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을 딛고, 좀 더 나아가보고 싶다
반성이 삶으로 이어졌을 때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지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순간 조차도 스스로를 되돌아 보아야 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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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치는 일기 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반성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며, 반성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은 반성을 빌미 삼아 더욱 더 나쁜 짓을 하게 된다고, 구동치는 생각했다.
- 김중혁,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중에서
얼마 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몇 년 지난 일이나 생각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다. 흐려진 기억들 사이에 점점이 박힌 선명한 기억 알갱이들은 대부분 글로 남긴 것이었다. 더 많은 것들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써야지,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것은 김중혁의 소설 속 문장이었다. 확실히 일기를 쓰다 보면 반성을 하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쓰다가 문득 내 생활과의 간극을 들여다보게 되고, 부끄러워진다. 그렇다고 쓰던 일기를 지우진 않는다. 부끄러움과 별개로 그 간극을 인식하고 있는 나 자신은 썩 괜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반성을 빌미 삼아 더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것까진 모르겠지만 반성하는 순간 '적어도 반성할 줄은 아는 자신'에게 뿌듯하기 쉽다. 그리고 그 뿌듯함은 ‘반성이 삶에 합당하게 남겨야 할 어떤 자국’을 부당하게 지워낼 수 있다는 점에서 김중혁의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는 스스로 되돌아보는 순간조차도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한달까.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이는 자신에게 도취해 있을 때, 반성은 삶으로 이어질 기회를 잃는다.
올해 출간된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착한 일을 한 번 한 사람들은 이후에 선행을 덜 실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굳이 선행을 더 지속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이야기다.
윤리적 소비 물결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한 까닭이 있다.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허가moral licensing’ 효과 때문이다. 이는 착한 일을 한 번 하고 나면 이후에 선행을 덜 실천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는 경향을 말한다. 도덕적 허가 효과는 사람들이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것,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 준다.
- 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자』 중에서
그야말로 내 이야기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가득한데, 착한 행동을 더 길고 깊게 이어가지는 못한다. 어느 단체에 후원하고선 홀로 뿌듯해하다가, 그 후원의 심리효과가 떨어질 즈음이면 반성의 일기를 쓰고 또 어느 곳에 후원을 하든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일’ 글을 한 편 쓴다. 그럼 또 뿌듯하다. 이런 순환 속에서 나의 반성과 선행은 파편적으로만, 자기만족의 도구로만 남는다.
그러다 올해 만난 책이 프레드 울만의 소설 『동급생』이다. 나치가 힘을 얻어가던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한스)와 독일 귀족 소년(콘라딘)의 우정 이야기인데, 마지막 한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이 너무나 멋져서,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살면 나도 이렇게 멋져 보이겠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착해 보이길 원하는 사람에게, ‘멋져 보이겠구나’라는 생각은 확실히 동기부여가 된다.
화가 출신인 작가는 소년들의 행복한 나날을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리고 있다. 벚꽃과 사과꽃, 배꽃과 복숭아꽃이 온 천지에 흐드러지고, 미루나무는 그 나름의 은빛을, 버드나무들은 그 나름의 담황색을 뽐낸다. 완만하고 평온하고 푸르른 언덕들은 포도밭과 과수원들로 덮이고 중세의 성채들은 마치 왕관같이 서 있다. 강은 버드나무가 심어진 섬들을 돌아 유유히 흐른다. 소년들은 머뭇머뭇 하며 손을 잡고, 젊은 두 연인처럼 한 시간씩 길을 오르내리고, 횔덜린의 시를 낭송하며, 신의 존재와 예술, 인생의 가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소년들의 우정은 향긋하고 상큼하다.
이 아름다운 우정은 한편으론 팽팽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너무 잘 알려진 역사라 그렇다. 나치가 부흥하던 시절, 유대인 소년과 독일 소년의 우정을 해피엔딩으로 예상하기는 힘들다. 예쁘고 설레는 장면 사이 사이로 불안한 정치적 상황이 드문드문 언급되며 역시나 마음을 졸여온다. 마침내 유대인을 뿌리 뽑으려는 길고 잔인한 과정이 본격화되면서 한스 앞엔 유대인의 길이, 콘라딘 앞엔 독일인의 길이 놓인다. 한스의 절친이긴 하지만, 그래서 한스에게 적대적이진 않지만, 콘라딘 역시 히틀러를 지지한다.
내가 감동을 받은 마지막 한 문장은, 이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의 장면이다. 콘라딘의 생애에 관한 단 한 줄의 정보다. 단 한 줄을 제외한 모든 것을 생략함으로써, 쓰이지 않은 콘라딘의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독자가 상상하는 콘라딘의 모습은 자신의 선택을 반성하고 있고, 반성을 삶으로 이으려 하고, 그 모든 순간에서 한스를 떠올렸을 콘라딘의 절실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하게 턱 나오는 이 마지막 문장에 놀라 멍하니 있다가, 한달음에 들이닥친 감동과 깨달음과 여운을 한 동안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을 나는 일기로 잘 기록해두고 있다. 반성이 자기만족이 아니라 삶으로 제대로 이어졌을 때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지 나는 이 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책을 아직 알지 못한다. 나는 이 책을 딛고 좀 더 나아가 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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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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