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전악- 장미의 잔상> , 한국· 서양 무용 해체와 조립을 실험하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안성수 안무 신작 <춤과사람들> 7월호 커버스토리
화려한 색과 잎으로 만개한 첫인상의 장미를 넘어, 누가 주목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꽃처럼 피우고 사라졌던 여인들을 춤으로 풀어낸 것이죠. (2017.07.28)
출처 : ⓒAiden Hwang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전통 악기 구성의 춤곡과 안성수 안무가의 섬세한 안무를 통해 제전(祭典)의 현대적 의미를 풀어낸다. 전사들이 땅을 수호하기 위해 전장으로 나가기 전 펼쳤던 의식 행위에서 모티브를 얻은 “전사들의 춤”을 비롯해 전통무용 “오고무”에서 추출된 소리와 움직임은 남녀 무용수들의 역동성과 대조를 이루며 음양의 조화를 보인다.
예술감독 부임 후 첫 신작 공연을 하시네요. 안성수 안무자 하면 ‘장미’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2009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제전>을 모티브로 한 작품 <장미>가 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서 저와 장미가 연관이 깊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전악- 장미의 잔상>은 어떤 작품인가요?
2009년 <장미>와 2016년 <혼합>의 확장으로 한국 춤과 서양무용의 해체와 조립을 실험한 작품입니다. 라예송 씨를 만나 봄의 제전을 국악기로 연주해 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악기가 구사할 수 있는 음악적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서양곡을 국악기로 그대로 옮기는데 작품 컨셉과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제전’을 모티브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면서 ‘장미’를 주제로 ‘여성’이라는 단어가 곧 제 안무관이라고 작곡자는 이해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미꽃이 아니라 장미라고 불렸던 과거의 모든 꽃과 여성을 겹쳐보며 화려한 색과 잎으로 만개한 첫인상의 장미를 넘어, 누가 주목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꽃처럼 피우고 사라졌던 여인들을 춤으로 풀어낸 것이죠.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어쩌면 라예송이 <장미>라는 작품으로 작곡을 시작했고 그 향기를 상상하고 그들의 느낌을 음악에 담았으니 탄생한 제목이 아닐까요.
이 작품을 하게 된 동기는?
2016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이슬람과 스페인 문화의 혼합을 목격하면서부터였습니다. 두 문화가 만나 혼재되어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재탄생한 것에 감탄하며, 멀리 유럽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고대 한국과 서구 문화와의 혼합, 그리고 먼 옛날, 사람이 자연과 만났을 때 발생한 혼합, 과거와 현재의 혼합 등 역사와 문화 속에 숨어 있는 다각도의 ‘혼합’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스페인 플라멩코 음악을 비롯한 뉴질랜드 마우리족의 ‘하카’처럼 남자들이 땅을 수호하기 위해 전장에 나가기 전에 췄던 전사의 춤 등 인간의 역사와 문화 속 다양한 혼합의 요소들이 모티브가 되어 먼 과거로부터 먼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죽은 이를 위한 제사가 아닌,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서 제전을 선보이며 자연과 인간, 남자와 여자, 춤과 음악이 함께 하는 인간사 희로애락을 작품화 했습니다.
출처 : ⓒAiden Hwang
어떤 무용수들이 함께 하나요?
그동안 제 작업의 출연자들은 한국무용 혹은 발레, 방송댄스를 추었던 무용수들이었어요. 현대무용 전공자를 꺼려했던 것은 그들의 춤이 너무 외향적이기 때문에 내 작품의 색이 잘 묻어 나질 않더라고요. 이번에는 오디션을 통해 현대 무용 전공자들이 많이 출연을 하는데요. 그동안 제가 현대무용수들을 바라볼 때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6개월 작업을 하면서 보지 못한 부분들을 저 또한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작업 하고 있습니다.
선발한 무용수 중에는 발레 전공자가 많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약간 오류가 있는 정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무용원에서 발레전공자와 현대무용 전공자들에게 제 방식대로 수업을 진행하면 두 장르의 무용수들 다 힘들어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기교적인 움직임을 요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음악을 쪼개어 그것을 이용한 동작과 제스처를 리듬에 실어 연습을 시켜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지만 발레를 전공하거나 현대무용을 전공한 무용수들은 본인들이 해 온 동작임을 나중에 느끼더라고요. 춤을 위한 테크닉에 익숙하다 보니 제가 지도하는 방식의 춤을 어려워하는데 전 이 테크닉을 Natural Ballet 라고 합니다.
Natural Ballet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이번 작업 초반 무용수들의 부상을 잦았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안무자의 욕심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상을 입는 경우가 있어요. 제 작품에 익숙지 않은 무용수 들이 초창기에는 부상을 입긴 하였으나 지금은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한국무용 전공의 이주희 씨가 이번에는 연습 감독으로 참여를 했더군요. 스승과 제자간 인 연이 참 오래 지속되는 좋은 현상입니다.
제자라기보다는 오래 함께 한, 공동 작업자라고 생각합니다. 전 한국무용을 제대로 배워보질 않아 그 친구에게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면서 함께 풀어나갑니다. 제 작품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죠. 제가 몇해전부터 <태평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안성수 픽업그룹에서 한국무용수 3명을 더 충원했습니다.
지난 3월 국립현대무용단이 <혼합>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춘앵무>를 해체하기도 하셨죠? 이번에는 어떤 전통무를 해체하시나요?
<오고무>에서 모티브를 따와 새로운 장단을 새롭게 사용하고 북가락을 변형한 춤동작과 호흡을 넣어 다이내믹하게 만들었습니다.
출처 : ⓒAiden Hwang
7월 공연을 올리고 같은 작품으로 순회공연을 하신다고요?
초연 이후 8월 홍성 홍주, 9월 함양과 계룡, 10 월 천안 등의 지역문예회관 공연과 콜롬비아 3 개 도시(깔리댄스비엔날레, 메데진 메트로폴리 탄극장, 보고타 마요르 극장/ 11월)초청공연은 확정되었습니다.
6월 쓰리볼레로 공연기간 중 ‘팝업 스테이지’ 에서 중간 휴식시간에 ‘깜짝 예고편’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일간지에 기사화되기도 했어요.
공연 홍보를 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공연 관람객들에 예고편처럼 다음 작품에 대한 안내를 해 준다면 관심을 갖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팝업 스테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쓰리 볼레로>를 공연하기 전 이런 홍보를 통해 매진이라는 목표치를 달성했기에 이번에 또 한번 시도를 했습니다.
안성수 안무자의 작품을 보면 군더더기 없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네.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만 제 성격이 워낙 재미없는 사람이라... 제 작품 스타일이 성향과 예술관이 그렇기 때문에 바뀌지가 않네요.
8월 중순에도 다음 시즌 작품 오디션이 있죠?
네. 많이 참가를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상반기 때도 200여명이 오디션 참가를 희망했으나 막상 오디션 장에는 많이 참여하지 못했어요. 당시 20명 정도를 뽑고 싶었으나 12명을 선발했고요. 무용원 중심으로만 무용수를 뽑는다는 오해가 있는데요. 타 학교 출신들이 현대 무용단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공연을 보러 다니면 좋은 무용수들이 많은 데요. 많은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현대무용단 오디션에 참여를 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공연 어떻게 봐 주실 희망하나요?
관객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죠. 볼거리도 많고 귀가 즐겁기 때문에 지루하진 않을 것입니다.
공연개요
제목 : 제전악-장미의 잔상
일시 : 7월 28-30일
장소 :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관련태그: 한국무용, 서양무용, 제전악, 예술감독 안성수
월간 <춤과사람들>은 무용계 이슈와 무용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전문잡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