 등을 근거로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에 기자에게 사실을 말했더라도 기사화가 되지 않고 취재에 그친 경우 전파가능성이 없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위 판결들에 대해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사실 카카오톡으로 친구에게 명예훼손사실을 전달한 것을 두고 ‘공연성’을 갖추었다고 보는 것은 ‘공연히’라는 문언에 어긋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카카오톡을 통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명예훼손을 방치한다는 것 또한 부당한 측면이 있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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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승(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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