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지 않는 뮤지컬, 춤으로 소통하다 - <댄스시어터 컨택트>
춤으로 표현하는 ‘만남과 소통’의 이야기
춤과 음악의 완벽한 호흡, 판타지, 섹시, 위트, 반전까지… 노래의 빈자리를 꽉 채웠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뮤지컬
<댄스시어터 컨택트>(이하 <컨택트>)는 노래하지 않는 뮤지컬이다. 이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무대 위의 배우들은 단 한 차례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뮤지컬 작품에서 노래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과 예술적 경험이 빠져있는 셈인데, 어딘가 허전해 보이기보다는 빈틈없이 꽉 차있다. ‘댄스시어터’라는 생소한 장르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춤’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재즈, 현대 무용, 발레, 자이브, 스윙 등 다양한 춤을 활용해 각기 다른 리듬과 감각을 형상화한다. 덕분에 <컨택트>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데 뮤지컬로 분류할 수 있느냐’는 논쟁 속에서도 2000년 토니어워즈 뮤지컬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1999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컨택트>는 이듬해에 브로드웨이 링컨센터로 무대를 옮긴 후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한국에는 2010년 트라이아웃 형식으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발레리나 김주원의 뮤지컬 데뷔작이자 그녀에게 신인여우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실험적인 장르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컨택트>는 ‘만남과 소통’을 소재로 하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오리지널 연출과 안무를 맡았던 수잔 스트로만은 이 작품이 ‘도시에 사는 바쁜 현대인들은 타인과 컨택트(접촉)할 시간이 없다’는 매우 보편적인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녀와 함께 <컨택트>를 완성시킨 극작가 존 와이드만 역시 관객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인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세 개의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타인과 접촉한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상대와 소통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때로는 그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 ‘그네타기’는 낭만주의 시대의 유럽을 배경으로 ‘색다른 접촉’ 안에서 유희를 찾는 귀족들의 모습을 섹슈얼하고 위트 있게 그려낸다. 두 번째 에피소드 ‘Did you move?(당신 움직였어?)’는 권위적인 남편과 접촉하지 못한 채 혼자만의 상상 속에 빠져드는 아내의 이야기를, 마지막 에피소드 ‘Contact(컨택트)’는 외로움 속에서 자살을 택하려던 남성이 우연히 이상형의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삶을 이어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흘만 허락되는 ‘짧지만 강렬한 접촉’
<컨택트>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춤’이다. 클래식,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과 완벽히 융화된 안무는 이 작품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발레에서 스윙까지 각자의 리듬과 온도를 가진 춤들은 그 자체로 다채로운 언어가 되어 하나의 예술과 열정으로 녹아 든다. 이를 위해 <컨택트>는 7년 전 국내 초연을 함께했던 발레리나 김주원, 토메 코즌 연출가를 포함해 새로운 춤꾼들과 의기투합했다.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기대 이상의 춤 실력을 보여줬던 배우 김규리,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 당시 유일한 한국인 배우로 참여했던 노지현 안무 감독, <댄싱 9>를 통해 타고난 춤꾼으로 인정받은 실력파 댄서 한선천이 합류했다. 특히 김주원과 함께 ‘노란 드레스 여인’ 역할에 캐스팅된 김규리는 세 번째 에피소드 ‘Contact(컨택트)’에서 매혹적인 환상 속의 여인을 연기한다. 두 사람과 호흡을 맞출 남자 주인공 ‘마이클 와일리’는 배우 배수빈이 연기한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춤과 음악의 완벽한 호흡, 판타지와 위트, 인상적인 반전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댄스시어터 컨택트>는 단 10일 동안만 상연된다. 짧지만 강렬한 접촉으로 기억될 만남을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오는 1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