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아프니까 엄마 생각

엄마도 이렇게 아플 때면 외로웠겠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온 세상 비관 모드는 혼자 다 누리는 내가 이럴 때 보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러는 지 가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12화 그림.jpg

 

그 날은 주짱이 이사 하는 날이었다.  주짱은 영화 <비밀은 없다>를 촬영했다.  같은 동네 주민으로 어울려 지내며 정이 들어서 그런지 좀 섭섭했다.  이사 가지 말라고 내가 너무 떼를 썼는지 주짱은 도망치듯 새 집을 구했다.  이사도 도울 겸 새 집도 궁금해서 쭐레쭐레 구경을 나갔다.  ‘일단 새 동네는 깨끗한데 대중교통이 불편하군.  차가 없는 나로서는 이 동네가 좀 어렵겠는걸’ 주짱 팀이 식사를 마치고 끽연을 나간 사이 도착한 나는 그들이 남긴 탕수육과 짜장면을 게걸스럽게 퍼먹으며 생각했다.  ‘음... 이 동네 중국집은...그다지 새롭지 않군.’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고 개발 지역이라 창문 밖 시야가 탁 트였다.  ‘동네가 이런 식이면 나는 무서워서 못 사는데’ 까다롭게 별점을 매긴 뒤 자, 어디 한번 나도 일을 좀 해볼까나.  절대 무겁지 않은 대걸레 통을 드는데 오른 손목을 삐끗했다.  그게 4개월 전인데 통 낫질 않는다.  손목 근육 염증이란다. 

 

재작년에 오른 쪽 사랑니를 뽑았다.  처음에 담당 의사는 발치 수술을 거부했다.  사랑니가 매우 이상한 자세로 잇몸 속에 누워있어서 어렵다고 그랬다.  그래도 고집을 부려 그 의사에게 수술을 부탁한 이유는 7년 단골을 못 믿으면 어디서 또 누굴 어떻게 만나 처음부터 다시 믿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발치 수술 뒤 1년 반이 지나도 경미한 통증이 계속 되는 것이었다.  괜히 어색한 대화가 오가는 게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하도 오랫동안 왼쪽 이빨로 음식을 씹었더니 왼쪽 턱 근육만 비대칭으로 발달하기에 결국 다시 찾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만 빨리 찾아갈걸.  나는 결국 비대칭 턱 선과 어금니 신경 염증을 얻었다.

 

지난 주간,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무사히 치르기 위해 나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KF 94 방역용 마스크도 구비하고 3일치 먹거리 장을 봐둔 뒤 미세먼지 공격 전야부터 일체 외출을 금했다.  세 가지 종류의 미세먼지 앱을 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치를 체크를 해서 온 주변 지인들에게 업데이트를 해주었다.  온 세상 비관 모드는 혼자 다 누리는 내가 이럴 때 보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러는 지 가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뭐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게 어떤 의미이든 상관없이 좀 비정상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까딱 잘못하면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좀 무섭다.

 

아무튼 내가 하도 두문불출하니 결국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 했는데 그 날은 3차 미세먼지 대 공격 전야였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좀 들뜬 기분에 친구가 담배 한 대 피운다며 복도로 나가는 걸 쭐레쭐레 따라 나갔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노력으로 살아왔는데 하필이면 그 날, 그 미세먼지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는 그 위험천만한 시각에 친구의 담배 연기를 온 입으로 같이 들이마시며 낭만을 즐기고 만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목이 콱 잠기더니 가래가 끓고 기침이 심해져 병원에 갔다.  호흡기 염증이란다. 

 

이 모든 염증이 한 주간에 벌어진 일이다. 썩어간다는 게 이런 걸까. 침대에 누워 폐병환자처럼 기침을 내뱉으며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도 이렇게 아플 때면 외로웠겠지. 

 

잔병치레가 많은 엄마는 아프면 불편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셔서 그런지 야매 민간요법에도 좀 빠삭하시다. 엄마 덕분에 내가 요상한 곳을 좀 다녀봤는데 그 중 하나만 잠시 소개하자면 야탑동 어느 오피스텔에 자리한 야매 침술원이 있다.  그곳은 무허가 비밀장소다. 아는 사람들끼리 현관문 비밀번호를 공유한다. 복도까진 여느 오피스텔 공간과 똑같지만 일단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거실 한 구석엔 맥을 짚는 여인이 있고 얼굴과 두피를 비롯한 신체 곳곳에 침을 꽂은 중년의 여성들이 마치 영화 <헬레이저>의 '핀헤드' 모양으로 바글바글 바닥에 앉아서 라면도 끓여먹고 화투도 치며 여러 가지 볼 일을 본다.  거기서 빈티지 옷을 파는 여자도 봤다.  깊은 신뢰를 가지고 형성된 커뮤니티라는 사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녀는 내 맥을 짚더니 “심장이 남자네!”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어머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는데 그때는 마치 내 심장이 남자인 줄 나만 몰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여인은 그때부터 막 아무데나 내 여기저기에 침을 꽂기 시작했고 그러면 막 피도 나고 멍도 들고 그랬다.  그래도 얼굴을 팽팽하게 만들어주고 신체나이를 젊게 만들어준다는데 좀 참을성 있게 다녀볼까 생각을 1분 했지만 자꾸 피가 질질 흐르는 게 좀 그래서 그만 뒀다.   

 

쓰다 보니 우리 엄마가 좀 무식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된다.  우리 엄마는... 절대 아니다.

 

아무튼,
엄마는 나의 손목 염증이 맘에 걸리셨는지 이번엔 상도동 성당으로 날 데리고 가셨다.  거기 가면 땅의 수맥을 짚듯이 신체의 맥을 짚어주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분이 짚어주는 맥을 따라 몸에 스티커를 붙이면 그게 그렇게 효과 있단다.  최근 엄마의 아킬레스건 염증과 허리 통증도 이 덕분에 좀 좋아지셨다니 나도 그 곳을 찾아갔다.  그 분은 나를 보자마자 내 정수리에 손을 얹더니 “침대 밑에 수맥이 흐르는구먼!“  아니, 내 침대는 경기도 화정동에 있고 내 머리는 지금 서울 상도동에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어머나, 세상에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화들짝 되물었고 ”좀 있으면 왼쪽 어깨가 아플 거야...“ 라고 그는 중얼거리며 ‘꽃게랑’ 과자처럼 생긴 스티커를 막 내 몸 여기 저기 붙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엄마의 아킬레스건 주변과 허리, 배 일대에 붙어있던 바로 그 ‘꽃게랑’ 스티커다.

 

‘꽃게랑’ 스티커 하나에는 여섯 개의 구멍이 있다.  그 스티커 구멍마다 매직으로 색칠하고 스티커가 떨어지면 표시된 자리에 맞춰 다시 붙여야 된다.  ‘꽃게랑’ 스티커는 6개에 만원이지만 앞으로 성당 좀 열심히 다니라며 그냥 붙여주셨다.  그리고 수맥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고.  한번 수맥이 흐르는 집에 살던 사람은 이사 갈 때 꼭 수맥이 더 세게 흐르는 집으로 가더라. 그게 바닥에 동판 깔고 이사 간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도 아느냐. 그게 일본 칼인데 칼 알지?  칼!  이렇게 생긴 무시무시한 칼!  언제든지 나를 불러!  애초부터 수맥의 흐름을 바꿔줘야 해!  좀 맥락이 오락가락,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쓰다 보니 우리 엄마가 진짜 계속 무식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다.  절대 아닌데...

 

아무튼,
내 살에 붙은 ‘꽃게랑’ 스티커의 구멍은 총 360개다. 유성매직으로 내 몸에 360개의 구멍을 색칠하면서 나는 또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스티커 구멍마다 매직으로 색칠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가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경미(영화감독)

1973년생. 영화 <비밀은 없다>, <미쓰 홍당무> 등을 만들었다.

비밀은 없다 (1Disc)

7,700원(70% + 1%)

- Commentary by 감독 이경미, 손예진 - 독보적 스타일 / 강렬한 캐릭터 / 탄탄한 전개 2016년 가장 충격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 8년 만의 만남, 손예진의 파격 연기, 김주혁의 차가운 변신 뜨거운 열연과 강렬한 연기 호흡! - 딸을 포기할 수 없는 아내와 선거..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