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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까워진 혁오

혁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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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엔 몸집이 너무 커져버린 이들은 아직도 ‘나만 알고 싶은 밴드’로 남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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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의 리더가 되겠다는 포부와는 다르게 지금의 혁오는 우리와 너무 가까이 위치한다. 예전 소위 쿨한 동네라 하는 이태원과 연남동 부근에서 주로 그들의 음악을 재생했던 반면, 요샌 어느 동네의 아무 분식점에서도 「위잉위잉」과 「Tomboy」를 튼다. 심지어 인디 음악만을 편애하는 이들의 ‘홍대병’을 꼬집는 사람들마저 혁오를 듣는다. 음원차트는 물론이고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포착되는 밴드의 이름은 이들이 힙스터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방증.

 

그럼에도 혁오의 스탠스는 견고하다. EP <20>과 <22>을 지나 첫 정규음반 <23>까지, 밴드가 지향하는 로파이나 감성 사이사이 끼어있는 낭만엔 변함이 없다. 언니네 이발관를 비롯한 국내 기타 팝 밴드들과 플릿 폭시스(Fleet Foxes)나 본 이베어(Bon Iver)와 같은 해외 인디의 흐름이 연상되는 것도 매한가지. 유명 가수의 곡에 피처링을 맡거나 <무한도전>과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도 「지정석」과 같은 마이너 장르와 코드를 다루는 이들은 여전히 ‘뭔지 몰라도 멋있’는 음악을 들려주려 한다.

 

믹싱의 차이를 두고 탄생한 여러 감질들과 공간감을 활용한 <23>엔 보다 다채로운 스타일이 아우러진 트랙들이 자리하고 있다. 복고적인 로큰롤 리듬을 차용한 「Tokyo inn」과 「가죽자켓」은 단발적인 감흥을 부여하는데 주효하고, 리버브 효과를 잔뜩 먹인 기타가 귀를 찌르는 「지정석」과 혁오식 로파이 발라드 트랙인 「Paul」은 긴 여운을 남긴다. 웅장한 코러스를 덧댄 압도적인 하드록 트랙 「Wanli万里」과 날 것에 대한 고집이 두드러지는 「Surf boy」 또한 텍스처의 조율이 효과를 보이는 트랙이다.

 

「위잉위잉」과 「와리가리」로 이어지는 평범한 노선에서 벗어나, 로큰롤의 역동성과 브릿팝의 서정성, 적당한 선율감을 갖추었음에도 <23>은 모호한 뒷맛을 남긴다. ‘쿨함 = 젊음 = 날 것’이란 논리 아래 발생한, 의도성이 짙은 로파이의 요소들은 선명한 감상을 남기지 못한 채 겉도는 사운드를 낳았고 오혁의 보컬에서 가사 전달력을 빼앗아갔다. 이는 좀 더 확고해진 밴드의 정체성이 그리 썩 반갑지 않은 이유다. 숨기엔 몸집이 너무 커져버린 이들은 아직도 ‘나만 알고 싶은 밴드’로 남고 싶은 걸까.


이택용(naiveplant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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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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