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계의 탄츠 테아터를 꿈꾸는 강은지
무용가 탐구 차수정 순헌무용단원, 극단목화 안무감독
무용공연은 아직까지도 가족잔치라는 느낌을 받아요. 또 관객들은 무용수의 움직임에 더 관심을 갖고 관람을 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반면 연극은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죠. 대중들과의 소통이 무용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2017.08.29)
5월 25일부터 6월 1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오태석 연출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무대에 올랐다. 1955년 초연 이후 계속 수정 보완되어 온 이 작품은 이번 공연에서 암전 없이 진행됐다. 또한 한국 전통 연희와 춤 무예 등이 가미되어 무용공연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무용 안무를 담당한 강은지를 춤과 사람들이 만났다.
원로 오태석 선생과 작업을 하신 분이기에 연륜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오태석 연출자와 인연이 되었나요?
2011년 박숙자 교수님의 추천으로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작품 한국춤 지도를 하면서 만났습니다. 연극도 잘 모르는 저에게 “선생님께서 무용과 연극의 구도 사용법, 동작의 배치법이 다른데 그런 감각이 있구나”라고 말씀하셨고, 2012년부터 극단목화 무용감독이 되어 지금까지 있습니다.
오태석 연출가가 한국 춤을 좋아하나요?
한국무용의 동작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전통 춤의 호흡과 한국적 소재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 듯 합니다. 극단의 작품을 처음 본 후 저는 한국 춤을 보고 나온듯한 감상을 받았거든요. 작품 <템페스트> 또한 선생의 손을 거치면서 토속적인 색채를 입어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았잖아요.
삼성무용단에서도 활동하셨다죠?
넉넉한 집안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비를 벌면서 무용을 배워야 했어요. 숙명여자대학교 재학 중 운좋게 무용단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어요. 삼성무용단이 해단을 하고 난 후 극단에서 무용을 가르치면서 연출적인 부분 등 무용 외의 다양한 시각에서 무대를 바라볼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있는 거죠. 연극과 무용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에서 일을 해 자신의 안무 작업에도 시야가 커질 것 같아요.
극의 구성과 전개 방법론을 몸으로 익히고 있어요. 주위에서는 서른이 넘었으면서도 왜 안무를 하지 않느냐 하는 분들도 계세요. 저는 지금 무대를 준비하는 시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어떤 것을 목격하나요?
오태석 선생님의 작품을 세 번 보면 세 번의 인상이 다 달라요. 공연 후에 세트를 바꾼다든지 공연 기간 중에도 수정 보완을 해요. 밤새 단원들이 세트를 조립하는 과정이 힘이 들지만 그들도 그래야 작품이 발전해 간다는 믿음을 가져요. 연출자의 작품에 대해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도 봐요. 연출자건 출연자건 그런 직업적인 의식/양심/열정을 목격해요. 배울만한 현장성이에요.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버전에 한국무용이 늘어났다고 들었습니다.
90년대 작품, 2001년 배정혜 선생이 무용 동작부분을 담당하면서 한국무용 부분을 강화시켰죠. 이번 공연 버전도 제가 올곧이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동안 한국무용 부분을 담당하셨던 선생님들의 색깔에 제가 조금 덧입힌 거죠. 이번에 소고춤, 잔치 신을 확장 시켰어요.
무용 부분을 넣을 때 연출가가 동작에 대해 자세히 요구를 하나요?
네. 예를 들면 이번 소고춤 신에서도 기존 소고춤은 지겨우니 다른 식으로 바꿔보자, 혹은 잔치 장면에서는 남성적 동작을 더 넣자는 식으로 디테일하게 요청 해요.
강은지의 멘토는 당연히 오태석 선생이겠죠? 제가 앞으로 안무를 하더라도 선생님의 영향이 클 것 같아요.
선생님은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한국적인 소재를 발굴하고 그것을 작품 안에 녹여내야 한다는 사상을 강하게 가지고 계세요. 항상 아이디어가 넘쳐나세요. 35세까지는 고생도 해 보고 이것저것 작품을 만들면서 부딪혀봐야 한다면서 당신은 35세에 멈추어 있다고 하세요. 80세를 바라보는 노 선생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순발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이동용 탁구대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운동을 하실 정도로 열정적이시죠. 그분의 삶과 작품관이 저의 좋은 롤 모델이 되고 있어요.
내년 강은지라는 이름을 내걸고 안무를 하신다고요.
한국춤협회의 소극장페스티발 공연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작품은 해학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아직 시간여유가 있지만, 어떤 작품을 구상중인가요?
연습중 오태석 선생님이 ‘어처구니 있는 배우가 되어 다시 하자’라는 말을 했어요. 그분은 ‘어처구니’라는 말씀을 잘 하시거든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라며 연기생들을 독려하시는 말씀이시죠. 또 힘들게 만들어낸 장면도 과감하게 삭제하기도 하세요. 저는 연극 안에서 무용안무를 맡아왔지만 순수무용으로 개인안무작을 많이 하지 못했어요. 그동안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진정 원하던 것을 잊고 살진 않았나? 난 도대체 무용계에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성격 자체가 예민하진 않는데 단지 개인 작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조급증이 고민으로 와 닿더라고요. 그러면서 <어처구니(가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슬럼프를 느끼나요? 그럴 땐 어떻게 이겨내나요?
열심히만 살면 된다며 살아왔는데... 제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게 나중에는 우울증처럼 오더라고요. 그래도 극단에 가서 배우들을 보면 밝은 에너지를 얻어 오곤 했어요. 연극계도 무용계만큼 어려운 환경이거든요. 의상, 세트 등을 직접 배우들이 만들어낼 정도이니까요. 손재주가 있다 보니 저도 도와주면서 나의 손재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작품활동만 하지 못한 것이지 그동안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이더라고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이력에 남을 만한 일은 아니지만 결코 내가 하는 일이 쓸데없는 짓은 아니다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무용 공연에서 간혹 연극전공자들이 연출자로 참여를 하는데요. 연출자가 필요한가요?
연출자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땐 안무자의 주제 설명을 명확하게 해야 해요. 안무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소신을 갖고 바른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울예전과 숙명여자대학을 졸업하셨죠?
네. 서울예전에서 박숙자교수에게서 춤을 배웠고. 2005년 정재만 선생에게 춤을 배우려 숙대에 편입했습니다.
작년 본지 주최 콩쿠르에도 출전, 금상을 받았던데요.
학생을 지도하고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으니 자신의 춤에 대해 남들의 평가를 즐겨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제 스스로가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전통춤이라는 것을 먼저 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공연을 통해 무대 경험도 쌓게 되었고요. 제가 작품을 받을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보니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무대에 서서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또 춤과사람들 콩쿠르는 나이제한도 없고 상명대학교 계당홀이라는 제법 큰 무대에서 주최를 하기 때문에 <태평무>로 출전해 금상을 받았습니다. 출전자 중 아마추어를 제외하고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던 것 같은데요. 무대경험으로 부족한 저에게 무대가 있다면 자존심을 내세울 일이 아니라고 봐요. 어디든지 달려가 춤 무대에 서고 싶어요.
좋아하는 전통춤은 <태평무>인가요?
타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2014년 정재만 류 <승무>를 이수했어요. 정재만 류는 이매방류보다 북가락이 더 간결하죠. <승무>는 절제미가 있고 호흡의 강약 조절을 잘 해야 하죠. <태평무>는 지금 차수정 교수에게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배우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수님의 발디딤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정재만선의 담백함에 차수정선생의 여성성이 잘 버무려져 절제미가 있죠. 정재만 교수님은 가르치실 때 초보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춤을 풀어주며 차수정 교수는 거기에 춤의 깊이 감을 더 해주죠. 그렇게 배워나가면서 제 춤이 더 탄탄해 지는걸 느끼겠어요.
송범 선생 10주기 공연에도 참여를 하셨는데요. 연극공연과 무용공연 관객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연령과 직업군이 일단 다릅니다. 무용공연은 아직까지도 가족잔치라는 느낌을 받아요. 또 관객들은 무용수의 움직임에 더 관심을 갖고 관람을 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반면 연극은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죠. 대중들과의 소통이 무용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의 경우 마케팅 방법도 다양한데요. 일반관객들이 많다 보니 공연 중 입소문을 통해 관람객들이 더욱 늘어나더라고요. 물론 연극은 대사가 있기 때문에 작품이 모호하지 않아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점이 있죠. 사람들은 무용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꼬집어 물어보기도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오태석연출자의 작품에는 해학적인 소재로 배우들은 무대에서 마이크도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음원 또한 전자음은 사용하지 않으며 관객과 배우가 똑같이 한 공간에서 느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접 배우들이 연주를 하죠. 그러다보니 관객들 또한 마음을 열고 작품을 관람하는 것 같아요. 모호한 작품으로 어렵게 풀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 관객과의 소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안무작은요?
페스티발 출품작이었어요. 2011년 17분품의 <풋 스토리>인데요. 하루라도 춤을 추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 춤 연습을 하는 저에게 발이 어쩌면 제 몸에서 가장 중요한 신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발에 대해 우린 얼마나 중요함을 알고 있을까를 삐에로 분장을 하고 재미있게 풀어냈고요. 2012년 경기도 예총 주최의 신인안무가전에 <품, 그 따듯한 기억>이라는 듀엣 작품으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야외공연무대에 펼쳐냈습니다.
첫 안무작에 대해 부끄럽다고 하셨는데요. 언제 안무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안무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제 창작안무로 2009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운 좋게 은상을 받고 나면서 몸 안에서 나오는 창작춤의 매력을 알게 되었죠. 그때는 두려움 없이 즐겁게 만들었기 때문에 안무에 대해 뭘 알지도 못하고 안무를 제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이후 삼성무용단원으로 작품에 출연을 하면서 좀 더 작품을 풀어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극단과의 작업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 한국적인 소재의 활용 등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무용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특별활동을 지도하시는 분이었어요. 호기심으로 무용반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죠. 6학년때는 교회에서 무료로 교습하는 한국무용 강습을 받았고요. 부모님이 반대를 하셔서 몰래 한국무용을 그곳에서 배웠죠. 지금 생각해보면 전 어려서부터 저를 꾸미고 거울을 보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국악중학교를 경험 삼아 시험을 치렀지만 당연히 낙방할 수밖에 없었죠. 이후 대학에는 장학금을 받아 입학을 할 것이니 제발 무용을 하게 해달라고 이야기를 했고 서울예전에 입학을 했습니다.
서울예전 입학을 한 이유는요?
내신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서울예대만 시험을 치루었고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어요. 대학에 들어왔는데 박숙자교수님이 이 학교만 졸업을 하기에는 아까우니 4년제 대학에 편입하자고 하셨죠. 그래서 1학년때부터 성적관리를 철저히 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무용을 천직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지요?
제대로 춤을 배운 것도 아닌데도 움직이는 게 너무 좋았어요. 공부로 제가 밤을 새면 병이 나요. 하지만 무용은 24시간을 해도 힘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춤을 추면 힘은 들지만 부상은 없었어요. 춤을 추면서 힐링을 하는 것 같아요.
주장하고 싶은 작품관이 있다면?
2012년부터 차수정순헌무용단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무용단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춤의 스타일을 무용단이 지향하기에 그곳에서의 활동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무용수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요?
제 춤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을 하죠. 춤을 쉴 때는 불안하기 때문에 연습실에 있는 시간이 행복해요. 또한 제가 모셨던 스승님들은 연습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던 분들이라 자연스럽게 저 또한 몸에 배어있는 것 같아요. 간혹 다른 일정으로 연습을 하지 못할 때면 제 반성과 더불어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이 있다면 내가 무용을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스스로에게 하게 됩니다. 항상 부모님은 저에게 많은 것을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시지만 전 제가 지금 무용을 할 수 있는 신체조건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저의 큰 꿈은 무엇일까? 제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싶네요. 일단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춤을 배우고자 하는 후학들을 위한 지도를 하고 싶어요. 또 작품적으로는 연극적인 요소와 춤이 중첩될 수 있는 창작 작업도 하고 싶고요. 그동안 제가 연극작업을 통해 배워온 부분들을 잘 적용을 해서 부족하겠지만 관객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 보고 싶습니다. 춤과 연극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연작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요즘은 생겨나고 있어요. 또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열정을 품은 강은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수연(yeonemail@gmail.com)
월간 <춤과사람들>은 무용계 이슈와 무용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전문잡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