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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무언가를 속시원하게 푸는 방식의 이야기”
그림책 『간질간질』 펴내 재미, 즐거움, 유쾌함. 그리고 모든 긍정적인 에너지들
작업할 때 제가 재미있는 걸 하자가 일순위예요. 작가가 신나게 작업을 하면 책을 읽는 분들도 공감하시지 않을까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포인트를 짚어 주시기도 하고. 독자를 만나고 평론가 분들의 글을 읽고, 저 또한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거든요. 그럼으로써 완성되는 느낌이에요.
서현 작가를 만났습니다. 『눈물바다』(2009), 『커졌다!』(2012) 이후 5년 만에 나온 창작그림책 『간질간질』을 가지고요. 공백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현 작가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포착하여, 공감하고 치유하는 그림책들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어린이들 눈높이에 딱 맞는 이야기로 감정과 욕망을 시원하게 드러내며 카타르시스를 얻는 장점은 최대한 살리면서 더욱더 유쾌한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로 출발한 상상력이 감각적인 캐릭터, 들썩거리는 몸짓과 소리, 군무 연출로 이어지며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서현 작가는 1982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어릴적부터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적 상상이 담긴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유머러스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작업을 멈추진 않고 계속 하고 있었어요. 일러스트레이션 일 하면서 개인 작업들을 하고요. 제가 워낙 장난감이나 피규어를 좋아해서, 피규어 수업을 듣고 그거 만드느라고 시간을 보냈어요. 사실은 일 받아놓은 게 많아서 둘을 병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피규어 작업이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되거든요. 그래도 일단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싶지 않아서 도전을 했어요. 만화 작업도 구상하면서 지냈고요. 저는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책이 조금 늦게 나오게 됐어요.
작업실이 원래 수원이었잖아요. 서울로 이사를 했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수원 작업실을 한 6년 정도 썼더라고요. 편안하고 정도 많이 들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공간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일이 잘 안 되는 거예요. 변화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피규어 선생님이 작업실을 같이 쓰자고 말을 해 주셔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덕분이 일이 되게 잘돼요.
수원에서 작업실까지 상당히 먼데 규칙적으로 나와요?
전에는 집에서 워낙 가깝다 보니까 시간을 짜임새 있게 쓴다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짬 나면 가서 일을 하고, 거의 집 안에서 방을 옮겨 다니는 느낌처럼 다녔거든요. 여긴 약간 출퇴근 같고 해서, 그동안 방만했던 생활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웃음).
『커졌다!』 이후 창작그림책은 5년 만이죠.
사실은 많이 긴장이 되요. 저는 저답게 작업했다고 생각하는데 읽어주시는 분들이 어떻게 봐 주실지, 재미있게 느껴주실지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해요.
『간질간질』은 분위기와 리듬이 만화 같아요.
제가 이야기를 푸는 방식은 그림책이지만, 어릴 때부터 만화를 되게 좋아했어요. 좋아하고 많이 보다 보니까 만화적 언어나 형식에 익숙했거든요. 그림책을 만들 때 그게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화적인 느낌이 제 그림책에서 나오는 게 저는 어색하지 않아요.
스타일이 더 굳어졌달까, 깊어졌달까. 더 ‘서현’다운 게 나왔구나, 하고 봤어요.
와 정말요? 그렇다면 이 책의 반응을 떠나서 저한테는 되게 의미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서현 작가 그림책의 매력은 무엇보다 카타르시스라고 생각해요. 『간질간질』에서 극대화된 느낌이 있어요. 본인 생각은 어때요?
제가 예전에 『눈물바다』를 만들었을 때 후기를 썼는데, ‘내가 나한테 해주는 위로이자 유쾌한 농담’이라고 표현을 했거든요. 평소에 마음껏 발산하고 이런 성격은 아닌데 작품을 할 때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저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가 자꾸 만들어져요. 제 안에 쌓인 게 많은가 봐요(웃음). 계속 할 수 있을까요? 고민이에요.
그림책을요?
아뇨. 이런 식의 이야기를요. 계속 무언가를 속시원하게 푸는 방식의 이야기요. 희한하게… 제가 카타르시스를 의도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 되는 거예요. 저 진짜 쌓인 게 많은 거 같아요. 아 어떡하지. 뭔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걸까요? 저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거 보시는 분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면 어떡하죠?
음… 아니요. 아직 더 분출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간질간질』보다 더요.
정말요? 저에겐 아직 에너지가…!! (웃음).
그동안은 캐릭터 얼굴이 견과류를 닮았었잖아요. 이번에는 그냥 사람이에요.
원래 캐릭터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쓰긴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담에서 약간 빠져 나온 것 같아요. 그전에는 일반적인 사람의 형태보다는 밤이나 도토리, 이렇게 특징을 부여해서 재미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간질간질』에서도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짓는 표정이나 춤추는 몸짓. 나아가는 모습에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캐릭터의 형태가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간질간질』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이렇게 하면 웃기겠는데?’ 항상 이게 시작이에요. 처음에는 시조같이 만들고 싶었어요. (3.4조 가사체로 낭독하며) 머리가~ 간지러워~ 머리를~ 긁었더니~ 이런 식으로, 약간 운율이 맞는 느낌이요. 어느 날 머리카락이 떨어져서 ‘나’ 들이 되고, 1단계로 엄마를 격파하고, 2단계는 아빠, 3단계는 누나를 해치운 다음… 이런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시조 느낌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만들면서 좀 줄어들긴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운율이 남아 있다고 생각은 해요.
마지막에 거의 일수 찍듯이 마감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완성되면 한 장 넘기고, 한 장 넘기고…
그전에 다른 일들도 하다 보니까 작업이 좀 더뎌졌어요.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오랜만이라 더 고민도 많고 그래서 그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이 늦게 나왔네요.
작업이 잘 안 풀린다, 그런 느낌에 가까운 걸까요?
음… 생각보다 엄청 안 풀리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럼 게으름을 피운 거 아니에요?
아아, 저의 게으름의 소치였던 걸까요.
첫 책 『눈물바다』가 굉장히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까지도 그렇고요. 거기에서 오는 부담은 없었을까요?
부담이 없지는 않았어요. 있긴 있었는데 그걸 느낄 새도 없이 다음 책, 또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 게 더 컸어요. 재밌게 읽어 주시네. 신난다! 이렇게요.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되게 즐거웠어요. 저는 작업할 때 제가 재미있는 걸 하자가 일순위예요. 작가가 신나게 작업을 하면 책을 읽는 분들도 공감하시지 않을까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포인트를 짚어 주시기도 하고. 독자를 만나고 평론가 분들의 글을 읽고, 저 또한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거든요. 그럼으로써 완성되는 느낌이에요.
『간질간질』을 본 어른 독자들 반응은 좀 갈리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은 엄청나게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아이들이 되게 재미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해서 좋아해요. 그런데 아직은 가까이 못 가고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에요(웃음).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거든요. 작가와의 만남 할 때도 어색하게 말 걸고 그래요. 그래서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저는 그냥 제가 생각하는 걸 표현하는데 읽어주시는 분들이 아이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고 해석해 주시니까. 그렇다면 아직 내가 철이 덜 든 것인가 생각하고 그래요.
본인 작업 스타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네. 사실 저는 기본적으로 단순하게 작업하는 편이거든요. 유쾌하고 가볍게.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는…(웃음). 제가 그걸 잃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한다기 보다는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그런 분위기로 그림을 그리게 되요. 그냥 유쾌함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워요.
이야기는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면 더 좋겠죠. 노래를 들으면 아 그냥 즐겁다, 좋다. 이런 것처럼 책도 부담 없이 이야기 자체로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전에 요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때요?
지금도 여전히 관심이 있는데요. 피규어로 만들고 있는 먼지 캐릭터도 어떻게 보면 요괴 같이 느껴지는 거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생물체잖아요. 우리가 상상하는 요괴보다는 가볍고 귀여운 형태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상한 생명체들을 이야기의 대상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어요.
예전 작업실에는 직접 만든 인형이랑, 장난감들이 진짜 많았잖아요. 요즘 취미로 즐기는 거 있어요?
사실 옛날엔 그림 그리는 게 취미였어요. 취미이자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는데요. 그림 그리는 게 일이 되고 나서는 뭘 만들거나 하는 것들… 일로 하는 그림 외에 다른 작업 방식이 다 취미가 되었어요. 타피스트리나 피규어, 오토마타 같은 것들이요. 짬나는 대로 재미있게 하고 있거든요. 그런 게 취미라면 취미예요. 나중에 어디에 쓰일지 모르겠지만 만드는 것 자체가 즐겁더라고요.
지금은 피규어에 가장 빠져 있는 거죠?
네. 피규어를 만들고 그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들이요. 작년에는 완전히 몰입했었어요. 그림은 평면에 머물러 있잖아요. 그런데 피규어는 사람과 똑같이 삼차원의 공간에 자기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훨씬 더 함께하는 느낌이 들어요. 호흡하고 살아 있는 것처럼요.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존재감이 막 느껴져요.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군요.
뭔가 재미있는 형태를 만들어서 딱 놓으면, 그 아이를 가지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절 자극하는 거 같아요. 그런 매력. 만드는 자체도 너무 재미있고. 만들어서 놓는 것도 재미있고요.
만들어 놓고 사진을 찍거나 그러진 않나 봐요.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요.
네. 사진으로 찍어두지 않아도 존재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일단은 만드는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 있어서 그 다음은 아직 생각을 안 했어요. (웃음)그 다음은 귀찮아하는 것도 있어요.
5년 뒤에도 지금처럼 활동하고 있을까요?
앗 되게 무서운 말이네요. 그러게요. 5년 뒤에 저는 좀 더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실 제가 작업을 할 때는 마음껏 하는데, 막상 책이 나오면 걱정이 많아져요. 자신감이 살짝 떨어진달까. 경험이 쌓이면 더 자유롭게 시도하고 다른 방향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그림책의 가능성이나 범위를 되게 넓게 보고 있거든요. 5년 후에도 그렇게… 입체로도 하고, 만화로도 하고.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을 것 같아요. 결국은 그림책이다, 라고 생각해요. 아 그런데 제가 두서없이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니예요. 정리하다 보면 늘 모자라요(웃음)
음… 이건 인터뷰에 적합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요. 독자가 있어야 작가가 존재하지만, 첫째는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걸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편집 과정을 통해서 다듬어지고, 단장을 마치는 거죠. 민낯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화장도 하고 옷도 입고. ‘너무 날 낯설어 하지마~ 나 쫌 준비하고 가는 거야.’ 이렇게요. 사실은 책이 그렇잖아요. 팔려야 하고, 그게 원동력이 되고, 현실적으로 작가가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힘이 되고. 그렇다 보니까.
팔릴 만한 이야기요?
네. 사실은 저도 그런 걸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욕심을 갖지 않은 건 아닌데, 결국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뭔가 상을 받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도 재미있어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힘입어서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들을 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행히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그렇죠. 아니면 자신감이 진짜 엄청 떨어질 것 같아요.
저는 꽃을 배우고 있거든요. 꽃을 한다는 건 아름다움을 만드는 건데, 거기서 자꾸 의미를 찾게 되요. 아름다워서 뭐? 라고. 그런데 서현 작가는 이야기의 의미를 재미 그 자체에 두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에요.
전 예쁘다 귀엽다 재미있다, 그걸 느끼는 것 자체로 감동이라고 생각해요. 감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게 마음이 움직이는 거잖아요. 말 그대로요. 나를 환기시키고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인 거죠. 그게 누군가한테 오래, 깊게 남을 수 있으면 너무 좋은 거고요. 빨리 사라져 버리면 허무하긴 하겠죠. 하지만 감동이 지속되면 창작자로서 더더욱 기쁠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은 책을 사 주시고 계속 갖고 있어 주시겠죠? 그 시절에 잠깐 보고 흘러 가는 게 아니라…
10년 동안 어린이책 편집자였다. 지금은 작가들을 만나 사진도 찍고, 영상 편집도 하고, 꽃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