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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틸먼, 말세의 단편들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Pure Comedy〉
아티스트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낳은 성의 비대칭, 종교의 허점, 자본주의의 해악, 개체 간의 반목, 사회 내의 혼란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세상은 그리 달갑게 다가오지도, 반갑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조시 틸먼의 눈에 들어오는 이 세계는 아직도 우스꽝스럽고 또 어리석다. 일상을 감싸고 있는 온갖 문화양식,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미래를 환하게 밝히는 과학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인간관계 속의 갈등과 반목, 이제는 인류가 문제로 마주하고 있는 자연환경에다, 언젠가 끔찍한 종언으로 마무리될 이 사바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요소들은 아티스트의 독백 속에서 의문과 결손, 냉소, 허무 그리고 비관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조시 틸먼의 언어는 차갑다. 75분의 러닝 타임을 빼곡히 장식하는 다채로운 어휘와 알레고리와 단상은 표현의 미를 풍성하게 끌어낸다기보다는, 아티스트의 차디찬 고찰을 더욱 구체화하고 심화한다는 데에 제 존재가치를 두는 듯하다.
작품의 막을 올리는 「Pure comedy」에 조시 틸먼의 냉혹한 코미디가 집약돼 있다. 콘셉트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는 <Pure Comedy>의 주제는 이 지점에서 한 차례 완성된다. 아티스트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낳은 성의 비대칭, 종교의 허점, 자본주의의 해악, 개체 간의 반목, 사회 내의 혼란을 이 한 곡에서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생존에 갈급해 하던 인류가 통시의 도처에 뿌린 산물이 다시 인류의 생존을 갉아먹는 모순의 관계, 그 사이를 비유 섞인 조롱과 해학이 비집고 들어간다. 「Pure Comedy」가 시대를 향한 해석의 개괄을 담당한다면, 뒤이어 등장하는 트랙들은 개개의 막으로서 말세의 단편들을 세밀하게 투사한다.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기술이 가져다 줄 완벽한 허상을 헤집고 다니는 「Total entertainment forever」, 한 번의 날숨만을 남긴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뉴스피드를 업데이트 하고자 하는 「Ballad of dying man」, 자본주의의 욕망에 물들어 여러 문화 비즈니스를 탐하는 「The memo」와 같은 사소한 장면들에도, 심지어는 지금을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향한 「Leaving LA」에도 아티스트의 조소가 녹아있다.
심지어 날카로운 시선은 미래를 극단으로 보내길 꺼리질 않는다. 「In twenty years or so」에서 인류의 과학이 비참한 최후를 향해 간다고 말하는 조시 틸먼은 이에 앞선 「Things it would have been helpful to know before the revolution」에서는 오늘날의 시스템을 기어이 끌어내리고서 수렵과 채집의 원시시대를 우리가 살던 푸른 구슬에 재탄생시켰다. 현대 문명의 붕괴. 끔찍하게 굴러가는 세계에 찍는 마침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관의 끝자락에서 아티스트의 시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시어 뭉치 속에서 끝으로 치닫는 세계에 조시 틸먼은 결국 다시 한 번 손을 내민다. <Pure Comedy>는 종말론도 아니고 묵시록도 아닐뿐더러 데카당스의 너절한 한 페이지는 더더욱 아니다. 이 비참한 디스토피아의 출발점에는 현재를 바라보는 아티스트의 비감과 염려, 좀 더 개선된 내일을 바라는 기대와 희망이 자리한다. 자조 섞인 숱한 표현들을 걷어내 보자. 그 순간 앨범 전반에 제시된 세계의 갖은 결점들은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 극복돼야 할 안티테제로 변모한다. 현세의 가시 돋친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향한 동경의 시 「Birdie」는 이 맥락에서 남다른 의미를 전달할 테다. 그리고 <Pure Comedy>의 주제가 이 지점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Pure Comedy>는 그래서 아름답다. 한 번쯤 무겁게 생각해야 할 이야기들이 음반에 가득하다. 그러나 그 악몽은 단순한 협박이나 위협을 매개로 하지 않는다. 유머러스하게 사안을 비틀며 조시 틸먼은 부박한 우리에게 쓴웃음이라도 입에 머금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그 안에 자리한 어휘는 풍성하고 묘사는 섬세하며 구성은 단단하고 서사는 흥미롭다. 그리고 인류와 세상에 대한 자신이 애정이 희극에서는 쉽게 (혹은 거의) 보이지 않는 피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은연 중에 내비친다. 작품 내의 의미와 언어 뿐 아니라 이들을 감싸는 사운드도 멋지게 만들어졌다. 푸근한 포크와 컨트리, 감미로운 리듬 앤 블루스 풍의 사운드, <Madman Across The Water>에서의 엘튼 존과 <Nilsson Schmilsson>에서의 해리 닐슨을 닮은 오케스트럴 팝은 풍부하고 부드러운 외피를 제공한다. 1970년대 식의 터치를 활용해 조성한, 잘 들리는 멜로디와 사운드가 행하는 기능은 다양하다. 듣기에 좋은 선율이 가진 높은 접근성을 발휘해 관객을 <Pure Comedy>의 무대 앞으로 효과적으로 운집하면서도, 조시 틸먼의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서부터는 싸늘한 텍스트와의 대치를 통해 낯선 감상을 남긴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훌륭한 장치 설정으로 조시 틸먼은 한 앨범에 인상적인 모먼트를 수차례 만들어 낸다. 경쾌한 피아노 팝 위에 관현악이 주는 넉넉한 질량감을 덧댄 「Total entertainment forever」와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처럼 전위적인 관현악 포르타멘토로 환기하는 「Things it would have been helpful to know before the revolution」에서부터, 곡 말미에 놓인 한 사람의 죽음에 가스펠 풍 보컬 코러스를 동원한 「Ballad of the dying man」, 차분한 분위기와 널찍한 사운드 스케이프 속에서 갖은 소리의 콜라주로 몽환을 일으키는 「Birdie」, 단출한 보컬과 멜로디가 반복되는 13분의 러닝 타임의 후경을 현악 파트가 다채롭게 끌고 가는 「Leaving LA」, 아방가르드한 스트링이 곡을 주도하는 「Two widly different perspective」에 이르는 여러 곡들이 멋진 결과물로서 작품을 빛낸다. 점층적으로 사운드 규모를 키워가며 곡에 어린 조시 틸먼의 비애를 넓게 퍼뜨리는 「Pure Comedy」는 물론 말할 것도 없는, <Pure Comedy> 최고의 트랙이다.
조시 틸먼의 번민은 찬란하다. 후회를 손에 쥔 어제와 우습게 무너져가는 오늘과 무섭게 조각 나버릴 내일이 머릿속을 횡행한다. 그러나 이 혼란의 태초에는 좀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한 바람이 존재하고 혼란의 종국에는 대단한 시와 노래와 음악이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한 데 섞이며 <Pure Comedy>가 비로소 탄생한다. 웃을 수만은 없는 유머로 가득한 코미디라고도,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냉소의 옴니버스라고도, 의지를 가진 존재의 장엄한 앙가주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 찬연한 작품이 말이다.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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