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직원의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보는 노벨문학상
출판계의 로또(?) 이야기
매출 로또를 꿈꾸었던 나와 MD는 그 다음날 ‘밥 딜런의 수상을 축하합니다’라고 적은 기획전에 음반 상품을 좀 더 추가해달라고 음반팀에 메일을 쓰며 왠지 모를 허탈감을 느꼈다. (2017.10.16)
매년 10월 첫째주 목요일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각 서점의 문학 MD는 긴장한다. 그 날 저녁 무렵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우리나라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그날은 야근 당첨. 올해는 발표일이 연휴의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더욱 더 전쟁 같았다. 문학 MD들은 연휴 전부터 유력한 수상자 후보의 기획전 페이지를 제작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발표 당일 사무실에 나와 근무를 하며 수상자가 결정되는 대로 페이지를 꾸려 당일 바로 기획전을 올렸고, 서점의 홍보 담당자들 역시 기자들에게 판매량 증가 등 서점 동향을 전해주며 분주한 연휴를 보냈다. 올해는 당초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었던 작가들 대신 일본계 영국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그 영예가 돌아갔고, 현재 그의 저작들은 가파른 판매고를 보이며 서점 베스트에 대거 포진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은 언제부터 우리 출판계의 로또(?)가 되었을까. 그 전까지만 해도 노벨문학상 수상은 띠지에 적는 하나의 관용구 같은 것, 혹은 수십 년째 유력한 후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은 시인의 집 앞에 기자들이 몰리는 시점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2004년 국내에 『내 이름은 빨강』으로 소개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터키 출신의 오르한 파묵이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판매가 다시 증가하면서 우리 출판계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이 중요한 위치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후 국내 소개된 작가가 연이어 수상하던 몇 년 동안은 잠잠했다가, 2012년 수상자인 모옌, 2013년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 2014년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 등 국내에 작품이 소개된 작가들이 잇달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며, 이제 어느덧 가을의 서점들이 지나칠 수 없는 주요한 이벤트로 자리잡게 되었다. 역시 노벨문학상의 과실은 주로 해외 문학을 꾸준히 번역하는 대형 출판사들의 것이 되긴 하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015년 수상했던 직후에는 새잎에서 펴낸 『체르노빌의 목소리』만 국내에 소개되어 있어 반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수상자는 모든 서점의 담당자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절망을 안겨주었는데, 그는 바로 팝의 음유시인으로 일컫어지던 밥 딜런이다. 내가 다니는 서점 역시 『1Q84』의 출간 이후 매년 유력한 수상 후보로 떠오르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을 염두에 둔 사은품과 기획전을 준비하고, 또한 하루키가 타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사은품과 기획전 등 세 가지 종류를 준비해놓고 득의만만하게 발표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할 순 없을 거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 때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한림원이 원래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발표를 미뤘던 이유를…당시에는 그냥 문학 MD가 야근하는 날짜가 일주일 늦춰졌구나, 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16년의 발표날, 퇴근 후 뉴스를 틀어놓고 계속 스마트폰 메신저를 들여다 보던 내게 갑자기 남편이 말을 걸었다. “어, 밥 딜런이 올해 수상자라는데?” 귀로는 문장을 들었으나, 하루키가 수상했을 때와 응구기 와 시옹오가 수상했을 때만 떠올리고 있던 나의 뇌는 혼란에 빠졌다. 네? 문학상인데 왜 가수에게 주죠? 아무리 그가 시로도 손색없는 가사를 써서 노래했다고 해도 문학상은 작가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야이 나쁜 한림원 회원들아!!
멘붕에 빠진 MD와 필자
매출 로또를 꿈꾸었던 나와 MD는 그 다음날 ‘밥 딜런의 수상을 축하합니다’라고 적은 기획전에 음반 상품을 좀 더 추가해달라고 음반팀에 메일을 쓰며 왠지 모를 허탈감을 느꼈다. 당시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밥 딜런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품절 상태였으나 출판사는 부랴부랴 재판을 찍기 시작했으니, 이 반짝 특수는 그나마도 문학 분야의 것이 아니라 예술 분야의 것이었다. (온라인서점 분류 Tip : 밥 딜런은 대중음악가이므로 그의 자서전은 예술로 분류됩니다)
워낙 관련서가 없으니, 이 특수에 편승하기 위해 밥 딜런의 가사집(무려 영한대역!!!)을 사은품 책자로 제작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워봤지만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음반사가 전혀 호응해주지 않아 하룻밤의 몽상으로 끝나버렸다.
아무래도 올해 영국 작가이긴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노벨상을 준 것을 보면 내가 서점을 다니는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상을 거머쥐는 일은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상 작가의 연령대가 60대 초반으로 낮아진 것을 보면 앞으로의 수상 기회는 젊은 작가들에게 더욱 더 많이 주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확실한 것은, 노벨문학상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 혹은 예상할 수 있는 당연한 것들에 주어지는 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파격적이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가를 찾아내 그를 치하하기 위한 한림원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꿈꾸는 한국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올 추석 연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던 한강 작가가 최근의 북한 문제에 대해 뉴욕타임즈에 기고했던 글이 미국인들에게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우리 작가들도 해외 무대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널리 알리는 일이 많아진다면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10~20년 안에는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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