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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돋보이는 켄드릭 라마의 랩

켄드릭 라마 〈DA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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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는 후에 투팍과 비기처럼 기억될 것이라는 세간의 설레발은 그저 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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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주제의식과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컨셉트 앨범으로 지금의 위상까지 올라온 래퍼, 켄드릭 라마가 내놓은 새 앨범엔 의외로 음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없다. 현재의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키워드들을 트랙의 이름으로 나열했지만, 그것들이 그의 고향인 컴튼(Compton)의 실상을 고발하거나 흑인의 억압된 삶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 <DAMN.>에서의 화자는 특정 공동체를 변호, 고양하기보단 그저 자기 자신에 내재된 복잡한 감정들을 설파하려고 한다.

 

‘젠장’ 혹은 ‘빌어먹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Damn’이 음반의 제목이다. Damn은 일반적으로 짜증이나 분노, 실망, 패배의 정서를 내재하고 있는 단어로서 쓰이지만, 강조와 감탄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어떠한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감정들 모두 Damn 하나로 설명 가능하다. 음반 커버에 그려진 그의 표정이 말하듯, 복잡한 감정들이 얽히고설킨 Damn’의 정서가 음반의 밑바탕에 서려있다. ‘좋은 아이, 미친 도시(Good kid, m.a.a.d city)’나 ‘나비 죽이기(To pimp a butterfly)’만큼이나 상징성 있는 제목이다.

 

음반은 전작인 <To Pimp A Butterfly>에 쏟아진 환호와 찬사, 그리고 몇몇 비난에 대한 그의 감정적 피드백처럼 다가온다. 공익과 선의의 행동에도 배신의 질타를 맞는 서사를 가진 첫 곡 「BLOOD」과 초반부를 강력하게 휘어잡는 「DNA.」가 대표적인 예. 공권력의 상징 중 하나인 경찰차 위에 올라가 랩을 하는 켄드릭 라마의 퍼포먼스에 대해 ‘지금의 힙합은 젊은 흑인들에게 인종차별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라 평한 FOX 뉴스를 도마 위에 올려 비난하며 억울함과 분노를 발산한다.

 

새로운 구성과 접근법이 무모한 예상을 깬다. 하나로 응집하지 못하고 산재된 갖가지 스타일의 향연은 래퍼의 색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브라스 사운드가 곡의 습도를 높이는 「YAH」나 「FEEL」, 날카로운 신시사이저와 사이렌 소리로 긴장감을 부여하는 「HUMBLE」과 「XXX」 등 전작들의 잔향이 곳곳에 남아있으나, 유효한 감상을 부여하는 건 전작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들이다. 「YAH」나 「GOD」에서 도드라지는 그의 낯선 보컬 운용과 「LOYALTY」과 「LOVE」에서 부각되는 트렌디한 요소들은 심도 있는 주제와 진입장벽이 높은 사운드로 점철되었던 래퍼의 무거운 이미지를 한껏 가벼이 하는데 일조한다.

 

균형감을 고려한 트랙의 배치와 한 곡 내에서도 두어 가지 비트로 변주하는 방식, 먹먹한 사이키델리아와 보컬 샘플을 엮어나가는 작법 등 완급조절이 탁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랩이다. 가사가 함축하고 있는 감정에 따라 속도와 톤을 다르게 하며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그의 래핑은 역시나 인상적. 각기 다른 시기에 맞았던 두려움들을 설명하는 「FEAR.」,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하는 「DUCKWORTH.」 등,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에 랩의 특수성을 결합하는 데 정점에 오른 그는 비교적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두 장의 클래식과 정규음반을 뛰어넘는 비사이드 <Untitled Unmastered.>, 그리고 <DAMN.>까지. 수준급의 음반들을 통해 켄드릭 라마에겐 다른 래퍼들에겐 없는 한 가지를 갖추게 되었다. 가사를 허투루 쓰지 않는 지적인 이미지와 해외 평단들이 쏟아내는 만점의 가까운 평가가 만들어낸 신뢰 혹은 마성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HUMBLE」의 성적까지. 켄드릭 라마는 후에 투팍과 비기처럼 기억될 것이라는 세간의 설레발은 그저 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택용(naiveplant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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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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