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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하나 없는 랩, 김태균
김태균 〈녹색이념〉
한국 특유의 과한 신파와 그의 이념이 품고 있는 약간의 보수적인 뉘앙스가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잘 들리는 음반이기에 가능했다.
초장부터 상당한 괴리감을 선사한다. 영어 단어 하나 없이 한글로만 구성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낱말들을 단순한 재미를 위해 남발하지 않고 오롯이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사용했다는 점과 전 세대의 한국 래퍼들이 사용했던 어구를 인용하는 몇몇 지점들이 독특한 감상을 준다. 이러한 한국적인 감성은 그가 발표했던 디스곡 「Recontrol」과 「Come back home」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 한국 힙합 씬에 깊게 스며든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처럼 작용한다. <쇼 미 더 머니 1>에서 인지도를 얻은 테이크원(TakeOne)이란 이름이 아닌, 본명 김태균으로 음반을 발매한 것도 그렇다.
그의 이념엔 힘이 과하게 들어가 있다. 첫 정규작을 명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곳곳에 서려있다. 작위적 신파를 형성하는 극적인 프로듀싱과 철저히 개인의 서사와 관념에 집중한 텍스트의 반복은 다소 지루하다. 5,6분을 넘나드는 트랙의 길이를 구성의 반복으로만 풀어낸다는 점 또한 음반의 약점이기도 하다. 랩과 가스펠 코러스의 반복이란 한 가지 구성으로만 진행하는 「붉은 융단」의 경우가 대표적. 또한 지나치게 심오한 「겨울잠」과 음반의 주제와 엇나가있는 「자각몽」의 수록은 과욕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경직된 감상에도 불구하고 <녹색이념>은 흥미로운 음반이다. 이는 단순히, 작가와 래퍼로서의 김태균의 실력으로 비롯된 것이다. 상당히 잘 들리는 래핑과 가독성이 높은 쉬운 가사는 음반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음반에서 랩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 어느 것보다 큰 만큼, 평범한 내러티브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입장」과 돈과 물질주의란 관념을 개인적인 서사에 빗댄 「돈」 등, 음반에서 가장 빛나는 건 랩이다. 특히 역사적 반동세력들과 자신을 빗대어 풀어내는 화법이 인상적인 마지막 트랙 「암전」은 근래 한 예능 프로그램이 역사와 힙합의 결합이란 주제로 내놓은 어느 트랙들보다 높은 설득력과 큰 울림을 지니고 있다.
음반 제작에만 집중하고 몰두한 창작자의 결과물인 <녹색이념>은 소극적인 사운드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과하게 다가온다. 비장함과 웅장함을 내세우는 다수의 트랙들은 필요 이상으로 느껴진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래핑 또한 그렇다. 그러나 이 과함은 전혀 부대끼지 않다. 한국 특유의 과한 신파와 그의 이념이 품고 있는 약간의 보수적인 뉘앙스가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잘 들리는 음반이기에 가능했다. 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현재 힙합 음악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기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김태균>, <테이크원>14,900원(19% + 1%)
한 예술가의 믿음, 과거와 현재, 경험과 청사진을 관통하는 작품 누군가는 이 앨범을 2010년대 이후 한국 힙합 3대 명반일 것이라고 하며 손꼽아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과연 이 앨범이 세상 밖으로 존재할지’ 궁금해한다. 몇 년 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앨범, [녹색이념]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