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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불변의 법칙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를 출간하고 반 년 뒤, 사직서를 냈다
삶 속에 책이 자리한 지는 오래되었다. 순수한 독자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되었고 지금은 책을 파는 책방 주인이 되었지만, 언제나 책을 대하는 나의 기준은 ‘진심’이었다. (2017.08.18)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책처방 프로그램 신청서를 살펴보다가 가장 좋아하는 책 3권을 묻는 질문 아래에서 낯익은 책 제목을 발견했다.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 5년 전, 그러니까 지금처럼 책을 파는 책방 주인이 아니라 책을 만드는 편집자였던 시절에 내가 만든 책이었다. 스물셋 겨울, 대학을 졸업하고 바라던 편집자가 되어 서울로 상경했다. 출판사는 역삼역 근처에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목에 사원증을 건 사람들이 한 손에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바삐 걸어 다니는 동네였다. 그때까지 외국은커녕 포항을 벗어나 본 적도 없었던 내게 빽빽한 빌딩숲 테헤란로는 심정적으로 뉴욕의 타임스퀘어 같은 장소였다.
꿈을 이뤘다는 기쁨도 잠시, 해야 할 일은 늘 넘쳤고 사회 초년생인 나는 일머리가 없었기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했다. 게다가 한 번도 집을 벗어난 적 없이 고향에서 대학까지 나온 나에게 서울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였다. 쉬는 날이 되어도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차라리 회사에 나와 선배들과 일하는 게 좋았다. 매일 새벽 1,2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주말 출근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고단한 첫 사회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내 손으로 책을 만들며 느끼는 기쁨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블로거 노경원의 책을 만들 때의 기쁨은 특별하게 남아 있다.
어느 날 우연히 포털사이트 메인에 소개된 노경원의 영어 공부법을 보게 되었다. 1년 만에 외국어 영역 점수를 14점에서 91점으로 끌어올린 공부법이 화제가 되었고, 블로그에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노경원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과정이 꼼꼼히 담겨 있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월세 1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아야 하는 가난에도, 외국어 영역 ‘14점, 8등급’이라는 형편없는 성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면서 내 마음도 팔팔 끓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인터넷 즐겨찾기 맨 위에 노경원의 블로그를 추가해 놓고 마음이 게을러질 때마다 찬물 세수를 하듯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지켜본 노경원은 어둠이 무서워 그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초를 찾기 위해 스스로 일어서는 사람이었다. 그가 원하던 대학에 입학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하면서 편집자가 된다면 꼭 이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받은 건강한 자극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회사의 승낙이 떨어지고 저자와 계약까지 마치자 누구보다 이 책을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샘솟았다. 고작 경력 2년 차의 병아리 편집자였지만 블로그의 모든 내용을 줄줄 꿰고 있을 만큼 저자의 이야기를 좋아했기에 부족한 경력은 애정으로 채우면 된다고 믿었다. 책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갈 때쯤, 뒤표지에 들어갈 문구를 고민해야 했다. 보통은 책의 핵심 내용이나 유명인사의 추천사를 넣지만, 나처럼 저자의 글을 읽고 힘과 용기를 얻은 사람들의 사연을 추천사로 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블로그에서 ‘내 인생의 자극제, 노경원을 말하다’에 들어갈 사연을 모집했다. 누적 방문자 수 1,300만 명에 달하는 블로그답게 수험생부터 아이 셋을 둔 주부, 헬스 트레이너 등 다양한 사람의 각양각색 사연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이 블로그에서 얻은 것이 단순한 공부법이 아니라 꿈이자 목표이자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 블로그가 작은 위로와 격려를 주던 공간이자 더 큰 꿈을 그려도 좋다고 허락해 준 유일한 곳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노력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순도 높은 진심을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노경원의 글을 읽고 힘을 얻었듯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용기를 얻길 바랐다. 진심이 통한 걸까. 책은 출간되자마자 금세 1만 부를 찍었고, 2013년엔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순위보다 상보다 이 책을 읽은 독자의 리뷰가 큰 보람이었다.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면 온라인 서점과 블로그에 올라온 리뷰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만든 책이 누군가의 인생에 작은 씨앗이 되어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 행복했다. 한 권의 책이 가진 힘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다시 포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를 출간하고 반 년 뒤, 나는 사직서를 냈다. 책을 만들며 괴로워하는 날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적당히, 사고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책을 만들었다. 완성된 책을 받으면 이 책을 더 많은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죄책감이 먼저 들었다. 머리로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 관심 없는 분야의 책도 책임감 있게 만들어야 진짜 프로라고 생각했지만, ‘왜 내가 이 책을 만들어야 하는가’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를 만들면서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기쁨을 느꼈기에, 의욕도 진심도 없는 내 모습을 스스로 견딜 수 없었고 거기에 누적된 피로가 겹친 것도 결정에 한몫했다. 하지만 편집자로 보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책에 대한 나의 애정과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렇다면 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파는 일을 해 보는 건 어떨까? 내가 모든 책을 진심을 담아 만들 수는 없지만, 누군가 진심을 담아 만든 책을 밝은 눈으로 골라내어 독자의 손에 전달하는 일이라면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곰곰 생각해 보면 노경원의 책도 만드는 보람보다는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기쁨이 더 컸다. 나는 ‘메이커(maker)’보다는 ‘커넥터(connecter)’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고민 끝에 편집자에서 서점원으로 전업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오년 뒤 나를 책방 주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 삶 속에 책이 자리한 지는 오래되었다. 순수한 독자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되었고 지금은 책을 파는 책방 주인이 되었지만, 언제나 책을 대하는 나의 기준은 ‘진심’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책인가? 내가 진심으로 만들고 싶은 책인가? 내가 진심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인가?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불변의 법칙을, 5년 후에 다시 마주한 한 권의 책을 통해 깨닫는다.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 노경원 저 | 시드페이퍼(seed paper)
시험을 위한 공부,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가 아닌 인생을 바꾸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혼자 부딪쳐 가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저자의 기록이다.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 '사적인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의 만남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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