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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로 대학로 2인극에 도전하는 배우 임혜영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공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임혜영 씨
예전에는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냥 ‘뮤지컬 하는데요’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페기 소여, <드라큘라>의 미나, <아리랑>의 방수국, <팬텀>의 크리스틴, <레베카>의 나, <카르멘>의 카타리나 등 최근 작품만 살펴봐도 국적도, 연령도, 환경도 참으로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온 배우입니다. 그런데도 그녀를 생각하면 ‘여리여리하고, 예쁘장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죠. 뮤지컬배우 임혜영 씨 얘기인데요. 어느덧 데뷔 10년을 넘기며 수많은 대극장 작품에 이름을 올린 그녀가 오랜만에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해봤습니다. 바로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인데요. 제루샤 역에 딱 어울리는 것 같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임혜영 씨에게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극장 2인극, 게다가 10대 소녀를 연기해야 하니까요. 연습 초반,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공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임혜영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습니다.
“데뷔 초에 대학로에서 2~3편의 공연을 했어요. 그래서 정말 반가워요. 버스에서 내려 공연장까지 걸어갈 때 햇살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거든요. 시간은 정말 많이 지났고 못 보던 것들도 많이 생겼지만 지금도 느낌은 비슷해요.”
이후에는 줄곧 대극장 무대에 서오셨는데, 특별히 소극장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대극장 공연을 하면서도 소극장에서 하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마음만 갖고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이번에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잘 맞았어요. 게다가 <키다리 아저씨>는 작품도 좋고, 음악도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고요. 대본을 직접 보니까 대사가 굉장히 많아서 조심조심 차근차근 접근했는데, 초반에 음악만 훑어도 가사가 참 좋아서 저도 힐링이 됐어요(웃음).”
2인극은 처음이죠? 작품 경험이 많아도 소극장 2인극은 무척 부담될 텐데요.
“맞아요, 엄청난 도전이죠. 제작진에게 중간에 물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어봤어요(웃음). 대극장은 전체적인 공기의 흐름을 끌고 가는데 사실 소극장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또 대극장은 여러 번 무대에 서면서 극장마다 다른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배우로서 고려하는 점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 무대는 전혀 모르니까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해요.”
전작인 <브로드웨이 42번가>도 그렇지만 배우로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악과 나온 예쁘장한 전형적인 여배우라는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제 딴에는 비련의 여주인공도 했다, 사랑받는 역할도 했다, 이런저런 역할을 했는데, 항상 비슷한 캐릭터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제가 풀어야할 숙제죠.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땀도 많이 흘려보고 싶었고, 어두운 감정의 작품이 아니라 밝은 이미지를 해보고 싶었고요. 이번 작품에서도 임혜영이 아니라 제루샤로 보여야 하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무척 고민돼요.”
무대 밖에서도 꽤 여성스러워 보이는데 제루샤와는 어떤 교집합이 있을까요?
“음악감독님이 ‘(강)지혜 씨랑 제 안에는 남자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대로 보셨어요(웃음). 사실 제가 많이 여성스럽지는 않거든요. 제루샤와는 비슷한 면이 좀 있어요. 일단 거침없이 얘기하는 모습이 제 어릴 때와 비슷하고, 제루샤가 방학마다 시골에 가는데 저도 고향이 강릉이거든요. 2막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도 강릉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제 모습을 떠올리게 해요. 제류사가 겪는 일들이 저와 비슷한 면이 많은데, 대신 지금이 아니라 과거의 저예요(웃음).”
2인극이라서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더욱 중요할 텐데, 세 명의 키다리 아저씨는 어떤가요?
“(신)성록이랑은 친구예요. 데뷔작인 <드라큘라>를 같이 했고, 이후에도 작품에서 몇 번 만났거든요. 나머지 친구들은 음악만 맞춰봤는데 워낙 다 착하고 정서들이 따뜻해서 잘 맞을 것 같아요. 모두 색깔이 다른데도 가사가 주는 느낌이 굉장히 잘 살더라고요. 그리고 키가 커서 든든하고 흐뭇해요(웃음).”
그러고 보면 참 멋진 남자배우들과 상대역으로 무대에 함께 서오셨잖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남자배우가 있다면요?
“무대 위에서는 역할로 만나지만 결국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유준상 선배님은 <레베카> 초연할 때 항상 에너지 넘치고 후배들까지 끌어주는 모습이 정말 멋졌어요. 사실 자기 챙기기도 힘들거든요. 류정한 오빠는 정말 무서워했던 선배라서 <지킬앤하이드> 때는 ‘안녕하세요’ 인사만 했어요. 그러다 아주 천천히 친해져서 <팬텀>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함께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꼈죠. 무대에서의 연륜도 인상적이고 존경스러워요. <드라큘라>의 (김)준수는 무대에서의 에너지가 대단해요. 연습실에서는 그냥 준수인데, 무대에서는 정말 드라큘라 같은 거예요. 미나가 처음 드라큘라를 만났을 때의 감정이 중요한데, 준수는 정말 사람 같지 않아서 연기하기 편했어요. (박)효신 오빠는 같이 노래하고 싶지 않았어요, 노래를 너무 잘해서(웃음). <팬텀>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틴을 안고 노래하는데, 그렇게 노래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빠의 호흡에 맞춰 숨을 참고 있는데, 효신 오빠 호흡이 너무 길어서 제가 숨이 차는 거예요. 노래할 때 보면 감탄스러워요.”
보통 성악 발성으로 노래하면 가사 전달력이 떨어지고 남자배우와의 듀엣도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은데, 임혜영 씨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다양한 상대배우들과 어우러지더라고요. 창법을 바꾼 건가요?
“작품에서 성악 발성을 한 건 <팬텀>이 처음이었어요. 데뷔 때 <드라큘라> 앙상블이었는데 성악 발성으로 노래했더니 안 맞다고 하셔서 스스로 내추럴 보이스를 찾아냈죠.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두 도시 이야기> 초연 올라가기 전에 성대가 망가져서 제가 원래 쓰던 길로 노래하면 힘들어서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감정을 많이 쓰다 보면 확실히 목에 무리가 가더라고요. 그 뒤로는 목을 관리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요.”
아직 해보고 싶은 작품, 캐릭터가 있나요?
“<메리 포핀스>요. 연기도 잘 해야 하지만, 탭도 해야 하고, 성악 발성도 필요하거든요. 한국 사람들에게 없는 정서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걸 찾는 게 저한테도 색다른 도전이니까요.”
사실 공연이라는 게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잖아요. 저도 공연을 오래 취재하다보니 환상 속에 살아서 결혼을 못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직접 무대에 서는 여배우는 어떤가요(웃음)?
“맞아요, 이런 사랑 어디에서 받아볼까... 사실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문제는 작품을 만나는 설렘은 커지는데 남자에 대한 설렘은 점점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이가 들었다고 결혼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람을 만날 확률이 낮다는 것도 알지만, 좋은 사람이 없으면 혼자 살 생각도 있거든요.”
다시 대학로 무대에 서면서 자연스레 지난 10년을 돌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나요?
“열심히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데뷔 초에는 작품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극장도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좀 더 성실해지고 싶어요. 한 회 한 회 얼마나 아까운지. 예전에는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냥 ‘뮤지컬 하는데요’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극장 무대에서 화려하고 예쁘게 보이는 임혜영이 아니라 배우 임혜영. 저 스스로도 좀 더 성숙해지고 싶어서 많이 노력하고 있고요. 30대 중반이 되니까 뭔가 꿈을 갖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더라고요. 시간이 더 흐르면 못하는 작품, 역할들이 많잖아요. 할 수 있는 날까지는 처음 같은 마음, 반면 무대에서는 성숙한 배우의 모습으로 서고 싶어요.”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임혜영 씨는 여성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웃음). 하지만 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그녀의 매력이겠죠.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좋은 작품은 참 많아졌지만, 여배우가 비중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은 여전히 많지 않은 공연계에서 꾸준히 다양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 임혜영 씨는 씩씩하고 거침없는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의 제류사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랜만에 대학로 소극장에서, 그것도 2인극으로 관객들을 찾는 임혜영 씨. 가까이에서, 좀 더 깊숙하게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어떨지 직접 확인해 보시죠!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