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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내려진 마지막 임무 -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객석에서
웹툰처럼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도 없고, 김수현을 대적할 스타배우도 없지만 뮤지컬은 초연에 이어 재연 무대까지 그야말로 ‘은밀하고 위대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비결이 뭘까? (2017.07.26)
웹툰계의 대작이며 2013년 영화, 2016년에는 뮤지컬로 만들어진 <은밀하게 위대하게>. 어려운 처지에 놓인 10대 소년들을 데려다 혁명괴물로 키워내는 북한 5446부대의 최고 엘리트 요원 원류환, 공화국 최고위층 간부의 아들이자 실력자 리해랑, 공화국 사상 최연소 간첩 리해진은 조국통일이라는 원대한 사명을 안고 남파된다. 하지만 이들이 맡은 임무는 어처구니없게도 달동네 바보(동구), 가수지망생, 고등학생. 특별한 지령도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그렇게 남한의 일상에 익숙해져 가는 그들에게 마지막 임무가 내려진다.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재연에 돌입했다. 웹툰처럼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도 없고, 김수현을 대적할 스타배우도 없지만 뮤지컬은 초연에 이어 재연 무대까지 그야말로 ‘은밀하고 위대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비결이 뭘까?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관람하며 생각했던, 또는 관객들이 나눴을 법한 얘기들로 각색해 보았다.
1층 K열 9번 : 최근 몇 년간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건 웹툰인 것 같아. 드라마, 영화를 넘어 무대에서도 인기가 대단하잖아. 뮤지컬 쪽에서는 강도하 작가의 <위대한 캣츠비>가 확실하게 물꼬를 텄다면 재작년 초연된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가 정점을 찍었고, 올해는 김풍, 심윤수 작가의 <찌질의 역사>가 새로운 열풍을 일으키더군.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그 대열에 합류했고.
1층 K열 10번 : 웹툰이라는 콘텐츠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해. 책이나 영화도 작품이 좋으면 입소문이 나고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솔직히 판매 부수나 관객 수는 만족 여부를 떠나 일단 사고, 또 보면 수치화가 되는 거잖아. 하지만 웹툰은 회마다 독자들의 반응이 확실하니까 결국 정말 재밌는 작품이 주목을 받게 되지.
1층 K열 9번 : 그리고 뮤지컬로 만들어진 책이나 영화는 사실 외국 작품이 많잖아. 하지만 웹툰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고 주요 독자층도 20~30대니까, 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무대로 옮겼을 때 효과도 확실한 것 같아.
1층 K열 10번 : 관건은 상징적인 그림과 글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해내느냐 하는 것이겠지. 웹툰이니까 담아낼 수 있는 것들, 웹툰이라는 매체만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이 있잖아. 게다가 무대는 제약도 많고.
1층 K열 9번 : 그 문제를 잘 해결해서 요즘 웹툰 원작의 뮤지컬들이 인기라고 생각해. <은밀하게 위대하게>만 봐도 웹툰이나 영화, 뮤지컬이 크게 다르지 않잖아. 원작을 각 장르에 맞게 잘 살렸다고.
1층 K열 10번 : 맞아, 원작을 잘 살리면서도 각 장르의 장점을 극대화한 게 중요하지. 원류환의 바보 연기를 웹툰만큼 살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연기로 구현해냈잖아. 동구의 바보스러운 행동 뒤에 최정예 엘리트 요원 원류환의 독백이 배우의 육성으로 더해지니까 더 실감나더라고.
1층 K열 9번 : 무대는 제약이 많지만 대신 대놓고 속아주는 관객들이 있으니까 그 제약을 무대적인 상상력으로 얼마나 재치 있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어. 예를 들어 뮤지컬에서는 한 명의 배우가 슈퍼 아주머니 전순임에서 섹시한 란으로 돌변하는가 하면 동구가 동분서주 배달을 다니는 모습은 똑같은 초록색 추리닝에 가발을 쓴 여러 명의 배우가 뛰어다니는 것으로 표현하잖아.
1층 K열 10번 : 뮤지컬의 엄청난 무기, 노래와 춤으로 감정을 극대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 주요 장면과 함께 넘버가 귀에 맴돌게 되니까. 그런 차원에서 5446부대의 군무는 좀 아쉬웠어. 웹툰과 영화에서 유감없이 뽐낸 최정예 부대의 날렵하고 숙달된 액션을 칼군무로 멋지게 대신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1층 K열 9번 : 그러게, 어느 뮤지컬이나 군무는 항상 아쉬운 것 같아. 어쨌든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소극장에 참 잘 맞는 콘텐츠이지 않아? 최정예 남파공작원이라는 엄청난 인물들을 동네 바보, 오디션마다 탈락하는 가수 지망생, 풋풋한 고등학생으로 살게 하면서 코믹함을 살리고, 그런 소소한 일상에 젖어 자연스레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주제 의식까지 전달하잖아.
1층 K열 10번 : 맞아. 남북 분단이라는 엄청난 장치를 사용했지만 결국 가족과 평범함의 소중함을 드러낸 작품이야.
1층 K열 9번 : 원작 웹툰의 인기도 대단했지만, 영화에서 원류환이 김수현이었던 만큼 부담도 컸을 텐데, 사실 이번 무대는 이렇다 할 스타배우 없이도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무대와 관객의 힘으로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지 않았나 싶어.
1층 K열 10번 : 김수현을 걷어내도, 아니 스타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지. 연기도 좋았어. 이용규 배우의 동구는 웹툰, 영화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고.
1층 K열 9번 : <빨래>에서도 확실히 드러났지만 김국희 씨의 할머니 연기는 독보적이지 않아? 그 대사처리는 연기가 아니라 생활인 것 같아(웃음). 그리고 김태원을 연기한 김수용 씨의 카리스마도 돋보였어. 예전에는 바른 청년만 연기하더니 뮤지컬 <페스트>, <은밀하게 위대하게>, <광염 소나타>, <나폴레옹>까지 굉장히 센 캐릭터를 연기하네.
1층 K열 10번 : <햄릿> 때부터 광기어린 연기를 선보이긴 했지. 이제는 다시 선한 캐릭터로 변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웃음). 그런가 하면 모든 인물이 코믹함과 함께 눈물을 자아낼 수 있게 만든 장치도 훌륭한 것 같아. ‘평범한 나라의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태어나고 싶다’는 원류환과 그 말을 듣고 ‘꿈이 너무 큰 거 아니냐’고 되묻는 리해진, 전순임에게 엄마의 정을 느끼는 동구도 그렇지만 동구를 자식처럼 생각하며 간첩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도 기다리는 전순임의 모습도 무척 찡하잖아.
1층 K열 9번 : 마지막 순간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은 리해랑의 모습도 인상적이고. 분단이라는 큰 틀에서 남파특수공작원, 간첩 등 무시무시한 타이틀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 안에서 곪아 터져 나온 것들을 다룬 작품이라고 봐야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일 테고.
1층 K열 10번 : 어쨌든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웹툰, 영화, 뮤지컬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돼. 그만큼 원작과 차이가 없다는 말인데, 물론 장르의 특수성에 맞춰 같은 장면이 어떻게 변주되느냐에 따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 그런 차원에서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역시 무대만의 매력을 잘 녹여낸 것 같아. 객석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고!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