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으로 완성된 소나타
“기회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천재’와 ‘범죄 본능’을 한꺼번에 끌어내었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하여야겠습니까, 축복하여야겠습니까?” 김동인의 단편소설 「광염 소나타」에서 K는 묻고 있었다.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며 영감을 얻었던 작곡가 백성수를 옹호하기 위함이었다. 이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어 탄생한 뮤지컬 <광염 소나타>가 던지는 질문 역시 다르지 않다. “예술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예술인지” 묻는다.
동명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광염 소나타>에는 ‘비운의 천재 작곡가’가 등장한다. 그러나 ‘살인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는 설정만 닮아 있을 뿐, 소설과는 다른 배경과 인물, 사건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했다.
작곡가 J는 열아홉의 나이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치켜세우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놀래킬 만한’ 음악은 쉽게 쓰여지지 않고 J는 초조함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를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K의 날 선 비평이다. 클래식 계의 저명한 교수인 K는 J를 성공적으로 지도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을 이어가려 한다. 그러나 J의 음악은 K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K는 더 강하게 J를 압박한다.
그 끝에서 J는 살인을 경험하게 된다. 작곡에 대한 부담감으로 술에 취한 밤, 차를 몰고 나갔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게 됐고 당황한 나머지 숲 속에 피해자를 남겨둔 채 돌아왔다. 두려움에 떨던 J에게 찾아온 것은 멜로디였다.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멜로디. 그 소리를 따라가며 J는 악보를 채웠고, 처음으로 K로부터 칭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직 소나타는 완성되지 않았다. 겨우 1악장을 썼을 뿐이다. 또 다시 답보 상태에 빠진 J는 숲을 찾아간다. 자신이 버려두었던 피해자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고는 그를 데리고 작업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직접 살인을 함으로써 2악장을 완성시킨다. 우연히 J의 일기장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K는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느낌이 짜릿했어? 그러니까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었을 것 아니야?”라고 물으며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가 많다며, J의 손에 직접 칼을 쥐어주는 K에게서는 일말의 죄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예술을 위해서
J에게 있어서 K는 자신의 재능을 입증해 보여야 하는 대상이다. J의 음악이 세상으로 나가 대중과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첫 번째 관문과도 같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는 K는 “음악가에게 곡을 못 쓰는 것보다 큰 죄는 없다”고 말하며 J를 다그친다. 반면, J와 함께 작곡 활동을 했던 S는 ‘사람이 있어야 음악도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악보를 쓸 줄은 모르지만 천재적인 음악성을 타고난 작곡가로, J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이자 뛰어넘고 싶은 예술적 경쟁자이기도 하다. S는 부담감에 사로잡힌 J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같이 즐기며 음악 하면 그만 아닌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S는 몰랐을 것이다. J를 안심시키기 위해 건넨 그 말이, 사실은 J 안에 꿈틀대는 열등감을 자극했다는 사실을.
뮤지컬 <광염 소나타>는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버릴 수 있는 걸까.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성, 그것과 맞바꿀 만큼 예술이란 가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섣불리 윤리적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광염 소나타>의 J와 K, S가 보여주는 ‘예술을 향한 열망’이 너무나 뜨겁고 간절하다.
지난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 ‘창작산실’의 뮤지컬 우수신작으로 트라이아웃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광염 소나타>는 4월 25일부터 정식 개막했다. 초기 대본의 큰 설정들은 되살리면서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등 수정을 거쳤다. 트라이아웃 공연을 함께했던 이선근과 K 역에 더블캐스팅된 김수용을 필두로, J 역의 박한근과 문태유, S 역의 유승현과 김지철 등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했다. 작품이 공개됨과 동시에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던 현악 3중주의 라이브 연주는 이번 공연에서도 빛을 발한다.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스릴러 뮤지컬 <광염 소나타>는 7월 16일까지, 대학로 JTN 아트홀 1관에서 만날 수 있다.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