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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권과 표현의 자유 (1)

『사회, 법정에 서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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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법은 진실을 말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는 명예훼손죄 성립을 인정합니다. 판례 역시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명예’란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이른바 ‘외부적 명예’를 의미한다고 판시하죠. (2017.11. 16)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인격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로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명예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외부적 명예를 일컫는다. 이 장에서는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고민해보고, 명예훼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살펴보자.

 

진실을 말해도 처벌될까?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 결과를 표현함으로써 자아를 형성하고 실현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죠. 하지만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 해도, 그것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표현의 자유를 남용하여 다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주객전도된 행위인 셈이에요. 행동의 자유가 있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때릴 자유까지 인정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는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우선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두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조화로운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사례를 하나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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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는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한 결과 꿈에 그리던 한국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김철수는 고등학교 때 짝꿍이었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이영희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이영희는 시험을 칠 때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커닝을 했으며, 좋은 내신성적을 받아 한국대학교 법학과에 수시전형으로 합격했습니다.

 

김철수는 고등학교 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영희가 열심히 공부한 자신과 같은 대학에 왔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영희는 학과 친구들에게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죠. 김철수는 대학 동기와 선배들에게 사실 이영희가 커닝을 잘해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지금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영희는 김철수에게 왜 지난 일을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냐며, 한 번만 더 이야기하면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겁을 줬습니다. 그러자 김철수는 내가 한 말이 거짓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냐며 고소할 테면 해보라고 받아쳤습니다. - 사례1

 

만약 이 사례처럼 김철수가 진실을 사람들에게 말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될까요? 김철수는 진실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오히려 평소에 거짓말한 사람은 이영희죠. 진실도 말할 수 없다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명예훼손이 성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김철수는 공익적 목적에서 이영희의 과거를 폭로한 것이 아니라 이영희가 자기와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소문을 낸 것이기 때문이죠. 설사 김철수의 폭로가 이영희의 거짓말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폭로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적기 때문에 뒤에서 보듯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면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만일 이영희가 국회의원이나 시장선거에 입후보한 후보였다면 김철수의 폭로는 투표권자의 올바른 투표권행사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알쏭달쏭한 명예훼손의 성립여부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형법상 명예훼손죄

 

형법 제307조에는 명예훼손죄에 관한 법조문이 있습니다.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지적하고 보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죄인을 교도소에 가두어 노동을 시키는 형벌. 자유형 가운데 가장 무거운 형벌이다)이나 금고(자유형의 하나. 교도소에 가두어 두기만 하고 노역은 시키지 않는다)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명시하죠. 그리고 허위 사실을 말하여 명예훼손한 경우나 출판물 등을 이용하여 명예훼손한 경우, 형법 제307조 제2항이나 형법 제309조에서 진실을 말해 명예훼손한 경우보다 더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 형법은 진실을 말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는 명예훼손죄 성립을 인정합니다. 판례 역시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명예’란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이른바 ‘외부적 명예’를 의미한다고 판시하죠. 즉 거짓되고 과장된 사회적 평가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죄에 의해 보호된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데 명예훼손으로 인정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진실이라고 해도 아무런 제한 없이 표현을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사례를 살펴보도록 해요.

 

김철수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죠. 다만 고등학교 때 짝꿍인 이영희만이 그 사실을 우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김철수와 싸우고 화가 난 이영희는 대학교 게시판에 “김철수는 사실 동성애자다”라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그리고 김철수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도 이러한 내용의 글을 써서 붙였어요. - 사례2

 

〈사례 2〉와 같은 이영희의 행위는 명예훼손죄로 처벌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 하나쯤은 있는 법입니다.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진실이라고 하여 무제한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실의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습니다. 심지어 2013년 6월에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죠.

 

이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근거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명예훼손죄는 공권력에 의한 남용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예로 다음에서 살펴볼 〈PD수첩〉 사건과 같이 명예훼손죄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명예훼손은 사적 영역으로, 국가가 나서서 형벌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도 유력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하는 측이 무조건 진실을 말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은 민사적 구제, 즉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거나 반론보도를 청구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명예훼손과 공공의 이익

 

명예훼손죄가 국민의 알 권리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즉 〈PD수첩〉이나 〈추적 60분〉 등의 프로그램은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많이 방송합니다. 예컨대 국회의원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보도나 고위 공직자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보도는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임이 분명하죠. 또한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방송 역시 아무리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그의 명예를 훼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어떻게 방영되고 있을까요?

 

형법 제310조는 사실의 적시에 대한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앞서 말했듯, 명예훼손죄의 성립 범위를 넓히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크게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국민의 알 권리의 범위를 넓히면 개인의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습니다. 형법 제310조는 개인의 명예 보호와 표현의 자유, 또는 언론의 자유의 조화를 도모하는 규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판례는 이 규정의 문언(문장 속의 어구)의 의미를 더 확장하여 사실이란 객관적으로 진실인 경우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허위이지만 피고인이 진실이라고 믿은 사실도 포함된다고 판시합니다. 즉 허위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표현한 사람이 그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사정이 있다면 면책된다는 뜻이죠. 나아가 형법에 나온 ‘오로지’라는 말 역시 법원은 문언과 달리 ‘주로’라고 더 넓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회, 법정에 서다허승 저 | 궁리출판
법학도를 꿈꾸는 청소년뿐 아니라 법학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 법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일반 성인들에게도 법과 친해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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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승(판사)

사회, 법정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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