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리뷰 대전] 존 버거, 그가 남긴 모든 언어에 대하여
하염 없이 읽다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읽는 건 소설이나 에세이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니다. 서점에서 일하느라 ‘문학 작품’ 읽기가 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 직업이나 이유 같은 건 잊게 되기도 한다. 그런 독서를 ‘하염 없이 읽다’라고 한다.
존 버거는 농사를 직접 짓는 손으로 드로잉을 그리고, 글을 쓰며, 무심히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썼던 11편의 글 역시 그의 삶과 꼭 닮았다.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는 존 버거의 선명한 「자화상」 그리기로 시작한다. 팔십 년간 글을 써온 그는 자신에게 문학이란, 글이란, 언어란 무엇인지 담담히 고백한다. '작가’처럼 꾸미지 않고 ‘이야기꾼’답게 편지를 쓰듯 간결하게 써내려 간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나는 시를 해독하는 마음으로 오래 머문다. 그 사이에는 세계를, 자연을, 인간을, 이방인을 사랑하는 숨결이 녹아나 있다.
에세이 속에서 우리는 눈에 미처 보이지 않았던 장면들을 능숙하게 끄집어 내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달인 존 버거의 안내를 받는다. 안내자로서 그는 희망을 말한다. 폴란드 출신의 이방인이자 독일 혁명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나는 있었고, 지금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를 인용하면서. 그리고 실패의 연속성을 찰리 채플린의 넘어지는 모습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불멸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뿐인가. 야스민 함단의 아름다운 목소리에서 노래의 언어를 감지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꽃을 오랜 기간 보고 그리며, 그 대상 자체가 되어 모국어로 자연을 말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이리저리 그를 따라가다 우리도 대상의 언어에 흠뻑 빠져 버리고야 만다.
또한, 그는 연대의 매력적인 제안자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이. 그는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으며, 인간들은 모두가 고아이기에 공모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고아인 우리는 모든 위계를 거부하고, 지금껏 당연하다 여겨온 기존의 질서를 무시하고, 세계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당돌함을 가졌으니. 신기하게도 외톨이 고아들이 모여 연대하는 이 과정에서 계속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워나간다. 하나의 별의 반짝임도 아름답지만, 수많은 별들이 모여 만든 은하수의 광경에 모두 할 말을 잃어 버린다.
아쉽게도 존 버거는 그가 살던 시골마을 시간대로 2017년 1월 2일에 세상을 영영 떠나고야 말았다.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는 날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을 찾아 틈을 메우는 그의 작업과 시선을 존 버거라는 이름으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대한다.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멈추지 말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이들이 오늘도 자신의 책상에서 본인의 언어로 발견되어야 할 것들을 묵묵히 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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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고 어려운 고귀한 것 때문에 이렇게 살아요.
<존 버거> 저/<김현우> 역15,000원(0% + 0%)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는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화상」 『우리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