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베트남 중부 최대의 도시 다낭으로 떠나는 것을 베트남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역사를 본다면 꼭 당연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의 베트남은 베트남 북부를 거점으로 한 비엣족이 세운 나라가 남쪽으로 밀고 내려와 만들었다. 다낭은 비엣족에 점령당한 15세기까지 참족이 세운 나라 ‘참파’의 중심지였다. 비엣족이 중국과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면, 참파는 인도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다. 베트남과 참파는 국경을 맞대고 있었지만 문명의 근본 자체가 달랐던 나라다.
다낭은 또한 외부 세력의 출입문이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을 때 들어왔던 곳이 다낭이었고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들어온 곳도, 한국에서 파병한 청룡부대와 맹호부대가 도착한 곳도 바로 다낭이다. 이 모든 세력이 현대 베트남 역사에서 ‘적’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다낭은 베트남 역사의 일부지만, 다른 색깔을 지닐 수 밖에 없는 도시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무기의 그늘』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다낭과 그 인근이 지리적 배경이다. 전쟁에 대한 소설이지만 전투에 대한 묘사는 그리 많지 않다. 전쟁통의 혼란 속에서 미군의 군수물자가 어떻게 다낭의 지하경제로 흘러들어 가는지, 전쟁에서 보아야 할 것은 전선의 이동만이 아니라 돈의 이동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 물자와 돈이 다낭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관계와 문화를 조직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갑자기 다낭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다낭에 있기 때문이다. 뒤늦은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무기의 그늘』에서 전쟁물자를 보콴하는 창고들이 즐비하다고 묘사된 해변에는 리조트와 풀빌라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그 리조트 중 한 곳에서 라루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다낭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다낭 여행은 내가 지금까지 떠난 어떤 여행보다도 준비가 부족한 여행이었다. 모든 여행을 책으로 시작하는 나는 늘 여행 전에 책을 읽느라 바빴다. 그런데 베트남과 다낭에 관해서는 책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출간된 책들도 대부분은 베트남 전쟁에 관한 것이라 그 이외의 시기에 대해서는 살펴보기가 힘들었다. 특히 참파의 역사는 베트남의 공식 역사에서도 배제되어 그런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국내에 출간된 단행본이 딱 한 권 있는데 개략적으로라도 전체 그림을 보여주는 책은 아니었다.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같은 통사와 『무기의 그늘』같은 소설을 통해 다낭을 어림짐작 할 수 밖에 없었다.
유럽여행은 그렇지 않다. 파리와 로마, 피렌체 같은 곳에 대한 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루브르나 바티칸, 우피치 박물관 같은 곳의 소장품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한 도시를 수십 가지 각도에서 들여다 본 미시사 서적들이 도서관에 나란히 꽂혀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도 익명의 고수들이 올려놓은 정보가 현란하다.
내게 여행은 언제나 두 번이다. 책으로 한 번 떠나고 몸으로 한 번 떠난다. 직접 와 본 다낭은 너무나 매력적인 도시다. 풍광도 편의도 만족스럽지만 무엇보다 참파와 프랑스와 미국과 중국과 토착종교가 저마다 무시 못 할 지분을 가지고 공존하는 도시다. 나는 이 다채로운 다낭의 지층을 엿보고 싶다. 그 방법은 오로지 두 가지 뿐이다. 직접 상당한 시간을 살아보거나 책을 읽는 것이다. 잠시 떠나왔을 뿐 회사에 매인 몸인 나는 살아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오로지 책, 책, 책을 기대한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책이 많이 출간되길 바란다. 어려운 출판환경에서 쉽지는 않을 일이다. 그저 눌민 출판사 같은 곳들을 응원하고 존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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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