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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호크의 웃음을 세어보아요
영화 <내 사랑>
왜 나는 에단 호크의 웃음에 집착하는가. 모드는 타고나기를 예술적이고 긍정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그녀는 처음 본 동물, 개와 닭에게도 말을 건다. 아이들에겐 먼저 웃음을 건넨다. (2017.07.27)
영화 <내 사랑>의 한 장면
에단 호크가 몇 번 웃는지 꼭 세어보고 싶었다. <내 사랑>을 두 번째로 보면서 별렀다. 처음 보았을 때 아름다운 자연에 녹아든 두 사람, 샐리 호킨스가 연기하는 모드와 에단 호크가 연기하는 에버렛의 눈빛을 살피느라 채 보지 못했던 웃음. 에버렛, 그러니까 나에겐 그냥 배우 에단 호크로 느껴지는 사람의 웃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문맹이고 무뚝뚝하고 거친 생선 장수 에버렛의 외딴 집에 가정부로 들어온 모드. 둘 다 절박한 사정으로 시작한 동거였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에버렛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모드가 낡은 벽에 그리는 그림에 조금씩 동화되며 ‘츤데레’ 남자로 변해간다. 쉽게 표현하지 않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챙겨주는 남자로. 그리고 결혼.
영화 <내 사랑>은 실화다. 원제는 <모드 Maudie>. 관절염으로 몸이 굳어가는 불구지만,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스스로 예술적 재능을 꽃피워 강렬하고 사랑스러운 터치의 그림으로 유명해진 화가 ‘모드’의 이야기다.
“우리는 낡은 양말 한 켤레 같아요.” “늘어지고 구멍이 많이 난 양말?” “아니 하얀 면양말” “그렇다면 당신은 푸른색이거나 카나리아 노랑색이겠네.” 결혼 첫날밤 늘 살던 바로 그 외딴 집 낡은 침대 옆에서 안고 춤추며 나누는 대화다. 이제 부부가 된 남편 에버렛이 아내 모드에게 ‘블루 아니면 카나리아 옐로’의 느낌을 고백하는 것이다. 밝고 화사한 색상. 자신의 어둡고 답답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은 모드에게 사랑 고백을 한 셈이다. 실상 그때까지도 그들의 삶은 정말이지 낡은 양말 같았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두 사람은 어떤 필요 때문에 동거하고 또 어떤 기운에 휩싸여 결혼에 이르렀지만 산뜻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음울한 생활. 그 결혼식 날 나는 에단 호크(에버렛이지만 자꾸 배우 이름을 부르고 싶은 마음은 뭔가)의 웃음을 발견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짐수레에 아내 모드를 태우고 집으로 달려가는 길. 남편 에버렛은 아내의 밝은 수다에 씨익 웃었다.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느꼈다. 오, 한 번. 그의 웃음을 손가락으로 꼽았다.
왜 나는 에단 호크의 웃음에 집착하는가. 모드는 타고나기를 예술적이고 긍정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그녀는 처음 본 동물, 개와 닭에게도 말을 건다. 아이들에겐 먼저 웃음을 건넨다. 요리를 위해 닭을 직접 잡아 죽이기 전까지도 그 닭을 달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 않다. 그에 반해 에버렛은 침울하고 자격지심으로 거칠기 짝이 없다. 점점 자신의 삶에 스며드는 모드에게 집주인, 사장 노릇을 드러내놓고 하려 한다. 눈빛으로는 새로운 세계에 설레고 놀라면서도. 그런 에버렛이 언제 마음을 풀어놓고 웃는지, 사람이 어떤 순간에 감화된 정서를 표현하는지 느끼고 싶었다.
영화 <내 사랑>의 한 장면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건 또 한 사람 산드라 덕분이다. 뉴요커인 그녀가 캐나다 작은 마을에 몇 개월 휴식 차 머물면서 에버렛의 생선 배달 문제를 항의하러 왔다가 모드와 만난다. 문 틈으로 본, 벽에 그려진 모드의 닭 그림을 척 알아보고 묻는다. “당신이 그린 거예요?” 모드의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다. 산드라는 모드가 문맹인 에버렛을 위해 만든 생선 거래명세표에 해당하는 엽서 그림을 사들이고 일부러 찾아와 큰 그림도 사겠다고 제안한다.
그림을 알아본 눈. 산드라의 안목 때문에 모드 부부는 신문에 실리고 방송에도 나가게 되며, 이 작은 마을은 그림을 사려는 사람들로 법석인다.
에버렛과 심한 언쟁을 한 후 산드라네 집을 찾아 외박한 날, 모드는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준 산드라에게 말한다. “난 붓 하나면 돼요. 창문을 봐요. 내 인생은 이미 이 액자(창문) 속에 다 들어 있어요.” 예술가의 시선이 곧 작품이라는 그림론이 소박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산드라네로 숨은 모드를 찾아온 에버렛은 잘못을 뉘우친 목소리로 ‘날 떠나지 마’라는데 모드는 더 따뜻한 목소리로 ‘함께하면 좋은데 왜 떠나느냐’고 화답한다. 그러곤 곧장 하늘을 가리키며 “저 구름 좀 봐. 엉덩이가 큰 여자 같아”라고 웃음 짓자 에버렛은 정말이지 하늘을 보며 입꼬리를 선명하게 올리며 웃는 것이다. 그를 웃게 만든 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건 모드. 정말 내 사랑인 것.
나는 115분 동안 두 번 에단 호크의 웃음을 보았다. 더 본 사람 있으신지? 있다면 그 눈을 사겠다. 산드라가 모드의 그림값을 부르는 것보다 후하게 치르듯 비싸게 값을 치르겠다. 연락 바람,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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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