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처럼 온 우주가 나서 도왔다
『심용환의 역사 토크』 편집 후기
그래도 출판사와 저자는 의기투합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대를 피할 수는 없지만, 이 책으로 주요한 쟁점에 대한 이해와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역사 지식을 마련해보자고.
이 책의 샘플 원고(1장 위안부)를 처음 보았던 게 작년 7월이었다.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여름이었고, 박근혜 정부는 후반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민의가 어떻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불통의 상황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자신의 아버지 탄생 100주년 기념 제사상에 올릴 국정 교과서는 깜깜인 채로 진행되었다.
초,중,고 모두 역사 과목은 국정 교과서를 피할 수 없는 시대, 이게 옳냐 그르냐는 판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메아리가 되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반대해도 정부는 코딱지만큼도 들어먹지 않았다. 게다가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은 국내 정치에 등판도 하지 않은, 누가 봐도 보수 측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런 때에 우리가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쟁점을 가지고 책을 낸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고민도 깊었다. 이제 막 역사 분야에 신성으로 떠오르는 저자의 반짝반짝하는 글솜씨와 차고 넘치는 열정이 있지만, 이런 시대에 이 우울한 내용을 어떻게 독자에게 패배감을 주지 않고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끼리 의미 있는 책이다, 하기엔 출판 환경도 썩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출판사와 저자는 의기투합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대를 피할 수는 없지만, 이 책으로 주요한 쟁점에 대한 이해와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역사 지식을 마련해보자고.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등 당시 파격적이고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대안교과서로 출판을 시작한 휴머니스트와, 역사를 두고 장난질하는 세력을 더는 참지 못하고 튀어나온 『역사 전쟁』의 작가 심용환의 딱 어울리는 만남이었다.
책을 한창 만들던 늦가을,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다. 박근혜 정부가 기획한 국정 교과서마저 역시 ‘최순실표 교과서’라는 게 확인되었다. 그들의 비리가 드러날수록, 잘 알려지지 않고 부풀린 과거사를 마주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책은 저자로 대변되는 심 선생과 각 주제에 걸맞은 상대가 서로 대화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때론 비슷한 입장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때론 견해 차이를 확인하며 격렬한 (짜증 나는)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대화가 진행될 경우 편집자의 눈으론, “선생님, 그래도 서로 좀 주장과 논박을 비등하게 해주세요.” 요청하기도 했다. 저자는 난감해했다. 원래 비등하지 않는 그 수준으로 지금까지 위세를 부려온 것이라고. 책을 읽으면 독자도 어느 정도 이해하리라.
어떤 이는 이 책이 편향되어 있다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관련 주제를 더 깊이 다룬 여러 책을 읽고, 독자만의 눈으로 역사를 들여다보고 평가하길 꼭 부탁드리고 싶다. 그것 역시 답이 하나는 아닐 것이다.
온 우주가 도왔다. 다행히 국정 교과서는 단 한 곳, 0.02% 채택률을 보였다. 사필귀정이다.
다소 이르지만 이변이 없다면 정권 교체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잘못된 게 모두 해결될까? 아니다, 이제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특정 정치인이, 정치 세력이 드라마틱하게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시민의 눈으로 어제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오늘을 살고 감시하며,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어렵고 우울한 주제지만 그래서 내용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눈에 띄게 손이 가게 하려 노력했다. 독자의 반응이 좋다면 다음번엔 박정희 시대 이후의 초현대사의 역사 토크도 이어가고 싶다. 역시 쉽고 재미있게 입체적으로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관련태그: 심용환의 역사 토크, 국정 교과서, 역사, 근현대사
책 만드는 사람. 내일을 꿈꾸고 싶게 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오래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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