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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의 나라에서 온 편지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구원은 그런 것이다. 미래의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미래를 영원히 미래로 둘 때, 포기할 때, 구원은 가능해진다. (2017.11.06)
언스플래쉬
미래가 두려워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언제였더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사람들일까. 미래에 질식해 눈물 흘린다. 모르는 것이 많았던 어린 시절과, 절망적인 괘만 점치던 사춘기 시절, 선뜻 떠오르지 않는 청사진을 안간힘으로 채색하며 살아가는 청년의 시간이 그렇게 운다. 미래에 물뿌리를 둔 눈물은 거꾸로 흘러간다.
그러나 끊임없이, 미래를 현재로 불러와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시간이다. 우리 앞에 놓인 미지의 상자가 열린다고 해도 삶은 일순간 역전되지 않는다. 물론 완전히 망해버리는 일도 드물다. 미래는 차라리 빨랫감의 호주머니를 뒤집어보는 일이다. 아무것도 없거나, 오백 원짜리 동전을 발견하는 정도의 사소한 기쁨으로 오거나, 물에 젖어 너덜너덜해진 지폐 한 장을 더듬는 일처럼 견딜만한 슬픔으로 오거나. 만일 학수고대하던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은 없다. 오히려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실망감은 삶에 대한 권태를 서두르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은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이 세계에 그다지 결정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오는 슬픔과 안도감. 미래를 포기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비슷한 슬픔과 안도감이 있다.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다만 영원에 이르는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은 뿐인데.
미래? 정말로 그런 게 있다면 살고 싶지 않을 거야.
왜? 늙기만 할 거니까, 죽을 테니까.
구원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마음을 가져가는 것으로 찾아온다.
어둠이 너무 커,
어둠을 끄려고
함박눈만큼 무수한 스위치가 필요했겠지.
함께라는 말 속에 늘 혼자 있는 사람과 혼자라는 말을 들고 늘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너를 일으켰을 때,
네 눈에 박혀 있던 돌멩이처럼
너는 울었다.
―「눈사람」 전문
그렇다면 미래에 큰 기대나 공포를 품지 않는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어디에 뿌리를 뻗고 있을까. 언젠가부터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 떠올리는 것들이, 미래보다 과거의 일들이라면, 모두 지나간 일들 때문이라면, 당신을 눈사람이라 불러도 좋겠다. 그들은 살아갈 날들에 비해 살아온 날들이 너무 많은, 다 늙어버린 존재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눈사람의 과거는 눈송이이고, 구름, 빗방울이고, 어쩌면 강, 분수대 천사의 오줌이다. 눈사람은 녹는 순간 다시 물이 되기 때문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눈사람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과거를 한 번 더 살아볼 수 있고, 눈사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을 정말 비관적인 미래관이라고 생각하는지. 눈사람에게 미래가 없는 것 또한, 다가오는 미래가 아닌, 끝없이 멀어지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오지 않는 미지의 미래. 두려워서 엉엉 울다가도 막상 현재에 당도하고 나면 시시해져버리는 미래가 아니다. 그러므로 눈사람은 늙지도 죽지도 않지. 구원은 그런 것이다. 미래의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미래를 영원히 미래로 둘 때, 포기할 때, 구원은 가능해진다.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을 버릴 때에야 비로소.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
이렇게 깊다
내가 저지른 바다는
―「저지르는 비」 부분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는 미래에서 눈사람이 보내온, 어떤 존재들의 아름다운 전생 목록 같다. 슬픔의 전생은 새이고, 동그라미의 전생은 빛과 주먹, 모래시계의 전생은 해변이다. 모든 나무의 전생은 지구를 향해 날아든 신의 화살이며, 세상의 모든 돌은 누군가의 비석이었다. 시집에 등장하는 전생의 기록을 일부만 밝혔지만, 이 시집의 황홀함을 짐작해볼 수 있으리라. 과거를 끌어올려 흘린 현재의 눈물방울이 미래로 흘러간다. 언젠가 비가 내릴 것이다. 언젠가의 바다가 될 것이다.
미래를 포기한다는 것, 참 희망적이지 않은가.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신용목 저 | 창비
“서정시의 혁신”(박상수)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아무 날의 도시(문학과지성사 2012)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당대 사회 현실을 자신의 삶 속에 끌어들여 존재와 시대에 대한 사유의 폭과 감각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시세계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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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인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온갖 것들의 낮』이 있다.
<신용목> 저9,900원(10% + 1%)
‘나’와 ‘너’를 아우르는 ‘우리’의 세상은 가능한가 세상의 모든 외로움과 절망을 마주하는 시인의 간절함 부름 검은 사내가 내 목을 잘라 보자기에 담아 간다 낡은 보자기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나는 구멍으로 먼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어느날 연인들이 마을에 떨어진 보자기를 주워 구멍으로 검은 사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